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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종교/역학 > 기독교(개신교) > 기독교(개신교) 목회/신학 > 설교/성경연구
· ISBN : 9788932822211
· 쪽수 : 1164쪽
· 출판일 : 2025-03-04
책 소개
목차
서문
기고자
약어
전승사: 신약성경―제임스 던
신약 전승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조엘 그린
복음서 개론―크리스토퍼 터킷
마태복음―앤서니 살다리니
마가복음―크레이그 에번스
누가복음―데이비드 발치
요한복음―마틴 스콧
사도행전―존 스콰이어스
신약 서신서―빅터 퍼니시
로마서―존 류먼
고린도전서―스티븐 바턴
고린도후서―존 바클레이
갈라디아서―비벌리 가벤타
에베소서―하워드 마셜
빌립보서―찰스 워너메이커
골로새서, 빌레몬서―모나 후커
데살로니가전후서―로버트 주엣
디모데전후서, 디도서―핌 퍼킨스
히브리서―앤터니 티슬턴
야고보서―리처드 보컴
베드로전서―그레이엄 스탠턴
베드로후서, 유다서―스캇 맥나이트
요한1·2·3서―존 페인터
요한계시록―로렌 스투켄브루크
신약 외경―로버트 반 부어스트
사해 두루마리와 신약성경―대니얼 할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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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책속에서
이러한 통찰의 논리적 귀결은 중요하다. 우선 이 말은, 주후 30년 어간에 살았던 한 무심한 관찰자처럼 역사적 예수에 관해 듣고 그분을 만나는 일이 가능하리라는 이상을 학자들이 이따금씩 펼치곤 하는데, 그것이 완전히 비현실적이라는 뜻이다. 예수님의 설교는, 그분이 직접 자신의 설교를 적었거나 녹음기나 녹화기가 그것을 보존했기 때문에 전해진 것이 아니다. 예수님의 설교가 우리에게 도달한 이유는, 그 설교가 증인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고, 오직 그들에 의해 경험되고 기억되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들음(과 증언)은 바울이 말하는 대로 믿음을 생성한 들음(롬 10:14, 17)이고 믿음을 수반한 들음(갈 3:2, 5)이었다. “들을 귀”(새번역, 마 11:15; 13:9, 43)가 없는 자들은 주요 의미와 영속적 의미를 전혀 듣고 보지 못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을 위해) 중요한 것을 전혀 기억하지 못했고, 계속되는 전승을 전혀 형성하지 않았으므로, 그들을 통해서는 ‘역사적 예수’에 전혀 접근할 수 없다. 우리가 소유한 전승은 믿음 전승 혹은 제자 전승이고, 우리가 전승을 소유한 이유는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이 그 믿음을 창조해 이렇게 들었던 이들을 제자로 만들었고, 제자들을 통해 전승이 기억되고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말은, 예수님의 행동과 말씀이 첫 제자들에게 획일적 영향을 미쳤거나 이러한 예수님 관련 기억을 회고하고 전달하려는 획일적 시도가 있었다는 의미는 아니다. 복음서에 담긴 다양한 전승은, 분명 ‘제자’로 불릴 수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이 미친 다양한 영향을 적어도 어느 정도는 반영하고 있다. 그렇기는 하나, 기본 논지는 그대로 남는다. 즉 복음서는 제자 전승이다.
_전승사: 신약성경
오늘날 많은 사람이 수행하는 성경 읽기는 ‘전비평적’(precritical)이라고 규정될 수 있다. 성경 읽기가, 이를테면 주후 1세기 후반에 기록된 어떤 신약 텍스트가 새로운 시대와 상황에서도 계속 직접적이고 확실한 연관성을 갖는다는, 검증되지 않은 추정에 근거해 진행되는 한 그렇다는 말이다. 텍스트는 초역사적이고 초문화적이라고 가정된다. 전비평적 모드에서 작동하는 사람들에게는 ‘해석’이란 개념 자체가 문제를 일으킨다. 흔히 반복해서 말하듯이, 신약이 말하는 메시지를 파악하기 위해 단지 신약을 읽기만 하면 되기 때문이다. (…)
전비평적 성경 읽기가 간과하는 사실이 있다. 모든 언어는 문화 속에 깊이 박혀 있고, 또한 그 직접적 귀결로서, 하나의 맥락(context)을 향했던 메시지는 새로운 맥락에서 상당히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사회-언어적 현실이라는 점 말이다. (…) 로스앤젤레스나 에든버러 출신의 21세기 사람이 2천 년 전 로마 지중해에서 코이네 헬라어로 작성된 신약 텍스트와 씨름할 때, 번역의 문제는 기하급수로 늘어난다. 가끔은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같은 내용을 말하는 유일한 길인 때가 있는데, 이 과정이 해석과 번역에 영향을 미친다. 더 나아가 일부 신약 텍스트는 문화적으로 1세기 맥락에 깊이 박혀 있어서 직접적 연관이 거의 혹은 전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성경이 명확히 권고하는데도(롬 16:16), 우리 중 대다수는 거룩한 입맞춤을 일반적으로는 행하지 않고, 분명히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렇게 지시하셨는데도(요 13:14), 우리는 세족식을 자주 거행하지 않는다.
_신약 전승에 대한 해석학적 접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