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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외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64380176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20-01-1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실례합니다.”
가게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클레멘타인은 텅 빈 진열대들을 눈여겨보며 좁은 가게 안쪽으로 들어갔다. 구슬로 짠 커튼이 드리워진 어두운 공간까지 걸어 들어갔다. 구슬 커튼이 매장 쪽과 그 뒤편에 있는 초콜릿을 만드는 장소를 구분해주고 있었다.
“실례합니다. 누구 안 계신가요?”
(…)
“아, 이런. 안녕하세요.”
“봉주르, 마드모아젤(안녕하세요, 숙녀분).”
가게 주인인 라벨 씨였다. 그의 짙은 눈빛이 발밑에서 불쾌한 표정으로 털을 핥고 있는 고양이에게 향한 후 다시 클레멘타인의 달아오른 뺨과, 아마도 끔찍하게 엉망진창이 되어버렸을 그녀의 머리칼로 옮겨졌다.
‘세상에, 정말 잘생겼네. 이십 대 후반쯤 되었으려나. 군살도 하나 없고. 분명 열심히 운동하겠지.’
반바지 차림으로 러닝 머신 위를 뛰고 있는 가게 주인의 모습을 머릿속에서 지우려 애썼다. 클레멘타인은 가게 주인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고, 그도 그 시선을 알아차렸다.
“뭐 도와드릴 일이라도 있으신가요?”
그는 눈썹을 치켜올린 채 대답을 기다렸다.
“죄송하지만, 마드모아젤, 보시다시피 지금은 손님을 받고 있지 않아요.”
끝없이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길고 긴 뜨거운 여름을 해변에서, 그리고 산비탈에 있는 포도밭의 먼지투성이 흙에서 놀고 있는 짙은 눈을 한 청년 도미닉을 상상했다. 클레멘타인은 문득 도미닉이 이후에 고향에 가봤는지 궁금해졌다. 왠지 휴가 때 가봤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딱 달라붙은 검은색 수영복만 걸친 채 파도 거품이 가득한 따뜻한 바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생각하자니 침이 꿀꺽 넘어갔다. 도미닉은 고개를 한쪽으로 갸웃하고는 그녀를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았다.
“왜요?”
그녀는 달아오른 얼굴을 애써 진정시켰다.
(…)
그는 거래 장부 중 하나를 펼쳐 페이지를 뒤적거렸다.
“하지만 저녁 식사를 하기 전에 르 트라바이으(노동)를 좀 해야 할 것 같군요. 이게 지난 육 개월 간의 우리 가게 판매 내역이에요. 비용 지출은 대부분 이 폴더에 있고요. 그리고 이게 우리 가게
판매액과 간접비 등을 기록해둔 곳이에요. 이 숫자들이 당신에게 뭘 보여주는지 어디 한번 살펴보도록 하죠.”
‘수학이라. 아, 즐거워라.’
클레멘타인은 다소 과장된 미소를 지었다. 똑똑해 보이려 애쓰고 있는 모습이 혹시라도 정신이 나간 것처럼 보이는 건 아닐지 염려가 되었다.
“해보죠, 무슈. 제 이름에 ‘매쓰(수학)’가 들어가잖아요.”
도미닉은 놀라 그녀를 바라보았다.
“브레멍(진짜로요)?”
“음, 아뇨, 아니에요. 농담이었어요.”
지하철 계단을 후다닥 뛰어오른 클레멘타인은 몸서리치게 차가운 아침 바람에 잠시 멈춰 선 뒤 부드러운 초록색 숄을 목에 두어번 두르고는 맞은편의 초콜릿 가게를 언제나처럼 찌푸린 표정으로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