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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59923234
· 쪽수 : 268쪽
· 출판일 : 2020-12-01
책 소개
목차
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어리고 젊고 늙은 그녀들, 스미다
우리들의 우리들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작가의 말
추천의 글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한나가 교무실 문 앞에 섰을 때였다. 안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양소영 선생 막 입고 다니는 건 여전해. 요새 애들, 선생들 옷 브랜드 귀신같이 알아내는데.”
못마땅하다는 투의 목소리였다.
“폭탄 처리반이잖아요. 묵언수행 중이랍니다, 그 아이. 뭐 우리한텐 좋은 일이지요.”
울림통이 큰 목소리였다.
양소영 선생이라면 한나의 담임이 될 사람이다. 폭탄이라면 자신을 두고 하는 말이라는 걸 한나는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한나는 안에서 하는 이야기 소리가 멈추자 노크를 하고 교무실 문을 열었다. 입구 쪽을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덩치가 큰 선생님은 한나를 보자마자 묵언수행 중인 전학생인 걸 알아본 모양이었다. 아무런 말없이 수어를 하는 사람처럼 유리창 근처에 뒷모습을 보이고 있는 사람을 가리켰다. 그 사람은 상체를 숙이고 엉덩이를 뒤로 뺀 자세를 하고 있었고, 까맣고 긴 생머리는 물결 모양을 이루며 허리께까지 늘어져 있었다. 큰 책상이 하체를 가리고 있어서 한나가 가까이 다가갔을 때에야, 몸 전체가 보였다. 양소영 선생은 한쪽 귀에 전화기를 낀 채 뭔가를 적고 있었다
_<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여름의 머리는 지난 주 내내 유교 걸이 보기 좋은 머리라고 칭찬했던 것에서 투 블록 커트로 바뀌었다. 수학 시간 유교 걸은 여름의 짧은 단발을 보며 뿌듯한 미소를 보였고 여름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문제를 가볍게 풀어나갈 때는 여름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수진이 “또라이 년”이라고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한나는 들을 수 있었다.
여름은 주머니에서 조그만 스프레이를 꺼내 머리에 뿌리며 말했다.
“정전기 때문에. 레몬즙으로 만든 거야. 냄새 괜찮지?”
여름의 머리에 수많은 물방울이 내려앉았다. 여름이 손가락 빗질을 할 때마다 레몬향이 났다. 여름의 둥글게 솟은 이마와 끝이 적당히 둥그스름한 코와 날씬한 목선과 선명한 목젖이 드러났다. 탄산의 기포처럼 스르르 올라오는 청량한 느낌이었다.
_<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
“나야? 정말 날 그려준 거야? 정말 기분 좋다. 네가 나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잖아. 이 그림 완전 마음에 들어.”
“그만 돌려줘”
한나는 말을 할 때 가늘게 떨리는 자기 목소리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싫어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네 목소리 이런 거였구나.”
여름이 살짝 웃었다. 비웃는 것 같았다. 한나가 여름의 손에 있는 스케치 노트를 확 잡아챘을 때 갑자기 여름이 비명을 지르며 코를 감쌌다. 책상 위에 있던 목탄 케이스 뚜껑이 열려 목탄들이 여기저기로 튕겨져 나갔다. 그때 아이들이 쏟아져 들어왔다. 여름을 찾던 무리들이 눈앞에 벌어져 있는 상황에 만들어내는 소리는 전기주전자 물 끓는 소리 같았다
_<사랑을 말할 때 우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