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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3020530
· 쪽수 : 464쪽
· 출판일 : 2018-07-19
책 소개
목차
1. 아무리 생각해도 뭐 이런
2. 프린스 차밍
3. Kiss the Rain
4. 그녀의 웃음소리뿐
5. 바람이 분다
6. 머나먼 길
7. 깊은 밤을 날아서
8. 크리스마스에는 사랑을
9. 공주는 잠 못 이루고
10. 거짓말
11. 마법의 성
12. 말하자면
13. 소원을 말해 봐 (1)
14. 취향 저격
15. Til I Hear You Sing
16. 우리 처음 만났을 때
17. Helpless When She Smiles
18. 소원을 말해 봐 (2)
19. Ever After
에필로그
저자소개
책속에서
일요일 아침이었다. 오랜만에 화창한 햇빛이 쏟아지는 상쾌한 가을날이었지만 밤을 꼴딱 새며 일을 끝마친 우진에게는 눈부신 햇살이 꽤나 짜증스러운, 그런 아침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어서 집에 가서 샤워를 하고 침대에 누운 다음 3박 4일 동안 잠만 자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집까지 고작 십분 거리였지만 운전도 귀찮았다. 형주가 데려다주겠다고 했지만 그 역시 피곤한 건 마찬가지일 텐데 그런 신세까지 지고 싶진 않았다. 그러나 일요일 아침, 이른 시각이니까 지나다니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추레한 꼴로 건물 밖으로 나섰을 때였다. 마침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거리를 지나가던 한 여자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
젠장.
아침부터 운이 없다는 생각에 비스듬히 고개를 돌리는데 그를 발견한 여자의 반응이 생각보다 시원찮았다. 다행이었다. 이쪽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구나 하는 안도의 한숨과 함께 슬쩍 여자의 모습을 살핀 우진은 순간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
청바지에 맨투맨 티셔츠 차림으로 머리를 질끈 동여맨 여자는 눈을 감고 있었다. 손에 텀블러까지 들고 있는 주제에 눈을 감은 채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설마…… 시각 장애인인가?
우진이 괜히 미안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눈을 감은 채 바로 그의 앞까지 다가온 여자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더니 순간 눈을 번쩍 떴다. 그리고 앞에 있는 우진을 보며 깜짝 놀라는 듯하다가, 고개를 두리번거리고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그가 나왔던 기획사 옆 건물의 1층으로 총총 사라지는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보던 우진은 어이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뭐지, 저건?”
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뭐, 일요일 아침부터 기획사 앞에서 잠복하고 있던 극성팬이나 기자가 아니었으면 된 거다. 때마침 빈 택시가 오는 것이 보이자 우진은 냉큼 달려가서 택시에 올랐다. 이제 정말, 쉴 수 있겠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일주일이 지난 일요일 아침.
우진은 낯설지 않은 데자뷔를 느끼며 앞에서 걸어오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지난주와 옷차림만 다를 뿐, 머리 모양이나 손에 들고 있는 컵까지 똑같은 여자가 여전히 눈을 감고 걸어오고 있었다. 하늘을 향해 살짝 치켜들고 있는 얼굴이 상당히 하얗구나 생각하는 순간, 여자가 갑자기 눈을 번뜩 떴다. 그리고 바로 앞에 서 있는 우진을 발견하더니 하얀 얼굴 가득히 경계심이 떠올랐다.
뭐지, 이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한 마음에 짜증이 솟구치는데, 마침 뒤에서 그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자, 진아.”
우진은 미련 없이 몸을 돌렸다. 기분이 나빴다. 아니, 내가 뭘 어쨌다고? 길거리에서 눈 감고 다니면서 앞에 누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못 하는 게 바보 아니야?
차에 탄 뒤에도 짜증이 가득한 눈초리로 뒷모습을 노려보았지만 그녀는 뒤통수가 따갑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태연한 걸음으로 지난주처럼 옆 건물로 들어가 버리는 것을 보며 우진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이 시간에 저기서 도대체 뭘 하는 거지?”
“뭐?”
형주가 무슨 말이냐는 듯 묻자 우진은 대답을 생략한 채 물었다.
“우리 옆 건물에서 특별히 뭐 하는 거 있어?”
그러자 형주가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대답했다.
“글쎄다. 그냥 사무실밖에 없는 걸로 알고 있는데. 광고 회사, 디자인 회사, 그런 것들일걸. 왜?”
“요즘 사무실은 주말에도 이 시간에 출근을 시키나?”
“설마 일요일 아침에, 그것도 이 시간에 출근시키는 회사가 있으려고? 근데 갑자기 그건 왜?”
“지난주 이 시간에 마주친 사람이 오늘도 똑같은 시간에 옆 건물로 들어가길래.”
우진이 대수롭지 않은 듯 대답하자 형주는 아, 하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 후 이렇게 말했다.
“사무실이 아니라 카페 직원 아니야? 우리 옆 건물 1층에 카페 있잖아.”
“카페?”
“그래. 민성이가 2년 전에 차렸는데 잘 되나 보더라. 너도 한번 가 보지 않았나? 커피 맛 괜찮았다며.”
이번엔 우진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 같다. 민성은 형주의 친구였으니까. 그리고 기억을 더듬자 그 역시 그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던 기억도 떠올랐다. 아마 몇 달 전 형주의 연락을 받고 처음으로 회사에 들렀을 때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땐 저 얼굴을 한 직원이 없었던 것 같은데?
한참 동안이나 그때의 기억을 헤집던 우진은 결국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기억하는 능력이 거의 없었고, 스스로도 그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궁금하면 차라리 그 여자에게 대놓고 물어보는 게 더 빠르고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런데…….
우진은 갑작스런 깨달음에 또다시 인상을 쓰며 생각했다.
내가 저 여자애한테 물어볼 게 뭐가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