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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액션/스릴러소설 > 외국 액션/스릴러소설
· ISBN : 9791164380374
· 쪽수 : 544쪽
· 출판일 : 2020-07-24
책 소개
목차
1부 그림자와 열기
2부 고통에서 벗어나기
3부 사건발생
4부 끝을 생각하며
5부 어둠속의 남자
6부 양쪽
리뷰
책속에서
“이런 식으로 사라지면 안 돼.”
그는 복도를 걸어가며 말했다.
“산책을 가고 싶으면 말을 해. 내가 데리고 나가줄게. 밖이 어두워졌어.”
“미안해요.”
나는 같은 말을 반복했다.
“길 위에서 누가 너를 봤거나 알아봤으면 어쩌려고? 그럼 어떻게 할 거냐고.”
그는 점퍼를 벗고 의자 위에 무언가를 내려놓았다. 잠금장치였다. 나는 그를 올려다봤다.
“너를 못 믿어서 그런 게 아니야. 밤에 내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서야.”
듣고 보니 그는 잠을 못 잤는지 눈 주위가 까맸다. 그는 비행기 안에서도 잠을 자지 않았다.
“우리가 위험에 처해 있다는 걸 너는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나는 너를 너 자신으로부터 보호하고 있는 거야.”
그는 복도를 지나 내 방으로 향했다.
“이제부터 너는 내 허락 없이는 이 집을 나갈 수 없어. 이 방도.”
그의 마음속에서 분노가 끓어오르고 있었다. 내가 도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인한 것인지 외로움으로 인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로 인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부엌 의자에 앉아서도 두통이 가시지 않았다. 이런 실체 없는 통증이 아니라 차라리 돌에 맞아 생긴 통증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뒤통수의 상처를 손가락으로 눌렀다. 다시 피가 배어 나왔다. 고통은 혓바늘을 걱정하는 것처럼 중독성이 있었다.
짐이 잠금쇠를 밀었다 제자리로 해놓으며 시험하는 소리와 대팻밥을 불어 없애는 소리가 들렸다. 의자 맞은편에는 날붙이 서랍이 있었다. 서랍에서 스테이크 칼을 꺼내 주머니에 넣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 작은 물건이 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몇 가지 물어볼 게 있어.”
짐이 말했다.
“뭔데요?”
“결과적으로 이 질문들은 네가 기억하고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거야. 알겠지?”
“네.”
“대답하기 힘들면 말해.”
“알았어요.”
“걸으면서 하자.”
우리는 집으로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날 밤에 대해 어떤 게 기억나지?”
“글쎄요. 아침이 기억이 나요……. 탁자에서 기다리던 게 기억나요.”
“아니, 그날 아침이 아니라 그 전날 밤.”
“음…….”
“술 마신 건 기억나?”
목이 타들어가는 느낌이 생각났다. 병을 다 비웠다.
“기억나요.”
“또 다른 건?”
“긴 소파에 있었던 게 기억나요.”
“그를 본 건 생각 나? 그가 엎드려 있던 걸 봤어?”
그의 모습이 보인다. 피가 퍼지는 게 보인다. 나는 눈을 감았다.
“그만. 그만해요.”
내가 말했다.
“알았어.”
그가 잠시 멈췄다.
“너도 알겠지만 그의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진 않아.”
가슴이 약해지는 것 같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가 한숨을 내쉬었다.
“가망이 별로 없다는 말이야.”
가망이라니……. 무슨 가망이 없다는 걸까? 나는 이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떠올리려고 하면 어떤 기분이 들어?”
“무서워요.”
“그러면 기억이 난다는 말이야?”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에게 숨기고 싶은 것이 아니라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힘이 내 머릿속에서 무언가를 제거하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어떤 것이 기억이고, 어떤 것이 꿈이고, 어떤 것이 그가 내 머릿속에 심어놓은 가짜 기억인지 구별할 방법이 없었다.
사람들은 내가 그저 관심을 끌려고 그 짓을 했다고 말할 것이다. 사실 관심만을 위해서 그런 짓을 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존경, 자유, 사랑, 의무, 복수 이런 것들이 더 좋은 동기가 될 수 있다. 왜 톰과 내가 그 일을 했는지 이해하기 전에 한 가지를 명심해야 한다. 내가 부러워했던 것은 관심 자체가 아니라 관심을 받는 젊은 여자들이었다. 아니, 관심을 편하게 다루고 받아들이는 모습을 갈망했다고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머무는 시선이 느껴지면 나를 차단해버렸다. 사람들이 나에게서 충격적이거나 당돌한 말을 기대하거나 또래 남자애들이 그런 식으로 음흉한 농담을 던지며 내 웃음을 기대할 때면 언제나 그랬다. 나는 내 웃음소리를 극도로 싫어했다. 얼마나 부자연스러운지. 웃을 때의 입모양도 너무 싫었다. 주위의 다른 소녀들 속에서 나는 아주 조심스러웠다. 발목 두께나 이마를 덮는 두꺼운 머리카락에 대한 단 한마디의 말이라도 한 주 내내 나를 괴롭힐 수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편함은 결코 내가 가질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