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미지
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일본소설 > 1950년대 이후 일본소설
· ISBN : 9791160271522
· 쪽수 : 432쪽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 시절, 마차 안에서 꽃밭에서, 딱 하나 있던 자매의 방에서, 같이 다니던 일본어학교 뒷마당에서, 수도 없이 맹세했는데. 그건 결코 어린아이의 실없는 소리가 아니었다, 어떤 남자도 으레 자신들 자매 사이에는 끼어들 수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랬기 때문에 ? 라고 미카엘라는 생각한다 ? 우리는 사춘기가 지나고도 모든 남자 친구를 공유해 왔던 것 아닐까. 그리고 서로 평가했다. 그 남자 아이의 성격에 대해 외모에 대해, 부모님에 대해 머리의 좋고 나쁨에 대해, 키스 방식이며 잠자리 행동에 대해서도. 그때 일을 떠올리며 미카엘라는 미소 짓는다. ‘공유’에 실패하는 일은 좀처럼 없었다. 둘 중 누군가에게 남자 친구가 생기면 바로 소개하고 함께 어울려 놀았으며, 그러다 데이트에 자신 대신 언니를(혹은 동생을) 내보냈다. 감기에 걸렸다거나 이가 아프다거나, 오늘은 보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등 적당한 핑계와 함께. 휴대전화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었기에 그런 일은 정말 자주 있었다. “어땠어?” 서로 상대의 보고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곤 했다. 키들키들 웃고 눈짓에다 호들갑스러운 몸짓에다 방에 들고 들어온 싸구려 와인까지 한몫해서 급기야 호흡 곤란이 올 정도로 포복절도했다. 변명의 여지없이 아주 나빴다, 그 시절의 우리는.
아침은 먹었냐고 묻자 사와코는 먹었다고 대답했다. 토마토를 얹은 토스트와 어젯밤에 만든 콜리플라워 수프를 먹었다고. “닷 짱은?” 묻기에 운동 끝나고 먹을 생각이라고 대답했다. 우동이든 햄버거든 뭔가 간단한 것을. “그래.” 사와코가 말했다. 평소와 다름없는 온화한 어조로, “맛있는 집이면 좋겠다.” 라고. 안심해도 되는 걸까. 전화를 끊고, 나아갈 생각을 하지 않는 차량 행렬에 조바심을 내면서 다쓰야는 생각한다. 사와코와 자신 사이에는 아무 문제가 없으며 ? 아무리 그래도 문제가 전혀 없는 부부가 있긴 할까? 다쓰야에게는 그것도 수수께끼였다 ? 그 메일은 미카엘라가 불안정한 탓이다, 라고 결론지어도 되는 걸까. 아내가 곁에 있는데도 없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는 건 외국에서 자란 여자와 결혼한 남편들이 모두 안고 있는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 라고?
“넌 그렇게 못 할 거야.” 15개월 전, 사와코는 다부치에게 말했다.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걸 다 버려두고, 나고 자란 나라를 떠나는 일, 너는 못 할 거야.”라고. “어째서?” 다부치는 신기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사와코 씨가 한 일을 왜 나는 못 할 거라고 생각하는지.” 그때가 여름 끝자락이었고 다부치는 발갛게 그을려 있었다. 가족끼리 바다에 다녀온 참이라고 했다. “간단한 일은 아니었으니까.” 사와코는 그렇게 대답했다. 진짜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오직 한 남자를 전부라고 믿고 그전까지의 인생과 분리된 장소에서 산다는 것은. 특히 자신이 그 남자의 아내라는 특수한 소유물이 되고 나서는. “할 수 있어요.” 다부치가 말했다. “해 보일 겁니다. 약속해요.”하고 싱긋 웃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