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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426
· 쪽수 : 156쪽
· 출판일 : 2022-05-11
책 소개
목차
1부 하늘다리
청량시편 1 · 13
청량시편 2 · 16
청량시편 3 · 19
신동재 1 · 21
신동재 2 · 23
신동재 3 · 25
신동재 4 · 27
천당에 핀 가시장미 · 29
활자지옥 · 32
밤의 사디즘 · 35
초록의자 · 37
2부 배시내 풍경
난중일기 · 41
그 여름의 민란 · 44
논물을 말리다 · 45
철필을 쓰다 · 47
원창들에서 · 49
포도밭 편지 · 51
아버지의 불꽃 · 52
겨울 울다 지치고 · 54
모래 눈 녹고 · 55
물목 · 57
둠벙을 헤매다 · 59
누운 세탁기 · 61
3부 늑대는 엉덩이에 산다
늑대는 엉덩이에 산다 · 65
1977. 학다리 · 67
단풍나무가 울다 · 70
어떤 사월 · 72
오월 하루 · 74
시인들의 아침 통화 · 76
붉은 섬 · 78
꽃 진 자리 · 80
장작 쌓기 · 82
어느 간이역에서 · 84
사십구재 · 86
죽림야화 · 88
나르는 강 · 90
4부 건천 가는 길
건천 가는 길 · 95
마임 · 97
사인암 · 99
페루에서 온 볼펜 · 101
독락당 세심정 · 103
경주 3 · 104
얼어붙은 여름 · 106
붉은 노잣돈 · 108
영도다리 학교 · 110
자귀나무가 피다 · 112
화면(火面) · 114
캐비닛 안에서 · 116
5부 돌의 구루
돌의 구루 · 121
돌의사 · 123
벌레의 집 · 125
마천, 1981년 · 127
이별의 상량식 · 129
식물농장 · 131
저녁의 기도 · 134
회룡포에서 · 136
이모 전상서 · 138
맹산인 방한문 상향 · 140
발문 집시 점성술사가 부르는 노래/ 문형렬 · 142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인들의 아침 통화
― 이문재에게
--
아침에
전화가 왔다.
장흥이라고 했다.
혀가 벌써
태양을 산 위로 쫓아낼 정도로
꼬부라져 있었다.
-
예수가 왜 죽었는지 아냐고 물었다.
자기를 구원해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라 했다.
너는 죄가 많으니
자기보다 이틀만 더 살다가
죽으라고 했다.
자기를 묻어주고 가야 한다고 했다.
-
그러겠다고 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네가 해장을 챙겨야 한다고 했다.
내가 죽기 이틀 전까지
기필코 살아 있어야 한다고 했다.
-
예수가 부활하기 전
새벽닭이 울어야 되듯이
너는 시라는 죄를 더 지어야
땅에서 해방된다고 했다.
-
그렇게 답하고
나도 이틀 동안 죄를 더 짓기 위해
이렇게 시를 쓴다.
--
그 여름의 민란
― 신휘에게 2
--
그 폭군은 잔인했다. 사람 살가죽에서 땀과 소금을 쥐어짜다가 마침내 길가 풀 한 포기마저 가만두지 않았다. 미루나무들은 잎사귀 말라비틀어지다 못해 붉은 피를 토해냈다. 해가 지면 사람들은 모여 수군거리기 시작했고, 별들이 산다는 남쪽에서는 밤마다 촛불이 불타올라 봉화가 돋았다는 소문이 밤하늘을 흔들었다. 그 사이 뚫고 포도밭에서는 눈에 붉은 핏발 선 포도송이가 밭고랑을 더듬는 노인을 쓰러뜨리고, 머리를 짧게 깎은 병사는 이를 악물었다. 남쪽에서 시작된 싸움은 처서가 지나서는 산맥을 타고 북쪽으로 올라가면 추격전으로 변해갔다. 그 흔한 태풍도 그 싸움판에는 끼어들지 않으려고 동쪽 바다로 항로를 변경해버렸다. 마침내 사람들은 그의 하야를 요구했다. 그러나 얼굴이 붉게 타오르는 폭군은 들판을 갈라놓고, 교수대 끝에 새로운 소문의 목을 매달았다. 그 여름 우리들의 밤은 뜨거운 양철지붕처럼 달아올랐고, 강가에서 파랗게 질린 강물들이 부글거리며 뱃속에 가득 찬 가스를 터뜨려 물고기 아가미를 사정없이 짓밟았다. 아무래도 민란의 물풀들이 마른 강바닥에서 긴 혓바닥을 하늘 높이 토해놓고 말 것 같은 불안이 집집마다 대문 두드리면 돌아다니고 있었다. 공판장에는 날마다 숱한 이름이 교수대에 붉은 글씨로 떠오르다 갑자기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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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산인 방한문 상량
― 방상철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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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베를 묶는다.
하관을 위해 상주들 울고 있는
얼굴 가린 죽음 옆에서
세상과 이승의 경계를 묶는다.
-
차가운 육신은
굳어진 얼굴 풀지 않는데
매듭 따라 슬픔은
한과 원망의 나루터 지나
저승으로 가는 뱃전 눈물로 출렁이고.
-
한평생 객지를 더듬은
삼베 신발 위로 연꽃이 피고
남은 자들은 기도를 위해
오랫동안 목을 숙인다. 하관을 한다.
-
아흔일곱 모질게 끌고온
한세상을 닫는다.
남은 자들에게
숨기고 싶은 모든 이야기 삼베로 감싼다.
-
국립의료원 입관실
산 하나가 삼베로 자기 생애 덮으며
이승 떠돌던 긴 그림자 감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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