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과학소설(SF) > 한국 과학소설
· ISBN : 9791159923029
· 쪽수 : 136쪽
· 출판일 : 2020-05-30
책 소개
목차
외계 신장神將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병화 만신은 점술에 대해서도 이렇게 말했다.
“자기한테니까 내가 솔직담백하게 털어놓는 건데, 우리 무당들이 사람들한테 상담해주고 이러는 거는 사실 심리 상담, 정신 상담 뭐 그런 거나 다름이 없어요. 가끔 진짜로 뭐에 잘못 씌거나 부정 탄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날 찾는 사람들이야 다 뻔하지. 속 답답하고 푸념할 거 많고. 그런 걸 해결해주는 거지. 그럴 때 말도 안 되는 소리 해가면서 사람들 속이고 돈 뜯고 그러는 거는, 그건 제대로 된 무당이 아니고. 그건 사기꾼이지, 사기꾼. 그런 식으로 돈 모으고 하려고 하면 우리도 신령님한테 벌 받아. 괜히 돈 욕심 냈다가 횡액 맞은 언니들을 한두 번 본 게 아니라고. 그러니까, 돈은 어? 각자 될 만큼, 조금씩만 받고, 오늘이 굿도 기주님이 너무 힘들게 살아서 기운 좀 다스려주자고 십시일반 모은 거지, 받은 돈이 이거 준비에 든 만큼도 안 돼. 도와주면서 우리도 도를 닦는 거라니까. 보다시피 무슨 이상한 짓이 아니에요.”
설마설마했지만 정말로 이런 집에서 굿을 하는 걸까.
‘그럴 거면 미리 전문 청소업체라도 부르지. 건강에도 나쁠 텐데.’
나는 속으로 투덜거리며 다시 한번 마스크 콧잔등 부분을 눌렀다.
바깥에서 본 집의 외양에도 위화감을 느꼈지만 내부도 낯설었다. 어두운 현관방 너머로 보이는 넓은 공간은 현대 주택의 거실과도 확연히 달랐다. 심지어 높은 천장에 샹들리에도 달려 있어 작은 호텔 로비 같기도 했다. 창도 생각보다 크게 내어 도저히 투명하다고는 할 수 없는 뿌연 유리를 통해서나마 빛이 들어왔다.
샹들리에가 늘어뜨린 레이스 같은 거미줄을 따라 시선을 내려보니 가늘게 피어오르는 연기 자락이 이어졌다. 시선을 더 내리자 샹들리에 밑에 흰옷을 입은 여자 여러 명이 서 있었다. 가운데에 향은 피우고 있지만 다들 조용히 둘러서 있기만 할 뿐 당장 무슨 굿을 하는 건 아닌 듯했다. 세 명, 아니 네 명. 굿판에서 흔히 보는 빨강, 파랑, 노랑, 강렬한 원색이 하나도 없이 모두 아래위 흰 치마저고리였다.
그러고 보니 우리의 안내역 비슷한 역할인 젊은 무당도 소복 차림이었다. 무표정한 젊은 무당이 총총히 그쪽으로 다가가서 합류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목을 움츠렸다.
‘누가 보면 이쪽이 귀신들이라고 하겠네. 제대로 흉가 체험인데?’
그런데 나는 왜 그런 이야기들을, 이제까지 아무에게도 한 적 없는 말들을 하필 무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사람에게 하고 있는 걸까. 그것도 이런 이상한 지하실에서.
경자는 한마디도 흘려듣지 않겠다는 듯, 주의 깊게 내 말을 듣더니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랬구먼. 그래서 그렇게 미칠까 봐 두려워했어.”
아, 그랬다. 그렇게 간단했다.
경자는 가만히 내 어깨를 쓰다듬었다.
“어떤 일은 그냥 일어나지요."
“네… 네?”
“공부하는 사람들은 논리적으로, 뭔가 아귀가 딱딱 맞게 설명하고 싶어 하는 경향이 유난하던데, 민서 씨도 그렇지 않나? 이래서 저렇게 됐고, 그래서 그렇게 됐고. 다들 그렇게 딱딱 떨어진다 생각하고 싶어 하지만 그렇지가 않아. 그렇게 생각하려다간 더 힘들어져. 일은 그냥 일어나요. 좋은 일도, 나쁜 일도.”
그는 우주의 냉정한 진실을 그렇게 투박한 몇 마디로 요약했다.
물론 이 세상에는 사실 권선징악은커녕 인과 관계도 없다. 우주는 이치에 닿지 않고, 세상은 인간에게 무관심하며, 모든 일은 인과와 상관없이 일어난다. 어디에도 의미 같은 것은 없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다. 그게 너무 가혹해서 우리 모두가 가장 구석진 곳에 애써 뚜껑을 눌러 닫아 처박아두고 외면하는 현실이다.
하지만 무당이란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말해주는 존재가 아니었나? 종교란 다 그런 게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