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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60160178
· 쪽수 : 292쪽
· 출판일 : 2017-03-28
책 소개
목차
책을 펴내며
추천사 : 죽비법문은 부처님 팔만사천 법문의 압축판
제1부. 견성(見性)을 해야만 인생의 참 주인공으로 익어 갈 수 있다
불(佛), 법(法), 승(僧) 삼보예경은 기본 예의이다
부처님을 만난 사람들이 설법에 곧장 깨치다
사성제를 바로 알아 불법(佛法)의 진리를 보다
불교는 바르게 알고 믿는 종교이지 맹목적이지 않다
발심(發心)이 된 사람은 곧장 깨칠 수 있다
견성(見性)을 해야만 비로소 수행의 첫 시작이다.
견성(見性)! 깨침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보편적 진리이다
유위법과 무위법을 통해 지혜의 문(門)으로 들어가다
삼법인(三法印)으로 해탈을 증득하다
나! 어디에서 왔는가? 어디에서 생겼는가?
(죽비) 탁! 완전한 존재를 바로 보이다
가장 소중한 보배는 지금 쓰고 있는 이 작용이다
성불(成佛)과 소중한 자아를 찾는 것, 무엇이 중요한가?
조작되지 않은 완전무결한 무위법이 바로‘참 진리’
깨치든 못 깨치든 본래 모두 같은 부처의 성품이다
인연만 되면 작용하는 이것이 참다운 ‘무아(無我)’이다
한 생각 일어나기 전 소식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다
지혜를 얻어서 행복하게 익어가다
제2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뜻
올바른 지혜 ‘1차작용’을 단박에 이르다
진리는 생각으로 이를 수 없는 도리이다
소를 타고 소를 찾으러 나가지 마라
필요에 의한 생각과, 과거와 미래의 헛된 생각을 구분하라
허상, 스스로 만든 그림에 속지마라
오온(五蘊), 부처와 중생을 가르는 기준점이다
깨치든 못 깨치든 상관없이 본래 생사(生死)는 없다
깨친 후 뒤집힌 관념을 바로 잡는 연습을 통해 완성하다
깨달음은 모든 종교를 초월해서 누구든지 할 수 있는 보편적인 것
인식의 대전환을 통해 주인공을 바로 알다
제3부. 생각의 노예에서 벗어나 진리를 바로 보다
맹목적인 기도와 기복은 바른 불법(佛法)이 아니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한 생각이 운명을 결정짓는 씨앗이다
한 생각은 어디에서 일어나는 것인가?
스스로 그린 상상의 그림에 속아 거꾸로 뒤집히다
상상의 그림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면 해탈이다
망상은 작용 후 상상이 덧붙어 만들어진 허상이다
허상의 실체를 바로 알아 부처님 세계로 들어가다
진실한 부처님 세계는 오직 작용으로 드러나다
제4부. 무아(無我)와 공(空)을 바로 알아 중도를 체득하다
제5부. 탁마 토론으로 지혜를 바로 쓰는 연습을 통해 익어가다
후기 : 소를 타고 소를 찾아 나서는 여행길♬
책속에서
스님과 다시 마주 앉았습니다.
깨달음에 대해 내 ‘생각’에 입각해서 ‘집요한 추궁’을 했습니다. 깨달음 뒤에 수행이라니, 그리고 그 수행이 유별난 것이 아니라니. 이제 드디어 깨달음의 ‘실체’에 대해 물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수행 없이 어떻게 깨달음이 있을 수 있습니까?”
“그리고 그 깨달음이 도대체 뭡니까?”
노장님은 다시 죽비를 들어 치셨습니다.
“탁!”
“탁, 탁!”
들립니까?
“당연히 들리지요.”
이번엔 죽비를 들어 세우면서,
“보입니까?”
“보입니다.”
“들으려고 해서 들었습니까. 보려고 해서 보았습니까. 아니면 그냥 들리고 보였습니까?”
“그냥 들리고 그냥 보였습니다.”
“(탁! 탁, 탁!) 들으려 애쓰지 않아도 들리는 이것, 보려고 애쓰지 않아도 보이는 이것, 이것이 바로 스스로의 참 모습입니다.”
.
.
.
(“앗!”)
노장님의 법석에 한 번이라도 참석한 사람이라면, 노장님의 법문을 한 번이라도 들은 사람이라면 노장님의 죽비 소리를 안 들어본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노장님과 죽비 소리는 둘이 아닙니다. 죽비 소리가 노장님이고, 노장님이 죽비 소리지 않습니까.
노장님의 죽비법문은 부처님 팔만사천법문의 압축판입니다.
부처님에게 한 송이 꽃이 있었다면[拈花示衆], 백운 노장님에게는 죽비가 있는 것입니다.
20대 말에 불자가 된 저는 끊임없이 깨달음을 추구하고, 깨달음을 위한 자리라면 어떤 곳이든 마다 않고 달려갔습니다. 염불, 간화선, 묵조선, 위빠사나까지.
그리고 어떤 곳에서는 제법 ‘변화’도 맛보고, ‘인가(?)’를 얻은 곳까지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이후였습니다.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so what?)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하고, 신통력을 얻었다 하더라도 그래서 어쨌단 말이냐?
아무리 신비한 체험을 하더라도 그 체험은 일시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고, 그 다음 결국 우리는 현실로 돌아와 현실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는 이 사실을 우리는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깨달음이 지금, 여기(now and here)를 떠나 있다면 그 깨달음은 결국은 깨어질 수밖에 없는 ‘유리알’ 깨달음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백운 노장님의 죽비법문은 신비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습니다. 죽비 하나로 들려주고, 보여주고 있습니다. 감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법문이 이루어지고, 현장에서 바로 본성자리를 보여주고 들려줍니다.
이 책 제목과 꼭 같습니다.
《아! 깨달음이 이렇게 쉬울 줄이야》.
상상의 세계가 가짜인 줄 먼저 바로 알고 난 후
거기에 묶이지 않는 연습을 통해
그림의 노예에서 벗어나면 해탈한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탈 하느냐?
그것은 모든 2차 작용이 허상(虛想)이라는 것을 먼저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허상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들어오는 생각에 상관을 안 하게 됩니다. 들어오는 생각에 관여를 할 필요가 없게 되지요.
생각에 관여 하지 않는 것은
곧 일어나는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생각을 아무리 받아들여도 그 생각에 집착을 하지 않게 됩니다. 집착을 안 하면 생각이 들어왔다가 바로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려요.
이러한 이치를 바로 알고 허상에 속지 않으면 언제나 실상의 세계를 살게 됩니다. 이러한 실상의 세계가 바로 물들지 않는 부처의 세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