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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부기자가 좋다

나는 사회부기자가 좋다

김광섭 (지은이)
  |  
하움출판사
2020-11-06
  |  
1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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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회부기자가 좋다

책 정보

· 제목 : 나는 사회부기자가 좋다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언론/미디어 > 언론인
· ISBN : 9791164407026
· 쪽수 : 256쪽

책 소개

언론계의 딱딱한 이론서보다는 기자가 현장에서 보고 기록한 생생한 이야기를 전달하고 싶다. 기자가 실제로 현장에서 어떻게 취재하는지 생생히 전한다.

목차

머리말 _ 3
이상한 시대의 엘리스 _ 12
왜 사회부기자가 되었나 _ 14
사회부의 꽃 사건기자 _ 19
경찰서를 뒤흔든 소매치기 사건 _ 26
희대의 2인조 갱사건 _ 37
광복절의 국립극장 ... “탕 탕 탕” _ 46
88명의 희생자를 낸 청량리 대왕코너 화재참사 _ 50
한밤중 주택가 LPG저장소 폭발사건 - 간발의 차이로 목숨을 건졌다 _ 57
가짜 여대생 피살사건 _ 62
사건, 사고에서 인물사진 구하기 _ 68
한국 조폭세력의 교체 ? 신상사파 몰락과 호남파의 등장 _ 73
엄마를 두 번 죽인 세 자녀 피살사건 _ 76
아 아, 광주여, 금남로여...! _ 79
5. 18후 인사바람 _ 95
병동성당의 인권회복을 위한 기도회 _ 108
자유언론 실천선언과 동아, 조선 투위 _ 111
눈발 날리는 한겨울의 강원특별취재반 _ 114
코피 터지는 시청 출입기자 2진 _ 124
“저임금의 그늘 밑” _ 128
“버스계수기 없애야 한다” _ 135
전국 제일의 보건, 의료정책 전문기자? _ 137
보사부장관이 회사 회장에게 항의전화 _ 141
신문 1면 톱이었던 뇌염경보 _ 144
유감없이 썼던 환경오염(공해)기사 _ 147
환경청 과장이 신문사로 뛰어와 _ 150
태아감별 ? 생명의 존엄성 논란 _ 153
라이벌 신문의 ‘담배를 싼 종이 발암물질’ 보도사건 _ 161
국립보건연구원보를 둘러싼 소동 _ 163
아쉽게 놓친 특종, 북한 이웅평 소령 미그19기로 귀순 _ 166
가장 많은 행정부 출입 _ 170
나는 기자실이 좋다 _ 173
잊지 못할 데스크 _ 179
청정 도시국가 싱가포르 ? 뜻밖의 해외근무 경험 _ 183
한 번 기자는 영원한 기자 _ 199
과학부 _ 205
마이크로 소프트 빌 게이츠 회장을 아무도 몰라보던 시대 _ 20
월간중앙의 경험 잘못된 부서 배치와 기자훈련 _ 211
원고청탁의 어려움 _ 214
은발의 한국인 _ 218
정치인의 글 _ 228
명작의 현장 _ 232
월드컵 축구 특집 _ 235
“프로레슬링은 쇼다” _ 241
4대 독자 상훈이 실종사건 _ 244

저자소개

김광섭 (지은이)    정보 더보기
1905년 9월 22일 함경북도 경성군 어대진 송신동 148번지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한약방을 경영하던 할아버지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가문이 기울면서 온 가족이 함께 북간도로 이주했다. 1917년에 경성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24년에는 서울 중동학교를 졸업한 뒤에 일본으로 건너갔다. 1926년 와세다대학 제1고등학원 영문과에 입학해 당시 불문과 2학년생이던 이헌구(문학평론가)를 만나 함께 자취 생활을 하기도 했다. 1927년에는 와세다대학교 조선인 동창회보인 ≪R≫지에 시 <모기장>을 발표해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1929년에는 제1고등학원을 졸업하고 와세다대학교 영문과에 입학했다. 1932년에 와세다 대학을 졸업하고 이듬해부터 모교인 서울의 중동학교에서 영어 교사로 부임해 후진 양성에 힘을 썼다. 이 시기에 ‘극예술연구회’에 가담해 활동하면서 서항석(徐恒錫), 함대훈(咸大勳), 모윤숙(毛允淑), 노천명(盧天命) 등의 문인들과 교유를 활발히 했다. 이때부터 각종 신문에 시와 평론을 본격적으로 발표하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첫 시집인 ≪동경(憧憬)≫을 발간했다. 1941년에는 수업 시간에 창씨개명을 공공연히 반대하면서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했다는 이유로 구속되어 3년 8개월 동안의 옥고를 치렀다. 1945년 광복을 맞이하면서 민족진영 문인들과 ‘중앙문화협회’를 창립했으며, 1946년에는 ‘전조선문필가협회’의 총무부장으로 활동하는 한편 ≪민주일보≫의 사회부장을 맡아 언론인의 길로 들어섰다. 이듬해에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의 출판부장과 ≪민중일보≫의 편집국장을 맡았으며, 일시적으로 미 군정청의 공보국장을 맡기도 했다. 1948년에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의 공보 비서관으로 취임했으며, 이듬해에 제2시집 ≪마음≫을 발간했다. 1950년에는 문예지에도 관심을 기울여 ≪문학≫ 창간호를 발간했으나 6·25동란으로 중단했다. 1951년 대통령 공보 비서관을 사임하고, 1952년에는 대전에서 발간되는 ≪대한신문≫의 사장에 취임했다. 1952년에는 경희대학교 교수로 부임했고, 다음 해에는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중앙위원으로 취임했다. 1955년에는 ‘한국자유문학자협회’ 위원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56년에는 문예지 ≪자유문학≫을 창간해 문단의 활성화에 많은 기여를 했으며, 1957년에는 제3시집인 ≪해바라기≫를 발간했다. 1958년에는 ≪세계일보≫ 사장에 취임했으며, 보리스 파스테르나크의 시집 ≪서정시집≫을 번역해 출간하기도 했다. 1959년 전국 ‘문화단체총연합회’의 상임 최고 위원과 ‘국제펜클럽 한국 본부’ 부위원장에 재선되었다. 1961년에는 ‘한국 문인협회’ 발기 준비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부이사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1964년에는 많은 정성을 기울였던 ≪자유문학≫이 운영난으로 휴간되자 정신적 충격을 받고 고혈압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1965년에는 뇌출혈로 입원해 치병을 하다가 이듬해에는 제4시집 ≪성북동 비둘기≫를 발간했다. 이후 1971년에는 제5시집 ≪반응(反應)≫을 발간하고, 1974년에는 ≪김광섭 시 전집≫을 발간해 문학적 생애를 총 정리했다. 1976년에는 자전적인 문집 ≪나의 옥중기≫를 발간하고 그 이듬해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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