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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2490938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0-11-20
책 소개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가 이별을 선언하던 날이 떠올라요. 저는 당황해서 물었죠.
“내가 뭘 잘못했어? 혹시 여자 생겼어?”
전 그가 뭐라도 변명을 할 줄 알았어요. 사정이 있다고. 미안하다고. 하지만 그는 뻔뻔하게 나왔어요.
“맞아, 나 바람 피웠어. 문제 있어?”
기가 막혔어요. 어떻게 저에게 그럴 수 있을까요? 정말 사랑했는데. 우리는 매일 만났어요. 떨어져 있은 적이 거의 없어요. 해가 뜨나, 달이 뜨나, 바람이 부나 꼭 붙어 있었죠. 미운 건 미운 거고 잠깐 제 엑스남친 자랑 좀 할게요. 그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겼어요. 외적으로 완벽했죠. 사람들 속에 섞여 있을 때 더 돋보였어요. 제가 외모를 많이 따지긴 하죠. 물론 외모만 본다는 이야기는 아니어요. 키도 크고 얼굴도 잘 생겨야 다음 단계로 넘어가게 되는 걸 어떻게 해요. 사람들은 한 목소리로 말했죠.
“그놈 참 잘 생겼다!”
어릴 때부터 남친은 탤런트, 배우 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들었대요. 사실 제 남친은 숙맥이어서 남 앞에 나서는 거 못해요. 저한테 처음 말을 걸 때도 얼마나 쭈뼛거리던지, 못 참고 제가 먼저 사귀자고 했을 정도라니까요. 그래요, 만나자마자 그에게 반했어요. 한순간에 빨려 들어갔죠. 아마 이렇게 말하면 이해되실 거예요. ‘진공청소기 외모? 누군가의 정체성은 곁에 있는 사람들이 만들어주잖아요. 잘생긴 남친이 제 곁에 버티고 있으니 절로 기가 살았어요. 어깨가 으쓱 올라가고, 걸음걸이도 당당해졌죠. 1년 조금 넘게 만났을 때에요. 그가 청혼을 했어요. 너무나 기다렸던 순간이었죠. 우리는 함께 살 집을 알아보러 다녔어요. 그런데 돈이 좀 모자랐어요. 말로만 듣던 달동네, 눈이 오면 길이 흘러내리는지 사람이 흘러내리는지 모를 정도로 미끄러운 그런 구석진 곳까지 찾아다녔죠. 작은 집이라도 상관없었어요. 두 다리만 뻗을 수 있으면 된 거 아니에요? 아니 다리쯤 오므리고 자면 어때요. 꼭 껴안고 서로 머리를 기댈 수 있다면 불편한 건 문제가 아니죠. 아이는 꼭 낳을 생각이었어요. 그 사람도 저도 아이를 무척 좋아했거든요. ‘아이가 타고 있어요.? 차 뒤에 이런 스티커도 붙이고요. 생각만 해도 꿈 같았어요.
“아이는 몇 명을 낳지? 한 명만 낳아 잘 기르는 게 좋을까?”
“아냐, 혼자는 외로우니까 잔뜩 낳는 게 좋겠지. 열 명쯤?”
엄마 아빠가 너무 사랑하면 아이가 샘을 내잖아요? 맞아요. 더도 말고 그만큼만 사랑하자고 맹세했죠. 가난하면 어때요. 휴대폰이 집에 딱 하나면 어때요. 같은 곳을 검색하고, 같은 음악을 듣고, 같은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면 되죠. 꿈같은 미래를 설계했는데, 가장 행복에 겨운 순간에, 그토록 청천벽력 같은 선언을 들은 거예요. 그는 단호했어요. 절대 마음을 바꾸지 않을 것 같은 얼굴이었어요. 어떻게 사람이 그래요? 어떻게 사람 마음이 단번에 식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