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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역사소설 > 한국 역사소설
· ISBN : 9791167764126
· 쪽수 : 350쪽
· 출판일 : 2026-03-03
책 소개
목차
막대기로다
양관삼첩의 밤
금부도사의 위명
몽환의 나라
하하하하
외로운 임금
강진 선비 변사경
한밤의 군신
죽음의 열쇠 곰 ‘웅’
상감은 무얼 하시려고
금문을 연 자
경회루의 봄
진헌사
재회
도하선
집현전의 변고
찢어진 집현전
안동 향교
익숙한 눈빛
둘 중 하나를 택하라면
신숙주
학사들의 시험
세종의 침묵
견의불위
숙현의 귀향
입 모양에 맞춘 글자
분노로 쓰인 표문
명 조정의 분노
꿈결같이 흐른 세월
되돌릴 수 없는 조칙
회한의 눈물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건너면
훈민정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오래도록 침묵하던 세종은 이윽고 가빠진 숨을 고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사정전의 나무 기둥을 울렸다.
“선왕 칠 년에 이미 말 삼천 필을 바쳤소. 그리고 그 이듬해 다시 말 만 필을 바친 건 경들도 잘 알 것이오. 그런데 이제 또다시 소 육천 마리에 말 오천 마리를 바치라니……. 더는 없소. 아니, 있을 리가 있소?”
세종의 목소리는 낮게 가라앉았으나 그 끝에는 미세한 떨림이 스쳤다. 하지만 신료들의 상주는 멈출 줄 몰랐다.
“불충이옵니다! 이것은 전하에 대한 불충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에 대한 불충이옵니다. 국조께서 이미 이소역대以小逆大의 네 글자로 중국을 섬길 것을 삼엄히 명하신 바 이에 어긋나는 일은 크게 처벌하셔야 온당하옵니다!”
세종의 손끝이 마치 무너지는 마음을 붙잡으려는 듯 팔걸이를 눌렀다.
“아니오, 기다리시오.”
세종은 친히 붓을 들어 서찰을 썼다. 번지는 묵향 속에 그의 결심이 스며들었다.
“바람만 새고, 떨림이 비어 소리가 공허하다는 말이더냐?”
“그렇사옵니다, 전하.”
잠시간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세종은 이내 웃으며 장영실을 향해 농을 던졌다.
“너는 어찌하여 가여운 짐승들의 목을 헤집어 놓았느냐. 차라리 저 요란한 조정 대신들의 목청을 떼어 가져오면 어떻겠느냐?”
“…….”
“하하하! 사정전이 얼마나 고요할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온하구나.”
“송구하옵니다, 전하.”
“또 명의 사신은 어떻겠느냐. 그것도 해낼 수 있겠느냐? 하하하!”
장영실은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는 세종의 웃음에 눈물이 치밀어 오르는 것을 억지로 참아냈다. 저 웃음 뒤에 얼마나 안타까운 처절함이 있을 것인지 짐작할 수도 없었다.
(…)
오늘의 이런 농을 같이 나눌 수 있는 상감을 위해서라면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자 장영실은 종내 눈물을 비치고 말았다.
“왜 그러느냐?”
“전하의 농이 너무 우스워 눈물까지 나옵나이다. 하하하.”
“웃기기는 네가 웃겼다. 해낼 수 있겠냐 물었더니 의뭉스레 넘기는 것이 딱 벼슬아치로다! 하하하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