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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91914511
· 쪽수 : 144쪽
· 출판일 : 2023-11-03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05
제1부 국밥論
가마솥 국 장사·10
국밥을 왜 먹어·12
순대론·15
보말죽·20
진골목 육국수·26
앞산 선지국·28
도다리쑥국·30
인월 피순대·32
된장시락국·33
따로국밥·36
김치말이 국밥·38
개장국·40
장계장에서·42
정월 대보름·44
수구레국밥·46
하동 재첩국·47
새벽 국밥집에서·50
남당항에서·52
옥야식당 선짓국 1·54
옥야식당 선짓국 2·56
장국수·58
제2부 고래의 귀향
서리·62
탄생·64
항해하는 봄·68
봄 편지·72
상실의 해협·76
동행·80
처벅처벅·82
쇠가 길을 열어·86
둥근 바퀴가 입을 열어·88
분노하지 마라·93
정원 비구에게·96
세월호 인양에 부쳐·99
고래의 귀향·102
와불·104
진도 다시래기·108
물고기는 알고 있다·112
제3부 산성 학교
고당리 겨울밤·116
포하이 상점·118
산성 학교·120
파파야 그늘에서·122
호찌민 9구역·124
퉁·127
롱하우스의 슬픔·130
아부살라·133
나잔 나사르·136
시인의 산문·139
저자소개
책속에서
나이 들면 국 장사를 하고 싶었네.
낙동강 모래밭에 흰 뿌리 박은 채, 태백산 줄기 따라 내려온 이야기 쭉쭉 대궁에 큰 키로 키운 대파 듬성듬성 썰어 넣고, 대관령 고랭지에서 푸른 이파리는 하늘에 바치고 장딴지만 허리통만 하게 가꾼 무우 얇게 저며, 무쇠솥에 볶은 뒤 지리산 운봉 구름을 품었던 소고기 삶아 길 가던 사람 배고프면 한 그릇씩 나눠 먹고 싶었네.
우리네 세상살이 아무리 삭막해도 한 그릇 국밥에 담으면 모든 것이 섞이는 법. 생각보다 많은 사람 몰리면 밤마다 가슴에 달 하나 안고 있던 물동이 고여 있던 물 설설 끓은 솥에 붓고, 소금으로 간 한 뒤 주머니 빈 사람도 불러 나눠 먹고 싶었네.
밥상마다 김치며 깍두기로 어설프게 맛 자랑과 달리 세상 사람 아무도 차별하지 않고, 누구나 차양 아래로 배고픈 그릇 하나 가지고 오면 수북이 국자로 고사리와 숙주가 몸 나누고, 대파와 무우가 뼈를 섞으며 마침내 우거지 야윈 몸마저 전생의 풀기 빼고 솥 아래 가라앉아 사람 기다리는 국 퍼담는 장사를 하고 싶었네.
김밥이나 백반처럼 따로 앉아 혼자 울면서 숟가락 드는 사람 가는 어깨 들썩이는 것 보기 싫어. 커다란 무쇠솥에 온갖 것들 쏟아붓고, 펄펄펄 끓는 국물로 뒤섞게 한 뒤 모든 혓바닥 속내음 털어내는 숨소리 토해내며 이마에 땀 뻘뻘 흘리며 아픔을 걷어내고 한꺼번에 눈물 쏟고 한꺼번에 웃음 터뜨리는 국을 끓이고 싶었네.
사람들 가슴 활활 타오르는 장작불로 쉬쉬 소리 내며, 귀신도 영접하지 못하는 뜨거운 가마솥 국 장사로 서로의 삶 나눠 먹고 싶었네.
―「가마솥 국 장사」 전문
시는 내가 세상과 대화하는 방법이다. 나는 어떤 주의나 주장을 하기보다는 그 세계에 내가 어떻게 착지하는 것인가에 더 매달린다. 풍경에 닿으면 풍경이 되는 시를 쓰고 싶고, 사람에 닿으면 사람과 동화되는 시를 쓰고 싶다. 시를 지적 탐구의 대상으로 삼지 않으며 시에다 설익은 사상을 담아내는 무모한 짓은 하지 않으려고 한다. 시는 남을 위해서 쓰는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서 쓰는 위안의 방법으로 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_「시인의 산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