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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외국 과학소설
· ISBN : 9791159922404
· 쪽수 : 472쪽
책 소개
목차
추천의 말 그해 여름, 환상의 광장에서 만난 이거옌 - 샤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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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의 대담 저는 이 일에 개입할 겁니다 - 이거옌 × 뤄이쥔
감사의 말
옮긴이의 말
리뷰
책속에서
(똑똑. 똑똑.)
샤오룽이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똑똑똑. 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똑?)
늦었어. 샤오룽이 말했다. 그녀가 눈물 가득한 얼굴로, 어깨를 격렬하게 떨었다. 둘은 서로를 꼭 껴안았다.
늦었어. 저 사람들이 들어올 거야.
그들이 문을 밀치기 시작했다. (쾅?) (쾅?)
순식간에 문이 밀쳐지며 열렸다. 사람들 무리가 집으로 걸어 들어왔다. 린췬하오와 샤오룽은 방구석에서 몸을 웅크린 채(방 전체가 모서리 하나, 날카로운 곳 하나 없는 황혼 같은 희미한 불빛에 함몰되어 있었다) 감히 단 한 마디도 내뱉지 못했다.
하지만 린췬하오는 순식간에 알아차렸다. 그 사람들 전부 눈이 없다는 걸.
그들은 눈이 없었다. 어둠이 타락을 향해 쉼 없이 다가서는 이 방에서(원래 잠시나마 존재했던 햇빛도 고요히 멈춰 선 바깥 도시에 의해 영원히 버려진 듯했다) 그들은 시력이 전혀 없는 듯했다. 그들의 얼굴 위로 깊이가 들여다보이지 않는 빈 구멍이 두 개 뚫려 있었다. 그들은 사방을 둘러봤지만 분명 헛수고에 지나지 않았다.
그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보고도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린췬하오가 샤오룽을 꼭 껴안은 채 눈을 감았다. 자기 얼굴 위로 눈물 자국이 느껴졌다.
그는 손가락 끝으로 얼굴을 더듬어보았다.
무서운 깨달음. 자신 역시 눈이 없었다. 그의 눈물 역시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만 같은 텅 빈 구멍에서 나온 것이었다.
“문제가 바로 거기 있는 거예요.”
미녀 국회의원의 펜 끝이 상대를 향했다.
“츄이신, 츄 장군님! 원전 사고가 이미 지나간 일이라고 하셨는데,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대놓고 앞뒤를 바꿔 말씀하시는군요. 원전 사고의 진짜 문제는 지금도 뒷수습해야 할 일들이 남아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도대체 언제까지 뒷수습을 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데 있단 말입니다! 우리가 아는 건 허천두안팡의 재난 지역 탐사 결사대가 베이추이 댐이 심각하게 오염되었다는 소식을 가지고 오기 전에 이미 대만 북부의 수십만 국민이 아무것도 모르고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마셨다는 겁니다! 원전 사고가 난 지 꼬박 열이틀이 지났는데, 사람들이 그 기간 내내 방사능에 오염된 물을 마셨다구요! 우리가 아는 건 작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 54퍼센트를 기록했다는 겁니다! 마이너스 54퍼센트요! 우리가 아는 건 원전 사고로 5분의 1에 달하는 국토가 폐허로 변했고, 과거 대만의 최대 인구 밀집지이자 가장 발전했던 지역이 도대체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아예 없다는 겁니다! 이건 인류가 역사 이래 만들어낸 최대의 폐허에요! 지금 현재까지, 이미 신뢰가 완전히 무너져버린 경제부와 대만전력 말고 우리의 유일한 소식원은 허천 위원장이 제출한 출입금지구역 현황 보고밖에 없다고요! 믿어지세요?”
린췬하오는 유리창에 거꾸로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다시 한번 보았다. 실내 복도의 조명이 하나둘 늘어선 모래시계처럼, 시계추처럼 그들의 머리 위에 열을 지어 매달려 있었다. 그 투명한 용기 안에 담긴 것이 빛이 아니라 불규칙적인 다각형 모양으로 가장자리가 잘려나간, 가늘게 부서진 무수한 유리 가루인 것 같았다.
유리로 된 기관器官의 가루. 부서진 조각. 쇼윈도 안의 유리로 만든 마네킹들처럼, 투명한 체내에 정교한 유리 기관이 셀 수 없이 가득했다. 팔다리와 몸통, 뼈대, 혈관, 신경, 투명한 혈액과 장기 주머니. 그러다가 원인을 알 수 없는 내부 폭발이 일어나 분진이 되고 모든 잔해가 봉인되었다가 모래시계 안의 유동체가 되어버렸다. 봉인된 뒤에는 하나의 방향으로, 영원의 죽음을 향해 다가갔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모래시계가 만들어낸 거울 이미지의 환각 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