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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신학일반
· ISBN : 9791161292250
· 쪽수 : 792쪽
· 출판일 : 2022-01-10
책 소개
목차
서문
제10부 새로운 시작
38장 생성기의 기독교
38.1 서론
38.2 큰 교회의 출현
38.3 기독교와 유대교
38.4 기독교의 헬라화
38.5 정체성 논쟁
39장 1세기의 자료들(신약 성경)
39.1 원자료의 다양성과 특성
39.2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
39.3 나머지 신약 문헌
40장 2세기의 자료들
40.1 사도 교부
40.2 변증가들
40.3 에우세비오스와 이단 연구자들
40.4 나머지 복음서들
40.5 다른 편지들
40.6 나머지 행전들
40.7 다른 묵시록들
40.8 요약
제11부 여전히 기억되는 예수
41장 복음에서 복음서로
41.1 복음서 이전의 복음
41.2 마가복음
41.3 마태복음과 누가복음
41.4 요한복음
41.5 복음서
42장 예수 이야기 바꾸어 말하기: 마가복음, 마태복음, 누가복음
42.1 구전 전승에서 기록된 복음서로
42.2 마가복음
42.3 마태복음
42.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42.5 기억된 예수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되다
43장 예수 복음의 재구성: 요한과 도마
43.1 요한에 따른 복음
43.2 「도마복음」
43.3 요한복음과 「도마복음」 비교
43.4 「도마복음」은 복음서인가?
43.5 서로 다른 두 복음서, 서로 다른 두 가지 해석학적 전략
44장 2세기의 예수 전승
44.1 서론
44.2 2세기까지의 구전 예수 전승-사도 교부들
44.3 2세기까지의 구전 예수 전승-변증가들
44.4 예수 전승의 다른 흐름들
44.5 영지주의 복음서 1-초기 원자료의 문제
44.6 영지주의 복음서 2
44.7 내러티브 복음서
44.8 네 권의 (정경) 복음서에 대한 승인
44.9 결론
책속에서
70년 이후 기독교와 유대교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주목해야 할 두 번째 중요한 측면은 제2성전기 말과 그 이후 유대 문헌의 대부분을 보존한 이들이 랍비들이 아니라 기독교인들이었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분
명히 「이사야의 승천」이나 「열두 족장의 유언」과 같은 문헌들을 소중히 여기고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나 이런 문헌들을 원래의 “유대” 문헌을 “기독교적”으로 “편집”한 것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아니면 보다 적절하게 유대인의 자기 인식 안에서의 예수 신앙을 보여주는 유대-기독교 문헌으로 간주해야 하는가? 즉 이 문헌들이 최소한 이 문헌들을 소중히 여기는 이들에게는 그 두 길이 아직 확실히 갈라지지 않았던 시기, 즉 “유대교”와 “기독교”에 대한 정의가 여전히 진행되고 있었고, 이 문헌들을 사용하던 이들이 (마치 그 둘이 이미 명백히 구별되는 실체인 것처럼) 서로 확고한 경계선을 아직 긋지 못했던 시기를 증언하고 있는가? 여기서 그 증거와 쟁점에 더 자세히 주목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 38장 생성기의 기독교 중에서
필자는 초기 기독교 복음서 자료에 대한 검토를 두 가지 범주—정경에 속한 복음서들(마태, 마가, 누가, 요한)과 보통 함께 복음서로 알려진 나머지 문서들—로 나눈다. 이는 주로 집필상 선호의 문제다. 복음서로 알려진 모든 문헌을 한 장에서 다룬다면 그 장은 지나치게 길어질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은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에 나머지 복음서보다 큰 특권을 부여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지만, 사실 정경에 속한 복음서들이 나머지 복음서보다 먼저 등장했고 나머지 복음서보다 권위와 가치가 있는 것으로서 보다 높고 보다 보편적으로 간주되었던, 가장 가능성이 큰 역사적 실재를 반영한다. 교회와 공의회에 의해 내려진 초기의 결정에 구속받지 않고 관련된 모든 증거 자료를 “공평한 경쟁의 장”에서 다루기를 원하는
이상주의적인 역사주의가 존재하는 것은 이해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역사가가 진실성 있게 연구하려면, 어떤 자료는 이 초기의 수십, 수백 년 동안 특권을 부여받았음을 인정하고 그 이유를 물어야 한다. 그 결과로 나온 비판에는, 몇몇 자료를 그 특권을 박탈하거나 비판하려는 시도가 담긴 비평이 포함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1세기와 2세기의 많은 문서 가운데 어떤 것들은 다른 것들보다 더 높게 그리고 더 폭넓게 평가받았다는 점을 인정하고 그것들을 먼저 다루는 것은 역사를 왜곡하는 것이 아니다.
- 39장 1세기의 자료들(신약성경) 중에서
이 문헌의 본문 자체는 저자 미상이다. 바나바를 저자로 간주하는 일은 이미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에 의해 당연시되었지만 이제는 거의 보편적으로 의문시되는데, 그 이유는 특히 이 편지가 쓰였을 법한 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편지는 1인칭 관점에서 개인적 발언으로 기록되었고 1.8과 4.9에서 (“선생으로서”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저자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저자는 그의 해박한 성경 지식이 역시 암시하는 대로 자신을 선생으로(1.5-6) 간주했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왜 바나바의 저작으로 간주되었는가? 아마도 이 편지가 레위기의 규정들에 대한 많은 관심과 지식을 보여주며(7장과 10장) 바나바가 명시적으로 레위인으로 밝혀진(행 4:36) 유일한 1세대 기독교 지도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유대 율법에 대한 이 편지의 관점은 외부인의 관점에 더 가깝다. 즉 저자는 “그들의 율법”에 대해 “신참자”와 같은 “우리”(3.6), “그들의 언약”과 “그들이 신뢰한 할례”(9.4, 6)에 대해 이야기하고, 개종한 이방인의 대표자로서 말한다(16.7—“우리가 하나님을 믿기 전에”; 참고. 14.5). 물론 기독교인이 된 유대인이 그를 배교자로 묘사하는 것이 타당할 만큼 자신의 유대인으로서의 과거에 매우 큰 불만을 느끼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그것은 바나바에게는 거의 해당되지 않는 사실이었다(갈 2:12-13). 다른 한편으로 한 이방인 기독교인이 기독교의 유대인적 전통에 대해 매력을 느끼고 유대인의 율법과 전통에 대해 정통하며 그 유산을 이방인 신자들에게 가능한 한 의미 있게 만드는 것을 자신의 임무로 간주하게 되는 것도 전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일이다.
- 40장 2세기의 자료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