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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학 > 사회복지
· ISBN : 9791159255830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0-10-20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서문
‘낯설게 하기’의 역사 / 배제의 역사 / 타자의 역사 / 한국의 장애 역사 / 장애/장애인의 개념 / 시각장애인의 역사 기록과 구술 자료 / 책의 구성
1장 계몽과 자선, 시각장애인의 타자화
암흑 속의 시각장애인 / 문명의 타자 / 무능력과 준금치산자 / 자선과 자혜
2장 ‘맹인’ 점복업 조합의 호혜적 경제활동
맹인 점복업 조합의 오래된 미래 / 맹인 조합과 맹인 직업의 변화 / 해방 이후 맹인 점복업자들의 단체 활동과 사단법인 설립 / 문생 중심의 조합 운영과 경제활동 / 작은 이들의 연대와 호혜
3장 맹인과 함께 만든 한글 점자, 훈맹정음
식민지기의 맹인 교육과 전통적 교육 / 박두성의 교육활동과 훈맹정음(訓盲正音) / 시각장애인과 함께 만든 점자 /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4장 ‘사람취급’ 받을 권리
소수자의 권리의 역사 / 식민과 탈식민화 과정에서 안마업의 변동 / 시각장애인의 권리 주장 / 작은 이들의 저항
5장 시각장애인의 구술전통과 이야기의 힘
이야기 전통과 구술문화 / 시각장애인의 구술문화의 형식적 특성 / 되풀이되는 서사와 집합 기억
6장 동아시아 시각장애인 생존권의 상이한 경로
동아시아의 시각장애인들 / 동아시아 시각장애인의 안마업의 역사 / 식민/탈식민 과정에서 시각장애인의 직업 변화 / 동아시아 시각장애인의 다른 경로와 저항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점복업자 집단은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직업 집단을 근대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했지만, 노력과 별개로 그들은 지속적으로 근대의 타자로 호명된다. 기독교 계열의 선교사와 총독부 모두 점복 맹인을 타자화하고 미신으로 호명하며 탄압하는 데 가세했기 때문이다. (……) 대구 지역에 어린 시절 천연두에 걸려서 시력을 잃고 맹인 판수에게 가서 점복업을 배워 점쟁이가 된 맹인 황씨가 있었다. 그가 기독교로 개종한 내용은 한국의 대표적인 기독교 개종 사례를 모아놓은 책에 기록되어 있다. 황씨는 점쟁이로 일하며 사람들에게 잃어버린 물건을 찾는 법이나 여행을 잘할 수 있는 방법 등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새 집을 지을 때 어떻게 해야 귀신을 쫓을 수 있는지도 알려주었다. 저자는 이런 일련의 행위들을 일종의 사기라 지적하면서 황씨가 기독교인이 된 후 이 모든 것을 그만두게 되었다고 말한다. 황씨는 성경을 읽고 싶은 마음에 혼자서 문자를 만들기도 하다가, 평양에서 선교사들이 맹인에게 글 읽는 방법을 가르쳐준다는 말을 듣고 대구에서 평양까지 찾아갔다고 한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한 달 동안 점자 읽는 법을 배운 후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 (……) 도덕적인 방식으로 판수의 활동을 억제한 선교사와 달리, 조선총독부의 경우에는 경찰력을 동원해 판수를 취체(取締)했다. 총독부의 정책은 시기별로 차이를 보이는데 1910년대에는 강력하게 미신 타파 정책을 실행했다. 위생 관련 취체에서는 비과학적인 치병(治病) 행위를 근절하기 위해 판수의 점복업과 독경 등을 금지했다. 이런 정책은 대한제국 시기에도 마찬가지로 실행되었는데, 경무청에서는 1897년 5월 무당?판수의 미신 행위를 본격적으로 금지하고 이런 행위가 발각될 때에는 중죄에 처한다는 법령을 반포하기도 했다. 또한 판수가 혹세무민하며 민간에서 재물을 빼앗는 폐단 등이 정부의 문명개화 정책에 역행하는 것이라는 논의도 전개되었다. 비단 식민 권력만이 아니라 소위 ‘문명개화’의 관점에서 볼 때에도 판수는 척결해야 할 대상이었던 셈이다._<문명의 타자> 중에서
평양의 맹학교와 총독부의 제생원의 자선과 자혜의 경합은 이런 맥락에서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시혜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갖게 된 배경이다. 조선의 개항 이래 선교사들은 조선에 와서 사회사업을 활발히 펼쳤다. 이는 선교 방법으로 직접 선교보다는 교육과 의료, 사회사업을 통한 네비우스 선교 방식(Nevius Mission Plan)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한편 선교사들이 주로 선교 대상으로 삼았던 이들은 조선의 지배층이라기보다는 여성이나 빈민 등 사회에서 배제되었던 사회적 약자들로 기독교의 복음을 드러내기에 적절한 대상이었다. 선교사들의 여성과 빈민, 장애인에 대한 교육 및 관심은 비교적 이른 시기부터 시작되었다. 선교사 사회사업이 시작되던 초기부터 이들은 서구의 선진적인 지식과 기술을 가지고 낙후된 조선에 근대적이고 문명적인 사업을 개진했다. 대표적인 것으로 윌슨(Robert M. Wilson) 선교사의 한센병 관련 사업(정근식, 1997)과 로제타 홀(Rosetta Sherwood Hall, 1865~1951)의 맹인 교육 사업을 들 수 있다. 맹인 관련 특수교육을 처음 시작한 로제타 홀은 교육 목적에 대해서도 “여성 맹인들을 점복, 무당 등 미신적인 삶에 종사하지 않게 하고, 그리스도교 가족의 유용한 일원으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로제타 홀은 기독교 교인인 오씨의 딸이 장님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이곳에서 일을 시작할 기회가 비로소 왔구나. 그 애의 아버지는 기독교인이니 내 의도를 곡해하지 않겠지.”라고 생각했다. 당시에 선교사들의 의료 시술이 조선인들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이들을 실험 대상으로 쓴다는 소문이 퍼져 있어 선교사들의 의료 활동에 대한 조선인들의 두려움도 적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로제타 홀은 맹인에게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지만 이를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가 기독교 교인의 딸이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 기회를 찾았다고 생각한 것이다._<자선과 자혜> 중에서
맹인 점복인들은 조선시대 이래 ‘맹청(盲廳)’이라는 조직을 운영해왔는데, 이 조직에서 경제적 활동을 조직하는 것을 ‘문생청’이라고 했다. 문생청에는 양천을 구별하여 좌방과 우방을 두었고, 각 좌우방에는 5개의 문생청이 있었다. 그들은 문생청 조직을 통해 맹인 점복업자들의 경제 활동과 교육 활동을 조직했다. 대한제국을 거쳐 식민 시기에는 이 문생청이 유명무실해졌지만 일부 맹인 점복업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힘겹게나마 ‘부활’했다. 특히 1924년에는 맹인 수십 명이 회합하여 ‘조선맹인조합총본부’를 조직하고 규약 등을 협의한 후 당국에 인가 신청서를 제출하였는데 그 회의 목적이 ‘불쌍한 앞 못 보는 이들이 서로 안마하는 법을 배우며 점자법, 역리 연구 등을 통하여 세상 돌아가는 물정을 알며 또 자기네의 생활 향상을 도모’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 맹청의 기본 강령은 ‘5훈과 5계’라는 조합의 규약으로 명확해졌다. 문생청은 문생계라고도 불렸는데 기능적인 측면에서 계와 유사했다. 당시 조합을 설립한 이유 중의 하나는 “맹인들이 벌이하는 대로 얼마씩을 지정해서 꼭 그거를 내는데, 맹인들이야 거짓말 하는 법이 절대로 없으니까, 많이 벌면 많이 내고. 아주 한 푼도 못 벌면 한 푼도 안 내고. 벌어지는 대로” 기금을 내는 상호부조의 원리에 있었다. 즉 조합은 이 원칙을 보다 체계적으로 시행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_<맹인 조합과 맹인 직업의 변화>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