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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65121624
· 쪽수 : 132쪽
· 출판일 : 2024-04-28
책 소개
목차
시인의 말 · 5
1부
활짝, · 13
둥근 자세 · 14
두 량짜리 무궁화호 열차 · 15
검은 잉크로 쓴 분홍 · 16
펴진 손바닥 · 18
옆모습을 보여주는 사람 · 19
옹이라는 이름의 문장 · 20
바닥에 이마를 댄 슬픔 · 22
티끌 · 23
기꺼이 다른 것이 되어가고 있는 중 · 24
에∼한 말을 얻다 · 26
쑥국 · 28
말을 잃은 몸 · 30
조막만한 고요 · 32
절벽으로 지어진 집 · 34
2부
벚나무 흰 치마 · 37
늙은 호박을 옮길 때 · 38
나비 · 40
풋것 · 42
덩굴장미꽃담 정류소 · 44
새 · 46
해거름 · 48
촛농치료 · 50
3번 출구로 날아가는 민들레 홀씨 · 52
숨 · 53
모래의 책 · 54
벙어리 아주머니 · 56
달빛을 듣다 · 58
지옥문 사진 · 60
올해 첫 돈이라는 말 · 62
3부
보름달이 뜬 봄밤 · 67
자결한 꽃 · 68
홍진(紅塵) · 70
절대로 도망가지 않음 · 72
어떤 축문 · 73
불타는 악보 · 74
있다고 간신히 말하는 · 76
욕 · 78
또 다른 순간을 지나가고 있다 · 80
입맛 · 82
아이러니한 코로나 · 84
노래를 불렀어 · 86
체 내리는 집 · 88
가야금 줄에 꽃을 매단 사람 · 90
숨결이라 불리는 시간 · 91
4부!
돌부처 · 95
백 일 · 96
버린 밥 · 98
상여꽃 · 100
연애 · 102
묶인 새 · 104
차를 우리는 동안 · 105
수국 꽃다발 · 106
색을 쓰다 · 108
간절곶에서 · 109
저녁 · 110
배바위 · 112
침묵을 벼리다 · 114
집으로 가는 길 · 115
돈방석 집 · 116
해설 젖은 눈의 글쓰기/ 오민석 · 118
저자소개
책속에서
검은 잉크로 쓴 분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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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피를 가지지 않고도 묵직한 것들은 온다
해가 지고 저녁이 올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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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 깊은 여자가 옥상 난간에 앉아 석양을 바라볼 때
역광으로 빛나는 그 여자의 뒷모습을
옥상 계단을 오르던 남자가 멈추어 서서 지켜볼 때
둘 다 눈물 괸 눈빛일 때,
-
빛이 사라지면 윤곽이 사라지는 그림자처럼,
당신이 사라지면 나는 나의 무엇이 사라지는가
-
가장 가까운 곳부터 모두 지우고 마지막 하나
검은 잉크로 쓴 분홍문장을 보여줄 때
-
그 분홍문장 내게 고여 반짝이던 시간이
그 분홍문장 당신 입술에 고여 노래하던 시간이
이미 다 지나가고 허물어져
-
병 깊은 여자가 바라보던 수십 겹 물결무늬와
그 여자 바라보던 남자의 수십 겹 눈물무늬엔
먼 곳이 지워지고 점점 가까운 곳도 지워져
검은 잉크로 썼던 분홍문장에 엎질러진 먹물,
-
지우고 싶지 않은 분홍문장만 무한대로 열려
먹물을 먹인 붓을 들고 달빛이 분홍문장을 탁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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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막만한 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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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그것이 펼쳐졌다
오므린 꽃봉오리가 꽃잎을 쫘악 펼치는 동영상처럼
소복이 쌓인 눈 사르르 녹은 자리
-
찬바람 맞아 거뭇거뭇 타들어간 민들레꽃에 앉아
날개도 접지 않고 절명한 나비 한 마리
-
마지막으로 핀 그 꽃에
마지막 남은 힘으로 나비 날아들었을 때
-
가녀린 꽃대 아래 드리워진 검은 그림자
하얗게 지워준 눈
아직도 해끗해끗 담 그늘에 남았다
-
추운데 혼자서, 한 덩이 어둠이 녹을 때까지
조마조마 기다린 저 조막만한 땅, 이제사 잠들겠다
-
마지막까지 꽃 피워낸 마음
숨질 때까지 꽃향기 찾아온 마음
다시 조막만한 땅에게 전해줄 때까지
-
고요히 죽음을 맞겠다 겨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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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흰 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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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꽃을 머리에 인 벚나무 그늘 속,
할머니 네 분이 택시를 잡는다
와그르르 쟁강,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가 난다
마침, 그늘을 나온 뽀얀 할머니 곁으로
택시가 미끄러지며 섰는데
할머니는 반가워서 그늘 속을 향해
얼른 오라고 손짓을 한다 와그르르 쟁강,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 난다
벚나무 그늘에 화장지 깔고 앉았다가
일제히 일어서는 할머니들을 보자
택시는 부앙, 쏜살같이 내빼고
화장지 들고 맨살의 햇빛 쪽으로
허둥지둥 나왔던 할머니들
우야꼬 또 내뺐네, 뽀얗게 웃는다
처자들은 치마만 살포시 들쳐도
야 타, 야 타, 차들이 선다카더마는
돈 준다케도 안 서네 안 태워주네 웃는다
젤로 고븐 논실댁아 니가 치마를
치마를 한 번 들쳐, 벚나무 흰 꽃그늘 속
놋요강 굴러가는 소리 환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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