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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1152004
· 쪽수 : 256쪽
· 출판일 : 2023-06-1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음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이방인
선택
리수의 강
두 남자
벽
내일의 노래
작품 해설 | 국경을 넘어 동토에 뛰어들다 … 이승하
저자소개
책속에서
붙잡히면 어쩌려고 여자를 떠민 겁니까! 내가 소리치자 사람들이 모두 뒤돌아본다. 아니, 각자 잘살면 된다더니 왜 소리 지르고 지랄이야. 분명히 그 말을 한 것은 천이다. 순간 나는 천이 앉아 있는 곳까지 단숨에 내닫는다. 내가 휘두른 주먹에 천의 머리가 옆으로 휙 돌아가고 코피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청바지와 분홍셔츠가 나를 천에게서 떼어내려고 애쓴다.
이런 나쁜 새끼. 기도는 뭐고 인권은 얻다 삶아 먹었어? 천은 손수건으로 코피를 닦더니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그 웃음이 이상하게 내 뜨겁던 피를 한순간 서늘하게 만들어놓는다.
― 「음모가 있을 수 있습니다」 중에서
빵 한 조각을 먹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구나. 그러니 지금 행복하다. 그렇게 시철에게 보란 듯 말해 주고 싶었다. 아무리 인간을 네 벽에 가둬도 자유란 것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자유를 상상할 수 있고 그 상상으로도 자유를 얻을 수 있다고. 그런 말이 네 벽에 가두고 자신을 이용할 말을 하도록 강요하는 그에게 할 수 있는 유일한 저항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네 벽에 갇혔지만, 이곳에서도 행복하다고, 자유를 누려 본 자는 빵 한 조각을 씹으면서 네 벽에 갇혀 지내도 자유를 상상하면서 행복할 수 있다고, 그런 말을 시철에게 들려주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도 했다. 다만 그런 말을 시철이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시철은 단칼에 자르듯 말할 것이다. 헛소리 집어치우라고.
― 「벽」 중에서
“한국 가면 시를 실컷 써야지.”
려철이 노인의 말을 끊으며 말머리를 돌렸다.
“난 한국에 돌아가면 시 따윈 쳐다보지도 않을 거야. 시를 써서 돈이 되나, 밥이 되나. 한국 가서 시 쓰겠단 시시한 말은 뭘 모르니까 하는 소리지.”
“그래도 한국 가면 제일 해보고 싶은 게 바로 시시하기 짝이 없게 사는 거야. 누구 간섭도 받지 않고, 시를 쓰면서 그렇게 살 수 있다면 뭘 바라겠어?”
자본주의사회가 얼마나 아등바등 살아야 되는 곳인지 모르고 하는 말이라고 충고해 주고 싶었지만 나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하긴 아등바등 살다 가는 것이 인생인지도 모를 일이니까. 더군다나 시를 쓰겠다고 말하는 려철의 얼굴에는 모처럼 붉은 생기가 피어나고 있었으니까.
― 「내일의 노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