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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1571317
· 쪽수 : 232쪽
· 출판일 : 2022-05-13
책 소개
목차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작가의 말
추천의 말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알바 자리가 없어 여기까지 왔어.
대학 졸업 후 나는 1년 넘게 취업 재수를 하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카페 아르바이트에서부터 백화점 일일 판매도 했고 식당에서 서빙도 했다. 분식집에서 하루 종일 김밥을 말기도 했다. 그때 얼마나 많은 김밥을 말았던지 종이만 보면 둘둘 마는 버릇이 생겼다. 분식집에서 김밥을 만 개 정도 만 후 그만두고 결혼식장에서 주차 안내 도우미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3개월간 일했는데 건물이 들어서는 바람에 더는 못 하고 장례식장으로 밀려났다. 이 일은 시간대가 일정치 않고 밤늦게까지 일했기 때문에 다른 아르바이트보다 보수가 사오천 원 많았지만 두 배는 더 피로했다. 마리는 이번 아르바이트가 스물다섯 번째라고 했다. 대학 졸업 후 마리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면서 이 일을 한 것이다.
—밤에 불을 밝힌 곳은 맥도날드밖에 없네.
나는 손으로 맥도날드를 가리켰다.
—마치 어둠 속에 떠 있는 배 같아.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배.
—그럼 저 맥도날드 배에 승선해볼까?
횡단보도에 녹색불이 켜졌을 때 우리는 맥도날드를 향해 뛰어갔다. 맥도날드 앞에 서자 불빛이 인도까지 쏟아져 나왔다. 인도에 서서 나는 실내를 바라보았다. 군데군데 앉아 있는 사람들은 꾸벅꾸벅 졸거나 휴대폰을 쥐고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탁자에 엎어져 자는 사람도 있었고 신문을 펴서 보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 구석 자리에서 햄버거를 먹는 사람도 보였다. 마리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창가에 앉았다.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에 들어온 것 같아.
나는 어둠에 덮인 광화문과 실내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늦은 밤 술집 안에 한 부부와 등을 보이고 앉은 남자와 가게 주인이 있는 그림이야. 밖은 어둡고 적막한데 술집 안은 환해. 불이 켜진 술집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로. 밤에 불이 켜진 맥도날드를 볼 때마다 난 호퍼 그림이 떠올라.
거실 안으로 들어온 햇빛에 정신을 차린 나는 목을 잡은 손을 뗐다. 누나의 목에는 손가락 모양의 자국이 벌겋게 생겨 있었다. 누나의 눈은 감겨 있었고 입은 더 벌어져 있었다. 흔들어 깨워도 눈을 뜨지 않아 뺨을 후려쳤다. 그래도 누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눈 떠, 누나. 눈 뜨라고. 그때 벚나무 위에서 하얀 뱀이 마당을 날아 거실로 들어왔다. 하얀 뱀은 내 주변을 빙글빙글 돌다 벌어진 누나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뱀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가자 누나의 배가 볼록해졌다. 하얀 뱀은 몸속을 헤집고 다니다 누나의 영혼을 꺼내 들고 하늘로 올라갔다. 그때 엄마가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