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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59922602
· 쪽수 : 316쪽
책 소개
목차
구부전
추억충
왕의 넋
가말록의 탈출
죽은 자들에게 고하라
겨자씨
안개와 더러운 공기 속에서
완성되지 않을 이야기들에 관하여
작가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시아버지가 땅 속에 묻힌 지 보름쯤 지난 날 밤이었습니다. 한참 잘 자고 있는데 멀리서 대문을 쿵쿵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와 함께 저음으로 웅웅 울리는 남자 목소리가 났어요.
자정이 한참 지난 한밤중에 누가 대문을 두드리며 “이리 오너라!”라고 외치고 있었습니다.
짜증이 난 저는 이불에서 기어나왔습니다. 별당까지 들릴 정도로 요란하게 고함을 지르고 있는데 바깥 행랑채 사람들은 도대체 뭐하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보다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데 한밤중에 남의 집 앞에서 저 난리냔 말입니다.
하품을 하며 안채 쪽으로 걸어 나왔는데 분위기가 이상했습니다. 열린 중문 너머로 집안 여자들과 종과 머슴 들이 몰려나와 있는 게 보였는데 아무도 문을 열어주려 하지 않았어요. 다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날 때마다 멈칫거리며 수군대고 있었습니다.
밤바람에 정신이 맑아지자 저 역시 그들이 왜 그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_ <구부전>
물에 젖은 흐릿한 욕실 거울을 바라보며 아무런 생각 없이 칫솔을 꺼내던 윤정은 갑자기 깜짝 놀라 이를 악물었다.
그동안 흐릿하게 그녀의 주변을 맴돌던 모든 것들이 그 순간 한꺼번에 정리되고 명확해졌다.
나는 사랑에 빠졌어, 윤정은 생각했다. 그리고 이 감정은 내 것이 아니야.
_ <추억충>
신 교수는 뒤늦게 신성과학자의 얼굴에 생긴 반짝이는 긴 상처를 눈치챘다. 상처는 왼쪽 눈 밑에서 시작해 뺨을 가로질러 목 뒤에서 끝났다. 과학자는 신 교수의 시선을 눈치채고 엄지로 상처를 쓱 문질렀다.
“영생파 광신도 짓이에요. 두 달 되었어요. 많이 다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 제자 한 명은 다리를 하나 잃을 뻔 했어요. 다행히도 요새는 의술이 많이 좋아졌지요. 그 미치광이는 알렉산드리아 경찰이 사살했어요.”
“죽고 나서 영혼이 천국으로 날아가던가요?”
“살아있을 때도 멀쩡한 상태가 아니었어요. 영생파 신도들만 있는 천국이라니, 끔찍하지 않습니까? 왜들 그렇게 자신의 불멸성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걸까요?”
영생파는 동방교회에서 갈라져 나온 이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하늘과 땅속에 천국과 지옥이 있고, 모든 사람들은 죽은 뒤에 심판을 받고 둘 중 하나로 들어가 영원히 격리된다고 믿었다. 그들은 당연히 모든 과학자들을 싫어했다. 지구가 태양 주변을 돈다는 천문학자들도 싫겠지만 영혼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신성과학자들은 더 싫었다. 그 신성과학자가 탤런트 보유자라면 더욱 그랬다.
_ <왕의 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