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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7242389
· 쪽수 : 248쪽
· 출판일 : 2025-04-20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 04
1부
/
처서 무렵 13
오이 두 개 가지 한 개 14
꽃자리 연대 16
맑은 차 한 잔 20
그녀에게 21
손 25
유감 27
입춘제 29
인시 31
종이배 사랑 33
귀남이는 농부다 36
쑥 따러 가요 40
참사랑 43
첫 독자 45
팔자다 팔자 48
2부
/
최소화시키세요 53
잘 죽기를 56
내일 말고 오늘 58
내일 말고 오늘 2 61
다시 시작하는 날 63
부추를 심었어요 66
나무 심은 날 68
죽 써온 딸 71
긴동댁 76
은방울꽃 할머니 79
쉐타 82
수리수리 빵빵 수수리 뽕 83
재길 씨 86
동짓날의 기다림 88
3부
/
여기, 좋아요 91
얄지의 팔찌 98
대촌마을 주민 마실 가요 104
마실 2 108
날마다 보내고 날마다 부르는 술 118
목원 121
봉숫골에서 대촌을 그리며 123
팔월에 126
안부를 묻습니다 127
가을 손님 130
혜령이와 두지니 133
미숙이와 희주니 135
쓰라구요 139
일냈다! 내 남편 141
선물 3 145
꽃자리 정식 148
자비경 154
4부
/
연꽃 만나러 159
연꽃 만나러 2 162
연꽃 만나러 3 167
이웃사촌 170
정남 선배 173
쉬는 날 177
창온 씨네 2 179
창온 씨네 3 182
친구 184
똘순이 189
다음은 뱀? 191
소리 선물 193
농민의 날, 그리고 195
서영 언니 197
아침이라는 선물 200
밥 먹기 글쓰기 203
5부
/
가을 파종 207
가을 파종 2 209
같이 걸어요 210
같이 걸어요 2 213
배앓이 216
호두 두 알 218
아들도 읽지 않는 글을 220
내가 좋아하는 말 223
산다화가 피었어요 225
오월의 만남 227
메리 엄마 김수연 229
소연아 232
몸치 났나? 235
아주 마니요 238
중복 243
저자소개
책속에서
처서 무렵
구월을 열흘쯤 앞두고
감나무에서 어느새 익은 쪽감이 떨어져
감을 주워 쪽 - 빨아 먹었다
달디단 가을의 맛
아침 산책길의 공기에서도
바람에서도 단내가 난다
가뜩이나 여름이면 맥없어지는 내가
올여름은 손목을 다쳐서 더 덥고 더 힘들었다
그 여름이 드디어 뒷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랜만에 시장을 둘러보니
그새 햇밤도 나왔다
모기떼의 극성도 덜하다
자다가 배를 덮는다
처서 지나
비로소 살 것 같은 가을이다
살아야겠다
꽃자리 연대
― 꽃자리에서 꽃자리로
꽃자리에서
그림 ‘꽃자리’를 만나러 갔다
장소가 사람의 또 하나 이름이 되어버린 꽃자리
이곳에서 나는 십 년 가웃의 세월 동안
전화를 받을 때마다 ‘꽃자립니다’하고 받았다
누구는 거기가 뭐하는 데냐고
찻집? 식당? 하고도 물었지만
이제 알 만한 사람은 다 알도록
이곳 우리들의, 모두의 쉼터는
공히 꽃자리로 자리매김 되었다
지난 가을 어름
그림을 그리는 언니 부부랑 동행하였던 제천 나들이길
그곳 청풍호 인근 솟대전시관 찻집에서 나도 모르게시리
언니의 폰에 담겨진 사진
그날도 나는 나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어버린 푸른
스카프를 쓰고
무턱대고 웃는 웃음을 띠고 차를 마셨던 모양
그 사진이 지지난해 마흔 해 공직 생활 손 놓고
이즈음 여고 시절 처녀 시절로 돌아가
붓을 잡은 언니의 캔버스에 옮겨져
언니의 첫 작품이 된 것을 나는 몰랐다
언니의 일이라면 누구보다 먼저 많이 기뻐하고
축하해 줄 마음 이어서
언니가 다시 잡은 붓
그 붓질의 첫걸음인 발표회에 꽃다발 마련하여 갔었다
그 외출의 연장으로 이래저래 자정이 다 돼서야
귀가했던 간밤
대문 없는 꽃자리
외양간을 손보아 서재며 차실을 겸하여 쓰는 공간의
손때 묻은 다탁 위에는 내가 언니한테 안겼던 꽃다발보다
곱절은 크고 화사한 꽃 한 아름과 천혜향
그리고 한 장의 쪽지가 놓여 있었다
아, 그이가 다녀갔구나!
그 메모 읽은 남편
시다 시
그랬다. 편지이면서 시인
말간 영혼의 결이 한 자 한 자에 섬세하게 아로새겨진
손 글씨
유난히도 단정하고
유난히도 반듯하고 맑고 환한 눈이며 이마
살풋한 미소가 떠오르고
지난 가을 천사의 집 꽃자리음악회 때
그 저녁이 예배가 있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먼 길 달려와 온 정성을 담은, 흡사 기도와도 같았던
플루트 연주를 들려주었던 그이
내일 말고 오늘
어제 한낮 시작된 비가 아침이 와도 좀체로 그칠
기미 없습니다
바깥일 마당 일을 못하니 오늘은 실내에서 몸 쓰기
라디오를 틀어두고 싱크대를 열었습니다
맨 위 칸에 십수 년째 보자기에 싸인 채 자리한 발우 한 벌
수저까지 딸린 발우를 말끔히 씻어서 엎어 둡니다
그래, 발우를 쓰는 거야
어제도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고급지고 아름다운
접시를 두 개나 깨뜨리지 않았나
옻칠된 나무 그릇 나무 수저
내가 나를 모실 밥그릇으로 그만입니다
안성맞춤이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이겠지요
의자를 놓고 올라가 물기를 꼭 짠 행주로
두 칸 선반을 훔치고
내친김에 가스레인지까지 닦고 나니 7시 50분
필터를 간지 4개월이 훨 지난 브리타 정수기의
필터도 갈아 끼웠습니다
보자아…
밥그릇은 손님용까지 네 개 국 그릇 세 개
접시는 다섯 개 뚝배기가 두 개 수정과나 죽을 담는
손바닥 만한 투명 그릇이 여섯 개, 면기 세 개, 샐러드 접시
하나에 뚜껑 달린 찬그릇이 세 개 수저 여섯 벌
냄비 세 개에 프라이팬 두 개 이런저런 용도의 컵이 열두 개
2인용 전기밥솥에 꼭 그만한 압력솥이 하나…
부엌살림이래 봤자 스무 해 넘게 고만고만 오밀조밀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는데 전자레인지도 김치냉장고도
없는 부엌은 내 눈에 언제나 가득 차 보입니다
그래서 그래서 자주 생각하지요
무얼 채우고 들일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고 비울지…
이 작고 남루한 부엌을 나 얼마나 좋아하는지요
좋아했던지요
둘이 서면 꽉 차버리는 이 부엌에서 얼마나 많은
밥상이 차려졌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