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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4790784
· 쪽수 : 332쪽
· 출판일 : 2020-01-31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박 형사
김시오
박 형사
김 순경
박 형사
김 순경
김시오
박 형사
윤보영과 안 집사
박 형사
김 순경
박 형사
구 교장과 박 형사
장현철
윤보영
김 순경과 최 과장
장현철과 김 순경
김시오
윤보영과 서준석
박 형사와 김시오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그때였다. 여자가 들어갔던 화장실에서 또 다른 여자 두 명이 비명을 지르며 튀어 나왔다. 긴 머리카락에 피를 덮어쓴 채 눈을 뒤집고 바닥에 뒹굴었다. 비명과 거친 날숨이 섞여 기괴한 사운드를 연출하고 있었다. 아수라장이 된 카페 안을 바라보며 남자는 자신의 미간이 미칠 듯이 간지럽다는 것을 느꼈다. 손님들이 비좁은 실내 계단을 통해 1층으로 쏟아지듯 도망쳤고, 더러는 2층 테라스의 난간을 넘어 바로 길가로 뛰어내렸다. 호기심인지 용감함인지 몇몇 남자가 화장실을 살펴보는 가운데, 점원 중에 한 명이 어딘가로 급하게 전화를 하고 있었다. 피투성이가 된 여자 하나가 비명을 지르다가 컥컥거리며 뒤늦게 외쳤다.
“사람이 터졌어요. 사람이.”
“오늘 개구리알 뿌릴 거라면서.”
“쉿, 여기 아무도 없는 거 맞아?”
김 순경이 들어 있는 칸이 잠겨 있는 것을 뒤늦게 발견했는지, 그 둘의 말이 끊어졌다. 몇 초, 1분이나 지났을까 그는 자신이 숨을 멈추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조심스럽게 날숨을 뱉어냈다. 온 신경을 집중해서 밖에서 나는 소음을 들으려고 노력했다. 발자국 소리가 다시 여럿이 섞여 들어왔을 때, 김 순경은 헛기침을 하며 화장실 칸에서 나왔다. 양복을 입은 사람 둘이 소변기에 붙어 있었다. 그는 목소리들의 주인을 찾으려고 휘파람을 불며 두 개의 라인을 돌아보았다. 세면기 앞에 붙어 있는 거울을 통해서 본 화장실 실내에는 목소리의 주인공들이 없었다. 옆자리에서 손을 씻으며 아는 사이인지 양복쟁이 둘이 대화를 나누었다. 경찰인 걸 보고도 평온하게 눈인사를 보냈다. 핏기가 전혀 보이지 않는 풀 뜯는 동물들의 온순하고 낙관적인 눈빛이었다.
여자가 입술을 달싹이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지만 잘 들리지가 않았다. 투명한 말뭉치 하나씩이 바닥으로 톡톡 떨어지는 것이 김시오의 눈에 보이는 듯했다. 여자의 목소리가 꺽꺽거리는 울음으로 바뀌면서 그 말뭉치는 덩어리가 조금씩 커졌고 이내 김시오의 귀에도 들리게 되었다.
“죽여버리고 싶어요. 그 새끼들 모두. 다, 죽여버리고 싶다구요.”
들썩이는 어깨, 요동치는 몸과 울음을 삼키는 원한. 김시오는 지금껏 무수히 같은 모습들을 보아왔다. 어머니가 아니면 아버지, 때로는 부모가 버린 아이를 홀로 키운 할머니가 어깨를 들썩이며 그런 울음을 울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을 겪은 인간들만이 쏟아낼 수 있는 울음은 어딘가 고래의 초음파와도 닮은 곳이 있었다. 같은 주파수대를 쓰지 않으면 주변의 어떤 생물도 그 울음의 의미를 알 수 없었다.
모두 죽여 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