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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27500
· 쪽수 : 8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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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너는 ‘믿음, 소망, 사랑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다’라는 경구를 떠올렸다. 믿음은 둘째 또는 셋째구나. 어쨌든 첫째는 될 수가 없구나. 믿음은 사랑보다 슬프겠구나…… 생각하며 믿음, 믿음, 믿음 중얼거리다 보니 믿음과 미움은 비슷한 구석이 있는 것도 같았다.
어떤 믿음에는 이기적인 구석이 있지. 너는 믿음에 깃든 이기심을 되새긴다. 당신이 반드시 돌아오리라는 믿음은 오직 나를 위한 마음. 당신을 끝까지 믿는다는 말은 나를 절대 배반하지 말라는 요구. 그러므로 믿는 마음에는 이기심보다 큰 외로움이 숨어 있다. 먼저 떠나지 못한 사람이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홀로 되삼키는 울음이 있다. 너는 남겨지는 사람이 되지 않으려고 이곳까지 왔다. 믿지 않으려고 훌쩍 떠났다.
너는 그와 오늘 밤 불법을 저지를 것이다. 그것은 두 사람만의 비밀로 남을 것이다. 너는 불법을 안다. 너는 비밀에 지쳤다. 그것이 너무 지긋지긋해서, 너를 갉아먹고 흩트리고 하찮게 만드는 것만 같아서 그만두려고, 너에게 무엇도 요구할 수 없도록 완벽하게 숨어버리려고 이곳에 왔다. 지난밤 너는 연극을 했다. 연극하듯 살면 숨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서울에서의 삶은 연극이 아니었던가? 너는 때로 연기하듯 거짓말하고 감추고 기만했다. 몰랐다는 말은 소용없다. 알게 된 다음에도 그만두지 않았으므로. 멈추려는 시도로는 부족하다. 분명하게 멈추어야 했다. 그것만이 네 결백을 증명할 수 있지만, 결백이 무슨 소용인가? 이미 사랑해버린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