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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174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0-08-08
책 소개
목차
1부
봄 · 13
해바라기 · 14
가뭄 · 16
고즈넉한 저물녘 · 18
길목 · 20
어떤 처방 · 21
어떤 처방 2 · 22
어떤 처방 3 · 24
지하철에서 · 26
지하철에서 2 · 28
편리한 세상 · 30
걸음걸이 · 32
행복할 권리 · 34
무량사의 추억 · 36
적과(摘果) · 38
2부
갈등 · 41
편지 2 · 42
어느 날 아들에게 · 43
아버지와 아들 · 44
식구들의 수다 · 46
원룸에서의 하룻밤 · 48
술 · 50
쓸쓸한 아내 · 52
사랑 · 53
신혼방 · 54
아내의 외출 · 56
아내의 부탁 · 58
어떤 생각 · 60
사랑의 자물쇠 · 62
3부
기도 · 67
사쿠라 어원에 대한 소고 · 68
궁금증 · 69
생각이 없는지, 생각이 다른지 · 70
2015년 3월, 대한민국 · 72
절망 · 74
왕소군(王昭君) 능(陵) · 75
절필 · 76
단순함 혹은 가벼움 · 78
들리는 풍문에 의하면 · 80
완벽한 아침 · 82
명절, 고향 풍경 · 83
작은 바위 얼굴 · 84
출금전표 · 86
4부
노을 1 · 89
노을 2 · 90
노을 3 · 91
빗소리 1 · 92
빗소리 2 · 93
빗소리 3 · 94
내포일기 1 · 96
내포일기 2 · 98
내포일기 3 · 100
내포일기 4 · 102
내포일기 5 · 103
어머니의 근심 1 · 104
어머니의 근심 2 · 105
꽃게 · 106
발문 충서(忠恕)를 기본으로 하는 생활시의 미학 / 최광임 · 108
저자소개
책속에서
식구들의 수다
--
아내가 대화방을 만들었다.
식구라야 달랑 넷인데
사는 곳은 세 군데니
이렇게라도 만나자고 했다.
쓸데없는 짓 한다고 했지만
며칠째
잘 잤느냐, 행복한 하루되라 올리고
맛점하라 올리고
잘 보냈느냐, 편안한 밤 되라 올린다.
얼마나 공감하는지는 모르지만
애들은 이모티콘으로 혹은
단문으로 답을 한다.
생각보다는 괜찮다 싶기도 하고
잠들기 전 훑어보는 것으로
넘어가고 있었는데
어젯밤에는
신호음이 한번 울리더니
연이어 카톡, 카톡, 소리가
온 방을 흔들어댔다.
잠이 안 와
나도
나도
수다가 넝쿨처럼
달리고 있었다.
그만 자자
나도 날리고 싶은데
그래도
첫 번째 올리는 댓글이
그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멍하니 그 수다
밤새 지켜보고 말았다.
--
신혼방
--
아내의 글이 핸드폰 메시지로 올라왔다.
지금 막 도착하여
창문을 열고 틈새를 닦아내고
방안 먼지도 털어내고
빨래를 하고 있다고 했다.
비었던 냉장고를 채우고
작은 옷장 하나 정리하고 나니
더 이상 할 것도 없는 원룸이
아늑하게 느껴지고
예전처럼 둘이 살아도 충분하겠다는 생각
했다고 했다.
-
부모님을 모시고 시작한 우리들 신혼방은
안방과 마주한 건넌방이었다.
시부모님과 시동생, 시누이가 살고
인근에 사시는 친가나 외가의 식구들이
자주 모였던 집에서
둘이 눕기에 딱 맞은 건넌방은
유일한 아내만의 공간이었다.
하루가 저물고
모두가 잠들면
옷장을 닦고 방을 닦고 창문을 닦으며
귀가하지 않는 나를 기다렸다고
이삿짐 틈에서 발견된 아내의 일기는
기록하고 있었다.
-
애들도 나도 직장 따라
모두 집을 떠난 지금,
남편의 원룸을 찾아온
아내의 가슴에 앉은 것이
행복함인지 쓸쓸함인지
알 수는 없지만
아내의 일기장을 보며 떠올렸던 상념들이
문득 되살아나
근무시간 내내
발만 동동 구르고 말았다.
--
사랑의 자물쇠
--
프랑스 센 강의 퐁데자르에도
서울 남산타워에도 있다는
사랑의 자물쇠가
대전에서 금산으로 가는 중간
만인산 휴게소에도 있다.
사랑하는 연인들이 이름을 적어
자물쇠를 채우고
열쇠를 버리고 나면
둘 사이의 영원한 사랑 약속은
마무리된다.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잡기 위해
혹은 흔들리는 자신을 위해
행하는 의식이 눈물겹고 아름답다.
하지만 사랑이라는 것이
자물쇠로 채워져
묶어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은
아마 그들도 알 것이다.
여기 잠깐 서 있는 이 순간에도
발 아래 펼쳐진 저수지
미풍에도 물결 일고
굳건히 버티고 선 저 메타세콰이어 나무
가지 내주듯
흔들리면서 옷깃 여미고
그렇게 조신하게 보듬고 가야 할 것이란 걸
알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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