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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뫼를 찾아서

미륵뫼를 찾아서

(김성동 유고 역사 에세이)

김성동 (지은이)
작은숲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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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뫼를 찾아서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미륵뫼를 찾아서 (김성동 유고 역사 에세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351576
· 쪽수 : 740쪽
· 출판일 : 2024-09-22

책 소개

<만다라>로 널리 알려진 소설가 김성동의 유고 역사 에세이. 작가가 양평 용문산 자락 덕촌리에 머물 때 미륵뫼(양평 용문산의 옛이름)에 발자국을 남긴 인물 이야기를 각종 사료에 근거하여 집필한 육필 원고 2024매를 책으로 엮은 것이다.

목차

1부 미륵뫼 전사(前史)
미륵뫼를 바라보며
궁예 카르마
궁예는 누구인가?
‘불한당’이 된 ‘불켠당’
당취부대
목탁을 던지고 칼을 잡다
「전봉준공초」와 왜말
미륵세상 꿈나라
우리 모두 미륵이 되자!
미륵님 세월이 오면
미륵님이 오셨다!
궁예는 어디로 갔나?
문허진 잣터에서

2부 미륵뫼와 개화파

프랑스 침략군 몰살시킨 병인양요
사라져버린 벌대총(伐大驄)
주송(朱宋)주의자 리항로(李恒老)
주자주의자 송시열(宋時烈)
미륵뫼 유장(儒將) 양헌수(梁憲洙)
백의정승(白衣政丞) 유대치(劉大痴)
민족 반역자가 된 임금 사위
갑신정변 돌격대들
몇 사람이나 올림대 놓았을까?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천재 김옥균 테두리
3일천하였던 부르조아혁명
조선말 하는 왜놈·양놈
먹물 환관과 어처구니 여장사
사라져버린 별들
‘젊은 그들’은 어디로 갔나?
리동인(李東仁) 스님과 온건개화파들
어재연(魚在淵) 장군, 수(帥)자기
‘부르조아 민족주의자’ 유길준 집안

3부 미륵뫼 의병

미륵뫼 총댕이 우두머리 김백선 장군
양반 의병장과 평민 싸울아비어미
충주성 두려뺀 미륵뫼 총댕이들
“왜놈은 얼레빗 되놈은 참빗”
외로웠던 임금 광해군(光海君)
계급갈등으로 찢겨지는 의병들
다시 일떠선 미륵뫼 총댕이들
일떠서는 의병들
만고영웅 김백선(金伯善) 장군
아, 김백선(金伯善) 장군!

4부 미륵뫼의 김성숙

미륵뫼에서 온 붉은 승려 김성숙(金星淑)
‘황야’에 선 사회주의자 김성숙(金星淑)
‘광동꼬뮨’에 든 붉은 승려
<민주주의민족전선>으로!

5부 미륵뫼의 여운형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미제국주의가 풀어놓은 사냥개
만압귀방(萬壓歸放) 방귀하처(放歸何處)
8개국어에 막힘없던 여운형
‘미스터 코리아’ 여운형
“란구야, 갈아입을 옷 마련해 놓거라”
항왜 혁명가들이 세운 〈조선인민공화국〉
‘장덕수(張德秀)들’이 판치는 세상
몽양(夢陽) 선생은 누가 죽였는가?
쌍구슬이었던 여운형(呂運亨)과 박헌영(朴憲永)
나라를 찾기도 전에 팔아먹은 리승만(李承晩)
리석태(李錫台)의 『사회과학대사전』에 오른 여운형
조선제일 남중일색 여운형 선생

부록
「공산당선언」

뒷이야기
긴짐승 발
붓을 빨다 말고

해설 | 김영호 문학평론가
고루살이를 향한 그리움의 진언(眞言)

저자소개

김성동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47년 음력 11월 8일 충청남도 보령에서 태어났다. 내림줄기 있는 유가에서 어릴 때부터 우국지사 유학자 할아버지한테 한학 가르침을 받고 자랐다. 해방 바로 뒤 뒤죽박죽과 한국전쟁 소용돌이 속에 아버지와 큰삼촌은 우익한테 외삼촌은 좌익한테 처형당하고 ‘아버지’와 ‘집’을 빼앗긴 채 유·소년기를 줄곧 전쟁난리와 이데올로기가 남긴 깊은 흉터 속에서 헤맸다. 1954년 옥계국민학교 입학, 1958년 서대전국민학교로 전학, 1960년 삼육고등공민학교 입학, 1964년 서라벌고등학교 2학년 2학기로 편입했고 1965년 3학년 1학기에 자퇴서를 내고 도봉산 천축사로 출가·입산해서 지효대선사(智曉 大禪師) 상좌(上佐)가 됐다. 법명 정각(正覺). 산문(山門) 안에서는 산문 밖을, 산문 밖에서는 산문 안을 그리워했다. 1975년 <주간종교> 종교소설 현상 공모에 원고지 120장짜리 단편소설 「목탁조(木鐸鳥)」가 당선되어 활자화됐으나, 불교계를 악의적으로 비방하고 전체 승려를 모독했다는 조계종단 몰이해로 만들지도 않은 승적을 빼앗겼다. 1976년 늦가을 하산했다. 1978년 ‘한국문학 신인상’ 현상공모에 중편소설 「만다라」가 당선되었다. 이듬해 이를 장편으로 고쳐 펴내어 문단과 독서계에 커다란 메아리를 불러일으켰다. 이후 섬세하고 빈틈없이 느긋하게 독장치는 ‘조선 문체’로 한국 근·현대사 생채기와 구도(求道) 나그넷길에서 ‘있어야 할 까닭’을 더듬어 찾는 문제작들을 널리 알려왔다. 1998년 <시와 함께>에 고은 선생 추천으로 시 「중생」 외 10편을 발표하며 시작(詩作)활동도 하였다. 1983년 해방전후사를 밑그림으로 하는 장편소설 『풍적(風笛)』을 <문예중앙>에, 1960·1970년대 학생운동사를 다룬 장편소설 『그들의 벌판』을 <중앙일보>에 이어싣다가 좌익 움직임을 다룬 속뜻과 반미적 속뜻이 문제되어 각각 2회·53회 만에 중동무이되었다. 1983년 중편소설 「황야에서」로 ‘소설문학 작품상’을 받게 되었지만 문학작품을 상업적으로 써먹으려는 주관사 측 속셈에 맞서 수상을 뿌리쳤다. 소설집으로 『피안의 새』(1981), 『오막살이 집 한 채』(1982), 『붉은 단추』(1987), 『그리운 등불 하나』(1989), 『민들레꽃반지』(2019), 『눈물의 골짜기』(2020) 등을, 장편소설로 『만다라』(1979), 『집』(1989), 『길』(1991), 『꿈』(2001), 『국수(國手)』(2018) 등을, 우의(寓意)소설로 『김성동의 죽고 싶지 않았던 빼빼』(1981), 『염소』(2002) 등을, 산문집으로 『부치지 않은 편지』(1981), 『그리고 삶은 떠나가는 것』(1987),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1990), 『김성동 생명에세이』(1992·원제 『생명기행』), 『미륵의 세상, 꿈의 나라』 상권(1993), 『김성동 천자문』(2004·2022), 『현대사 아리랑-꽃다발도 무덤도 없는 혁명가들』(2010), 『한국 정치 아리랑』(2011), 『염불처럼 서러워서』(2014) 등을 냈다. 신동엽창작기금(1985), 행원문화상(1998), 현대불교문학상(2002)을 받았고, 단편 「민들레꽃반지」로 제1회 리태준문학상(2016), 소설집 『민들레꽃반지』로 요산김정한문학상(2019)을 받았다. 김해 신어산 백룡암, 영동 천태산 영국사, 설악산 백담사, 너브내 나루터 닷곱방, 남양주 대궐터 봉영사, 광릉수목원 곁 봉선사, 광릉내 곁 우사암(牛舍庵), 양평 고읍내(古邑內) 까대기, 오대산 진부 토굴, 양평 청운면 우벚고개 비사란야(非寺蘭若), 용문산자락 덕촌리(德村里). 25년 동안 열한 군데를 풍타낭타(風打浪打)하다가 2021년 ‘조선의 별’이었던 김삼룡 선생 옛살라비인 충주에 바랑을 풀며 충주 얼안 해방동무들과 ‘역사기행’을 꿈꾸다가 2022년 9월 25일 우리 곁을 떠났다.
펼치기

책속에서

| 우리는 지금 잘못된 역사만 알고 있다. 반쪽 역사는 죄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이른바 ‘역사’라는 것은 승자의 기록이라고 한다. 승자들이 꾸려가는 역사가 바로 오늘 이 현실인 것이라면, 역사의 패자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패자의 남겨진 자식들은 말이다. 잘못된 역사를 탄식만 하고 있을 것인가? 마침내는 그리하여 ‘비단할아버지에 거적자손’이 되고 말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우리는 적어도 역사에서 밀려난 우리 할아버지들이 이루고자 하였던 세상이 어떤 세상이었는지는 알아야 한다. 그 아름답고 훌륭한 세상을 이루고자 어떻게 움직이다가 어떻게 그리고 왜 쓰러지게 되었는가 하는 ‘역사의 진실’만큼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자손된 도리가 아니겠는가. 이런 생각에서 해 보는 이야기이다. 역사에 관심 있는 이들 가르침과 꾸짖음을 기다리며 역사를 생각해 보는 마음 애잡짤하고녀.
군소리 한마디.
사람이 가장 먼저 해야 될 일이 있으니, 역사를 궁리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잘못된 역사만 알고 있다.
반쪽 역사는 죄 지워 버렸기 때문이다.
역사외곡 죄는 당대로 끝나지 않으니, 그 폐해가 후대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은 진서로 ‘史覽’으로 쓰니, 역사를 볼 줄 알아야 마침내 ‘사람’일 수 있다는 말이다.


| 모자라는 중생이 나선 까닭은?
굽도젖도 할 수 없이 뇌세포 죽이는 싸구려 화학주나 마시며 막막해 하는 이 중생 얇은 등짝 후려치는 죽비소리가 있었으니, 나간이들이었다. 60년대 가운데 때 절집 뒷방에 구겨박질려진 채로 푸대접 넘어 귀찮고 꺼림칙한 짐짝 다룸새 받던 극로비구(極老比丘)들. 한쪽 팔이 없거나 다리 한쪽이 떨어져 나갔거나 눈알 하나가 빠져나갔거나 마른버짐 많은 머리통 한쪽이 움푹 꺼지고 얼음박힌 손가락 발가락이 뭉턱뭉턱 떨어져 나간 그 늙고 병든 스님네는 10대 중후반 꿈 많던 꽃두루로 갑오년 멱치기 싸움 들었던 개남장(開南將) 그늘대 싸울아비들이었다.
갑오년 싸움 떠올릴 적마다 아득한 눈빛이 되던 그이들었다.
“미륵뫼 당취가 젤 ㅤㅆㅔㅆ지. 일금강(一金剛) 이지리(二智異) 삼용문(三龍門)이라고 했지만 진짜로는 용문산, 그러니까 미륵뫼서 온 당취들이 젤 무서웠다니까. 악양반 악지주 악공다리 가왜놈들한텐 말이지.”
‘큰 묏부리가 하늘을 꿰뚫어 동이를 엎은 것’ 같은 용문산 본디 이름은 미륵뫼였다. 1,157미터인 이 산은 엄청난  역사를 품고 있으니 저 천 년 앞 궁예로 비롯해서 리항로, 양헌수, 유대치, 서장옥, 김백선, 김성숙, 여운형 같은 이들이(주송주의자 이항로만 빼고) 그 아름다운 이름이다. 여기에 반드시 그 이름을 올려야 될 어른들이 계시니, 이름 없이 돌아가신 의승병들이다. 세계 최강 관동군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이 미륵뫼총댕이 출신 ‘노인부대’였다는 것을 아는 이는 거의 없다. 이른바 일류대학 나오고 도일유학·도미유학·도구유학을 했다는 박사 역사학자라는 이들이 죄 입을 다물고 있기 때문이다. 알고도 힘부림하는 물건들 무서워라기보다 밥그릇 뺏길까 두려워 입을 닫고 있는 것인지 정말 몰라서 말하지 못하는 것인지 알 수 없으나, 그들 불치(不齒) ‘사레기’(쓰레기역사가) 젖히고 이많이 모자라는 중생이 나선 까닭이다.


| 마지막 빨치산은 남부군이 아니다?!
사람들은 빨치산이라면 ‘남부군’만 있었던 것으로 안다. 그런데 지리큰뫼 남부군보다 더 오래 그리고 더 알차게 앙버텼던 것이 미륵뫼 빨치산이었다는 것은 모른다. 살아남은 이들이 죄 북녘으로 올라갔기 때문이고, 그 남겨진 떼전들 입에다 시멘콘크리트를 치고 있는 탓이다.
할아버지와 어머니와 그리고 하늘에 사무치는 크나큰 원 품고 열반하신 ‘오여손잽이’ 남겨진 자식들한테 들었던 그 이야기를 다시 듣게 된 것은 산문(山門)에서였다. 어언 반백년이 훨씬 넘었으니, 60년대 가운데 때였다. 남조선노동당 경상남도당 인민무력부 딸린 싸울아비였던 그 늙은 나간이스님은 아무도 없는 네둘레 둘러보며 목소리를 낮추던 것이었다. 마지막까지 앙버텼던 것이 미륵뫼 빨치산이었다고 하였다. 남부군이 절딴난 다음, 그러니까 이른바 휴전이 되고도 한 대엿 해 더 싸웠다고 하였으니, 그림표로 그려 보면 이렇게 되겠다.

궁예미륵 → 묘청미륵 → 신돈미륵 → 미륵뫼 당취 → 미륵뫼 승병 → 미륵뫼 빨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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