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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생활풍속사
· ISBN : 9791166843693
· 쪽수 : 140쪽
· 출판일 : 2024-12-02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들어가는 말
1. 조선인의 국방 의무, 군역
조선시대의 군사 조직
군대에 가는 사람과 세금을 내는 사람
2. 군대에 가면 고생인 이유
고단한 훈련
수도 경비와 왕의 경호
노동하는 군인들
3. 국방 의무의 한 형태, 세금
부담은 크고, 균일하지도 않다!
군역세 개편에 대한 여러 의견
영조의 최대 치적, 균역법
4. 약해지는 군대
지방 관청의 재정 손실과 군역자 폭증
훈련의 축소와 노동의 증가
향촌 방위 강화 방안의 대두
나오는 말
주석
참고문헌
책속에서
세월의 때가 켜켜이 묻은 고문서를 뒤적이다 보면, 당시 군대 입대나 군역세 부담이 얼마나 가혹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때에는 군역을 회피하거나 도망가는 일이 빈번했다. 황구첨정(黃口簽丁), 백골징포(白骨徵布) 등은 당대 군역 문제의 심각성을 잘 대변한다. 이러한 부담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군사 제도가 유지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국가를 지키는 최후의 수단이 군대이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 세종 즉위년(1418) 10월 19일의 기사에서 병조가 태종에게 장계한 내용을 보면, “국가 통치의 안정성[治安]을 유지하는 방책은 무비(武備)보다 더 요긴한 것이 없사온데, 나라가 오랫동안 평안하여 백성들은 군대의 일[兵事]을 보지 못하였고, 중외의 관리들은 다만 한 문구(文具)로만 보게 되니 매우 불안합니다”라고 하였다. 당시 조선 정부가 나라가 평온하더라도 군대는 정비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현대에는 군대와 행정 조직이 분리되어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러므로 조선시대에는 보통 행정 조직의 수장인 수령이 그 지역에 편성된 영진군의 지휘관이 되었다. 군현의 행정 지휘관인 수령은 보통 첨절제사 등의 군사 지휘관 직책을 겸임하였다. 하지만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이나 너무 궁벽한 곳에 있어 군현을 설치하기 어려운 지역에는 진(鎭)을 두고 전임 지휘관을 파견하는 사례가 있었다. 북방에는 여진이나 거란 등의 이민족의 침입이 예견됨에 따라서 육군진이 많았고, 연해 지역에는 일본군의 침입이 예견되었으므로 수군진이 많았다.
여러 성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은 도성이었다. 도성은 조선이 건국한 지 4년 만인 1396년(태조 5), 11만여 명의 인력을 동원해서 쌓은 성곽이었다. 이 성은 그 후에도 계속 수리와 증축이 진행되었다. 특히 국왕 영조는 도성의 수리와 증축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신 중에 도성의 수리와 증축에 대해서 찬성하는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대신 중 하나인 홍중효(洪重孝)는 도성을 수리하고 증축하면 증축 후에 성의 안과 밖에 거주하는 백성을 동원하기가 쉽지 않고, 성에서 적의 침입을 방어할 때 군량 조달이 쉽지 않기 때문에 수비가 성공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의견이 있기는 했지만, 국왕 영조의 의지를 꺾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