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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3648
· 쪽수 : 172쪽
· 출판일 : 2024-12-02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출세의 사다리, 과거
1. 경상도 상주 사족 계암 김령
김령의 가계
김령의 시험공부
김령의 과거 응시 양상
2. 충청도 덕산 사족 인재 조극선
조극선의 가계
조극선의 시험공부
조극선의 과거 응시 양상
3. 충청도 홍주 생원 수촌 조세환
조세환의 가계
조세환의 성균관 과시 응시와 시험공부
생원 조세환의 문과 응시 양상
4. 전라도 흥덕 진사 이재 황윤석
황윤석의 가계
황윤석의 성균관 과시 응시와 시험공부
진사 황윤석의 과거 응시 양상
나오는 말: 4인 4색의 문과 응시 여정
주석
참고문헌
책속에서
『경국대전』에 따르면, 양인(良人)은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었다. 단 「예전(禮典)·제과(諸科)」 조에 따르면, 경제 범죄를 저지른 관원의 아들, 재가(再嫁)나 실행(失行)한 부녀자의 자손, 서얼과 그 자손은 과거에 응시할 수 없었다. … 법적으로는 과거 응시가 금지된 이들을 제외한 양인은 누구나 과거에 응시할 수 있다고 했지만, 현실적으로 과거는 누구나 응시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시험이 아니었다. 과거에 응시할 정도의 학업을 성취해야 했고, 합격할 때까지 시험 응시에 필요한 비용 등이 뒷받침될 때 가능한 일이었다.
김령은 10년 동안 시행된 문과에는 약 53%인 8회에만 응시했던 반면, 생원진사시에는 약 87.5%인 7회에 응시하였다. 그가 이처럼 생원진사시에 주력하였던 것은 왜일까? 문과 응시 자격은 통훈대부 이하 관직자, 생원·진사, 그리고 학업 중인 유학 등에게 주어졌다. 그러나 김령이 시험을 치렀던 17세기 전반기 문과 급제자는 관직자 43.5%, 생원·진사 42.4%, 유학 13.9%로 관직자와 생원·진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령은 생원진사시 입격이 문과 응시의 지름길이라고 인식한 것이 아닐까 추측된다. 게다가 선대 대대로 생원시에 입격하였기에, 생원진사시 입격이 더욱 절실하였을 것이다.
이처럼 생원진사시에 응시했던 조극선은 30세 이후에는 생원진사시에 전혀 응시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의 일기에 의하면, 그는 1623년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생원진사시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였다. 그는 문과 급제는 나라에서 법으로 정해 그 길이 아니면 관원이 되어 바른 도(道)를 행할 수 없으니, 선비들이 과거에 매달리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생원진사시는 관원이 되어 바른 도를 행하는 것과는 무관하니, 굳이 응시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