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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5120351
· 쪽수 : 236쪽
· 출판일 : 2021-11-1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 쉼 없는 굼벵이처럼 몸부림치며 쓴다 · 4
제1장
그림자놀이··13 | 와유거사(臥遊居士) 탄생기··19 | 가을날의 초상··24
아내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29 | 모년 모월 모일의 일기··34
초짜 컬렉터 분투기··39 | 사랑의 힘··44
꽃무릇을 추억하며··49 | 너도 늙어봐라!··54
제2장
다시 오지 않을 저녁··61 | 운명의 장난인지, 장난의 운명인지··67
나이의 무게··73 | 파종(播種)··78 | 술에 관한 단상··83
거울 앞에서··88 | 마지막 이틀··93 | 저녁놀을 바라보며··98
숲으로 돌아가리라··103
제3장
죽음의 발견··111 | 코로나블루 유감··116 | 그들이 사는 세상··121
만추의 외유(外遊) ··126 | 랜선 여행··131 | 에어컨 유감··136
와유락(臥遊樂)··141 | 자화상과 초상화··146
제4장
노힐부득과 달달박박처럼··153 | 아름다운 눈물··158 |
우정의 속살··163 | 끝없는 질문··169 | 아류인생(亞流人生)··174
여행은 미지의 문밖으로 떠나는 길··179 | 국뽕에 취한 날··184
코비드19 백신 대소동··189
제5장
호모 스마트포니쿠스들에게··197 | 불금의 그림자··202
배설의 시대··207 | 신(新) 등골브레이커··212
외다리 축구선수와 시각장애인 박사··217 | 도둑의 자물쇠··222
다움과 노릇··227 | 진정한 소통이 고프다··231
저자소개
책속에서
매일 밤 잠자리에 들기 전 나 자신에게 묻고 또 묻는다.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살았는가? 남을 위해 어떤 선행을 얼마나 베풀었는가? 과연 삶을 어떻게 살아야 마지막 순간에 후회가 남지 않을까? 그때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명상록』을 통해 내 어깨에 죽비를 내리친다.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할 게 아니라 진정한 삶을 시작하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해야 한다”라고.
그렇다. 어쩌면 행복은 자기기만일 수 있다. 억지로 행복한 삶을 만들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행복은 대단히 주관적이다. 상대적이며 이기적 느낌의 그 무엇이다. 이 나이 들어 생각하는 행복의 3대 요소는 건강, 돈, 친구다. 한데 건강은 세월과 함께 점점 더 쇠락해진다. 평생을 거의 실업자로 살았으니 모아둔 재산도 없다. 다만 가끔 만나 마주 보고 막걸릿잔을 기울일 수 있는 친구 몇몇이 있을 뿐이다. 실패한 인생인 것은 틀림없다.
하지만 희망을 포기하기엔 아직 이른 나이다. 누군가 희망은 멈추지 않고 끝까지 밀고갈 때 비로소 진정한 희망이 된다고 역설했다. 이 동굴을 박차고 자유의 빛을 향해 달려나가야 한다. 설사 널따란 초원에는 닿아보지도 못하고 더 큰 동굴에 갇힐지도 모른다. 그것 또한 나의 인생이고 운명이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은 이미 내 안에 있다. 내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확연히 달라질 것이다.
‘옴니버스 옴니아Omnibus Omnia’(라틴어로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이라는 뜻)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내게 허락된 시간에 모든 걸, 내가 아는 모든 이에게 아낌없이 나누고 베풀자. 이 세상 끝날에 조금이라도 덜 후회하려면 말이다. 또한, 그분의 자비의 그늘에서 지금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생각한다. 온 마음을 다해 감사의 기도를 올리자. 지금은 더욱더 지혜로운 삶에 대해서 거듭 숙고하게 되는 초로初老의 시간이다. 인생에 다시 오지 않을 아름다운 저녁이다.
― 「다시 오지 않을 저녁」 중에서
중국 남북조시대 송나라 때 종병(宗炳, 375~443)이라는 화가가 있었다. 산수화의 효시로 불리는 사람이다. 그는 늙어서 더는 산수유람(山水遊覽)을 할 수 없게 되었다. 고심 끝에 전국 명승지 산수화를 그려 자신의 방 벽에 걸어놓고 이렇게 자위했다.
“병들고 늙음이 함께 오니 명산을 두루 보기 어려울까 두렵구나. 오직 마음을 맑게 하고 도를 관조하면서 와유(臥遊)하리라.”
거기서 ‘와유’, 즉 누워서 즐긴다는 말이 유래했다. 한마디로 그는 어떤 대상을 취미로 즐기며 구경하는 완상(玩賞)의 경지에 오른 최초의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30대 초반에 우연히 ‘와유’라는 말을 처음 접했다. 그걸 계기로 거사(居士)를 붙여 와유거사(臥遊居士)라 자칭했다. 일순간 나에게 타락할 수 있는 자유는 사라졌지만 게으를 수 있는 자유는 무제한으로 주어졌기 때문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보다 나를 더 잘 표현할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또 ‘와유’에다 집 당(堂)자를 붙여 와유당(臥遊堂)이라 칭하니 당호(堂號)로서도 제격이었다. 그런 이유로 이 두 가지를 아호(雅號)와 당호로 줄곧 써오고 있다.
나는 화가 종병처럼 그림뿐 아니라 뛰어난 머리도 재주도 없다. 언감생심(焉敢生心) 완상의 경지를 누릴 수는 더더욱 없다. 그저 궁여지책으로 찾아낸 일이 독서와 글쓰기다. 그 일로 보낸 세월이 오래다. 하지만 부끄럽게도 제대로 된 밥벌이를 해본 적이 없다. 여태 변두리 무명시인으로 머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일마저 하지 않는다면 밥만 축내는 축생(畜生)의 삶과 다를 바 없다. 다행히 아직은 머릿속이 맑은 편이다. 은퇴 정년도 없는 일이라 다소 위안이 된다. 죽을 때까지 해도 뭐라 흉볼 사람도 없을 테니 말이다.
― 「와유거사(臥遊居士) 탄생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