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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불교 > 불교 경전/법문
· ISBN : 9791160160673
· 쪽수 : 176쪽
· 출판일 : 2020-06-26
책 소개
목차
성性과 상相을 원융한 불법의 통론 6
유식학과 반야ㆍ열반사상을 회통한 ‘심경통석’ 8
반야심경과 불교핵심사상을 공부하는 지침서 14
<반야심경> 경문 21
<반야심경통석> 26
제1부 통론부
제1장 서설(序說) 26
제2장 세간(世間)의 진상(眞相) 27
제1절 고(苦) 27
제2절 업(業) 36
제3절 혹(惑) 53
(1) 근본번뇌(根本煩惱) 54
(2) 수번뇌(隨煩惱) 64
제3장 해결(解決)하는 방법(方法) 73
제1절 오온(五蘊) 77
제2절 십이처(十二處) 83
제3절 십팔계(十八界) 85
제4절 십이연기(十二緣起) 90
제5절 사성제(四聖諦) 97
(1) 사념주(四念住) 100
(2) 사정근(四正勤) 111
(3) 사신족(四神足) 113
(4) 오근(五根) 114
(5) 오력(五力) 114
(6) 칠각지(七覺支) 115
(7) 팔정도(八正道) 116
제4장 결론 120
제2부 경문 주해부
제1장 전단: 인법(人法)을 총설하시다 128
제1절 반야의 인법(人法) 128
제2절 반야의 소법(所法) 138
제2장 후단: 법상(法相)을 드러내고 이생(利生)을 선설하시다 148
제1절 오온의 본성 149
제2절 공(空)의 본성 152
제3절 공성(空性)의 현증 157
제4절 반야의 인과 무상과(無上果) 162
제5절 반야의 신용(神用) 170
책속에서
저 번뇌를 어떻게 끊을 수 있느냐? 진실로 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밖의 것도 모두 탁상공론(卓上空論)이 될 것이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꼭 알아야 할 것이니 번뇌의 복잡함이 어지러운 실타래와 같아서 복잡다단할 뿐만 아니라 이 번뇌가 사라지면 저 번뇌가 다시 일어나니 그것을 어찌 쉽사리 끊겠는가? 좋은 방편이 없고서는 반드시 좋은 결과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첫머리에 아집(我執; ‘나’라는 집착)을 쳐부셨으니 그 법이 참으로 가장 좋은 방편이다. 모든 탐냄, 성냄, 어리석음, 거만 따위가 생기게 된 것이 아집(我執) 때문이며, 모든 나쁜 소견이 일어나는 것도 또한 아집(我執) 때문이다.
아(我)에 고집하기 때문에 다시 아소(我所; 내 것)를 고집하여 아집(我執)과 아소(我所)가 치성하고 견고해져서 탐냄, 성냄, 거만, 의혹 따위가 그로 인하여 생기게 된다. 만일 아(我)를 고집하지 아니하고 아소(我所)를 찾아 헤매지 아니하면 다시 무슨 탐욕이 있으랴. 아(我)가 공(空)해서 나를 어기는 것이 본래 없는데 무슨 성냄이 있으랴. 아집(我執)을 떠나면 자타(自他)가 평등한데 무슨 거만함이 있으랴. 법(法)에는 본래 ‘나’가 없음을 통달하여 밝게 보아서 헷갈리지 아니한데 무슨 어리석음과 의혹이 있으랴. 그러므로 모든 번뇌가 다 ‘나’로 말미암아 생겼나니 ‘나’라는 소견(所見) 없어지면 모든 번뇌가 영원히 없어진다.
‘나’를 고집하기 때문에 ‘나’라는 존재가 없어진다[단견斷見]고 보거나 항상하다[상견常見]고 잘못 생각하여 뒤바뀌게 분별하면서 온갖 삿된 소견을 일으키어 어떤 방편을 볼 적에는 그것을 수승하다고 고집하며, 그 벗어나는 방법에 대해서도 다시 이취(二取: 아집취我執取와 명언취名言取)를 내거니와, 만일 아견(我見)이 없어지면 모든 소견(所見)들이 그 뿌리를 잃어버리게 된다. 그것이 마치 머리가 땅에 떨어짐에 목숨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어 오관(五官)과 백해(百骸)가 함께 다 죽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아견을 끊으면 소견을 다 떠나게 된다. 그로 말미암아 부처님께서 “번뇌를 끊으매 아견을 끊는 것이 근본이 된다”고 하신 것이다.
아집(我執)을 끊으려 하면 이와 같은 ‘나’가 참으로 있는 것인가, 참으로 없는 것인가를 응당 먼저 관찰해야 한다. 만일 이 ‘나’가 참으로 있으면 그를 끊을 수 없을 것이요, 만일 ‘나’가 없다면 끊을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 ‘나’가 있는가 없는가를 알도록 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헛수고를 하지 않도록 법상(法相: 천지만유의 모양)을 분석하시되 오온(五蘊)ㆍ십이처(十二處)ㆍ십팔계(十八界)의 법을 말씀하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그 실아(實我)가 있는 것이 아님을 깊이 관찰하게 하셨다.
십지(十地)를 이루기 이전의 보살은 여래의 성스러운 가르침에 의지하여 불법을 믿고 공부하며, 제법(諸法)을 관찰하나, 아직 진각(眞覺)을 이룬 것은 아니다.
초지(初地)를 이룬 이후에는 법성(法性)을 관찰하게 되며 진각(眞覺)을 이루었다. 그러나 구생번뇌(俱生煩惱)와 소지(所知)장의 두 가지 장애가 남아있어 현행(現行) 간에 섞여 있는 상태다. 이런 이유로 법성을 관하더라도 아직 자재(自在)하지 못하다.
팔지(八地) 이후에는 두 가지 장애를 영원히 조복(調伏)한다. 두 장애가 현세에 얽힘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으며, 무상을 진실로 관하게 되고[無相眞觀], 더 이상 보탤 계행이 없으며[無有加行], 다시는 장애로 인한 중단이 없으며, 오래도록 상속하게 되니, 이를 관자재(觀自在)라 한다. 또한 대신통(大神通)을 얻으며, 위덕(威德)에 막힘이 없으며, 뜻에 따라 관찰하면 모든 상이 현전(現前)하여, 땅을 물이나 금으로 바꾸는 등 승해(勝解)가 자재하니, 이 또한 관자재라 한다. 이와 같은 자재를 구족(具足)한 보살을 이름하여 관자재보살이라 이름하는 것이다. 곧 관자재보살은 공(空)을 비추어보고 괴로움[苦]을 영원히 떠나버리신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