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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0871425
· 쪽수 : 239쪽
· 출판일 : 2025-08-25
책 소개
목차
서문
또 하나의 작은 서문
1. 표현주의자들
이런 작업은 이성이 어지럽히는 일이 없도록 충분히 주의하면서 해야 한다.
흰색 | 시인들 | 이미지 수업 | 당황 | 번역 | 필명 | 키보드와 펜 | 애완시대 | 옷걸이 | 정체성 | 나무 | 안개 | 시라는 논리
2. 거울을 의심하는 사람
에세이를 쓰는 것은 꽁지를 까딱거리는 새의 발밑에 밑줄을 그어 주는 일 같다.
우아 | 인용문 | 배려 | 느낌 | 소설 | 얼굴 | 에세이 | 0 | 환상통 | 춤 | 환승 음악 | 오키프의 꽃 | 곡물 | 수련 | 단어들 | 내 친구 왕룽 | 가장 정교한 울음 | 사모 | 이해 | 사랑
3. 대화용 식탁
두부는 아무 소용없을 것 같은 모서리를 보여주었다.
두부의 흰빛 | 두부형 인간 | 두부의 할 말 | 두부 때문에 | 옥수수범벅 이야기-하나 | 옥수수범벅 이야기-둘 | 옥수수범벅 이야기-셋 | 옥수수범벅 이야기-넷 | 옥수수범벅 이야기-다섯 | 오이의 맛 | 오이향 | 오이꽃 | 오이장아찌 | 부추전 | 단무지 | 무조림 | 만두 | 하리보 | 김밥 | 배추 | 귤 | 달다 | 나박나박 | 밥 | 달걀 | 요섹남 | 자두 | 숟가락 | 사과
4. 사물중독자
장미는 이미 빨강이라는 함정에 빠진 것 같다.
물 | 쇠 | 돌 | 흙 | 불 | 칼 | 컵 | 유리 | 거울 | 모래 | 이불 | 침대 | 피아노 | 반지 | 장미 | 서리 | 연못 | 바다
5. 현실을 여행하는 생활자
먼지는 작은 기침에도 예민하게 날아올랐다.
하늘 | 망했다! | 눈사람 | 냉장고 | 형식 | 먼지 | 조깅 | 욕망의 추 | 잠 | 추앙 | 산책 | 이모티콘 | 여행 | 수와 시 | 요가 | 지금 | 숨 | 관계 | 잘 | 밀양
저자소개
책속에서
흰색은 공개적인가 하면 비공개적인 시선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흰색으로 된 사물들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어쩌다 보니 벽도 옷장도 심지어 그 위에 놓아둔 항아리도 이 방을 나설 수 있는 문조차도 모두 흰색으로 되어 있다. 나는 지금 흰색에 갇혀있다. 흰색은 무표정하면서도 예리한 질문을 던지는 것 같다. 오늘 하루에 대해서 무어라고 하고 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다. 흰색의 말, 흰색의 생각, 흰색이 지향하는 방향. 이 방에 들어설 때마다 흰색은 내게 강력한 요청을 하고 나는 회피한다. 흰색은 백지를 앞에 둔 작가들처럼 무엇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가. 흰색은 모든 의미들을 수용할 것 같지만 결국 아무것도 표상하지 않으려는 듯 고집을 피우며 오염되는 걸 두려워한다. 보이지 않는 얼룩을 불안해한다. 흰색은 강자이면서 약자의 감정에 시달린다. 언젠가 흰색에게 이런 말을 들은 것도 같다. 흰색은 자신의 괴로움과 고독함과 얼굴을 붉힐 수 없는 자신의 차가운 피에 대해서 늘 피로를 느낀다고. 흰색은 흰색이라는 정의와 순수에 대해서 뼈가 저린 표정을 짓곤 한다. 어쩐지 흰색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 같다.
키보드는 감정을 즉설하게 만들지만 펜은 종이 위에서 감정을 유예시킨다. 키보드로 글을 쓰고 있지만 펜에 대한 애착은 따로 있다. 키보드를 두드리는 것으로 시작하는 글쓰기는 책이라는 실체가 만들어짐으로써 끝이 난다. 하지만 책을 건네줄 때만은 꼭 친필로 누구누구 선생님께 아무개 드림이라고 쓴다. 이렇게 쓰는 작가의 사인은 증정이라는 의미보다는 “이제 이 글쓰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라는 정중한 아룀의 표시에 가깝다. 사인을 할 때마다 오랫동안 부재했던 감각이 손끝에서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자판을 두들기던 동안 잊어버렸던 기억이 살아난다. 누군가의 이름을 적고 있는 동안 그 사람에게서 받았던 인상과 이미지가 미세하게 글씨의 모양에 관여한다. 펜은 그들에게 느꼈던 소소한 경험이나 감상조차 조형적인 것으로 표현해 주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키보드의 스피드가 캐치할 수 없는 것이다.
온몸으로 빛과 바람을 더듬는 나무들의 세계는 감각적이어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이해된다. 이해는 예술의 전제가 될 수 없다. 감각만이 예술을 선험하는 형식이다. 프랑시스 퐁주의 말처럼 나무가 쏟아내는 것은 녹색의 구토에 가깝지만 나무들이 견디는 울렁거림이 좋다. 견딤과 울렁거림 사이에 생기는 리듬, 그것이 아니라면 포로처럼 붙박여 있는 나무들을 입체적이라고 이해할 순 없을 것이다. 바람의 형편을 세세하게 표현하고 빛의 불가사의를 고스란히 기록하는 나무의 몸짓은 성실한 예술가를 닮았다. 햇빛이 강한 날 나무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빛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다. 나무가 팽창하고 있다. 나뭇잎이 분열하고 있다. 굉음과 함께 폭발하는 꽃이 있을 것 같다. 나무 앞에 눈을 감고 서 있으면 빛을 다투는 나뭇잎들의 사정을 이해할 것 같다. 갈래갈래 갈라지는 가지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나무의 꿈이 숲인가. 흉내 낼 수 없는 감각의 제국에 그늘이 내린다. 나무를 이해해보려는 마음을 버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