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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151048
· 쪽수 : 368쪽
· 출판일 : 2025-01-31
책 소개
목차
작가의 말•4
첫번째 이야기, 달의 숨바꼭질•11
두번째 이야기, 달빛재 너머 바닷가 외딴집•63
세번째 이야기, 환(幻)의 누항(陋巷)•101
네번째 이야기, 홀로 흔들리는 풀•145
다섯번째 이야기, 그 덤불숲•177
여섯번째 이야기, 존재의 변명•251
작품론| 장경렬•320
저자소개
책속에서
첫번째 이야기
달의 숨바꼭질
울 엄마의 똥고집을 꺾을 만한 사람은 천하에 없다. 요컨대 울 엄마와 아주 중요한 일로 다투고자 하면 거기엔 이유 있는 끝을 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두 번 다시 화해라고는 없이 영원히 남처럼 지낼 각오를 하면 되는 것이다. 절대로 용서라고는 없다. 마찬가지로 당시의 내 정신회로도 이상하게 우주로까지 연결돼 있었던 것 같았다.
“호수에 달 뜨면 ‘나’ 온 줄 알 거래이. 귀를 바싹 기울이면 호수에서 그런 소리가 들린다더라. 밤새 달 지고 수면이 잔잔한 뒤엔 삼신 할매 놀다간 뒷자린 줄 알 거래이. 니가 보인 치성만큼 노력에 삼신 할매들도 물속에 자맥질하면서 아기를 예쁘게 빚어낸다더라. 그 정교한 봉합술의 결과 사내도 되고 딸내미도 되는 거라더라.”
엄마가 이런 소리를 밑도 끝도 없이 낼 때는 우리는 아주 옛날의 동화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었다.
세상에 호수도 바다도 따로 없는 시절에 무슨 놈의 바다며 호수며 따로 있었을까?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이름들조차 존재하지 않던 시절에 말이다.
엄마는 진양호에 달이 뜨면 ‘아주,’ ‘아주’를 수십 번 달고 나서야 ‘그 아주 옛날부터 살았던’ 더 남녘 바닷가에 있는 오래 된 고향 삼천포 할머니한테서 들었음직한 똑같은 삼신 할매 아기 만드는 신비한 이야기를 마치 옛날 동화처럼 진지하게 들려주곤 하였다. 삼신 할매가 금슬 좋기로도 예부터 소문났지만 봉래산, 방장산, 영취산 각기 내로라며 자존심들이 강해서 시합이 있을 때면 절대 지지 않는다고 이야기하고는 하였다. 나중에 판정은 마고할미가 내린단다. 엄마는 삼신 할미들이 괴기스런 예리한 손톱을 하나씩 갖고 있어 그것으로 솜씨 자랑을 한다고 굳게 믿었다.
하기야 이 지구상에 생명체가 처음 살기 시작하는 조건이 충족되려면 물과 빛 에너지와 유기물의 융합이 필요하단다. 지구가 탄생한 지 40억년! 그래도 아직 2억년이 더 흐른 42억년이 돼서야 물속에 첫 생명체가 나타난다. 엄마는 마치 그 아득하고, 더 아득하고, 또 아득한 세월을 다 지켜 보아 온 사람인 양 밤새도록 얘기를 늘어놓을 때가 있다. 특히 금요일 오후가 되면 가족들은 지붕 밑 다락방에 옹기종기 나앉아서 수다를 떨곤 했다.
“달이 지금 어디쯤 숨었는지 아니? 달은 숨바꼭질하는 게 아니야. 내가 사는 바닷가에는 잠시 숨바꿈질 하느라 한 호흡 가다듬는 행위일 뿐이야. 마치 해녀가 다음 자맥질을 위해 호흡을 가다듬고 한 번 숨을 바꾸어 쉬고 자맥질하는 것과 똑같애.
모든 숨박질은 바다에서 유래했고, 물속으로 자맥질하는 것을 말한다. 갯가에서는 아직도 숨막질과 숨박질은 동일한 잠수질이며 자맥질인 거야. 갯가 사람들이 절대 오해하지 않는 것 중에 하나는 숨바꼭질의 ‘숨’은 ‘숨는다’는 뜻이 아니란다. 꼭 명심해라. 숨쉬다의 ‘목숨’과 연관된 거야. 그래서 숨바꼭질은 그 의미가 숨 쉬는 것을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아주 옛날 표기대로 적으면, 겨우 ‘숨박질’이거나 ‘물숨박(潛水)질’이 나중 ‘숨박곡질’로 바뀐 것에 불과하지.”
그러던 어느 날 엄마는 정색을 하더니 2009년 11월 18일 새벽 4시부터 6시 사이, 두 시간 가량 사자자리에서 유성우가 쏟아진다는 소식이 TV 방송을 통해 널리 알려지자, 이젠 정말 갈 때가 됐다고 말했다. 33년을 주기로 가장 많은 유성우가 관측되는 그 우주 쇼를 보려고 세상은 야단들이었다.
울 엄마는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지난 2000년 7월 16일 밤에 개기월식이 있었던 걸 들은 적이 있나? 엄마는 이미 그때 떠나려고 했지. 그래도 우리 애들이 아직 가엾고 불상해서 못 떠나고 있어. 그래서 한번 계산을 해 봤지. 2011년 12월 10일, 밤 9시 46분부터 새벽 2시 32분까지 개기월식의 전 과정을 볼 수 있어. 실제 계산까지 다해 봤어. 그리고 또 7년 후인 2018년 1월 31일에도 개기월식을 다시 볼 수 있걸랑. 그 사이, 나는 물숨박꼭질 하러 잠깐 사라질 거야.
생명은 한 곳으로 와서 한 곳으로 사라진다. 울 엄마는 마지막 계산을 다 해 보는 듯했다. 그 기간이 꽤 길어지는 듯하더니, 어느 날은 자기 생명 장치의 끈을 놓아도 될 것 같은 마음이 드나 보다. 엄마는 아주 예리한 손톱을 갖고 있고 절대로 남의 눈에 쉬 띄지 않을 만큼 재빨리 사용했다
엄마는 거짓말처럼 말했다. “이젠 정말 갈 때다.” 마지막 떠나면서 하는 작별인사까지 좀 장난스러웠지만 울 엄마가 원체 그런 분이다.
“달이 숨박꼭질한다고 우주의 어디로 숨겠느냐? 잠시 물속에서 숨 바꾸기 하며 언뜻 사라졌다가 세상 시시하면 또 나타나겠지……. 2018년이면 우리 막내가 시집가서 애 낳는 날쯤 되겠지. 그때 나도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내고 싶다만, 세상 이치가 모두 뜻대로만 되더냐? 만일 서기 2018년, 8월 12일 일요일 밤에 페르시우스 유성우가 쏟아져 우주의 쇼가 진짜로 펼쳐진다면 나도 장담할 수 있어.
아마 그때 너희들이 날 잊지 않고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땐 충분히 가능해.”
1
그리하여, 개기월식이 있던 날 밤,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엄마에겐 잠시 숨바꾸기 형태였을 뿐인데, 존재가 시야에서 홀연히 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은 한낱 자연 현상일 뿐이라고 아버지는 말했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 밤에도 맞배지붕 위에 돌출된 형태의 다락방에서 문희와 내가 내려다 본 호수 위로 달은 변함없이 떠올랐다. 수면에 창백하게 부서지는 달빛도 여전한 것이었다.
“야수(夜水)는 백(白)이야.”
과거 중학교 미술 선생이었던 엄마가 즐겨 쓰던 말이었다. 야경을 그릴 때 밤의 물빛은 밝게 칠해야 한다면서. 아닌 게 아니라, 밤의 물색이 늘 흰빛인 것은 호반의 우리 집 이층 다락방에서 한눈에 굽어 뵈는 호수가 늘 증명해 주었다. 그게 다 달빛 때문이지. 엄마는 자주 그 말을 썼다.
우리가 어린 시절, 잠자리에 들기 전에 엄마는 곧잘 이 다락방에서 동화책을 읽어 주곤 하였다. 책을 읽다가도 바야흐로 달빛이 유리창으로 환히 스며들 즈음이면 엄마는 문득 동작을 멈춘다. 그리고는 창틀 머름에 팔꿈치를 기댄 채 하염없이 호수 쪽을 내다보는 것이었다. 그때의 표정은 왠지 무연(憮然)해 보였다. 그것은 단지 달빛이 만드는 짙은 음영으로 인해 얼굴의 요철이 뚜렷이 대조되는 데서 빚어진 묘한 분위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기억들은 세월 속에 뒤섞여 순서 없이 떠오르게 마련인가. 지상의 삶을 끝낸 엄마의 육신은 화장되었다. 관이 화장장의 연소실 안으로 들이밀어지고 쇠문이 철컥 닫히자, 그 순간 엄마와의 현실적 관계도 인젠 완전히 끝났다는 느낌이 들었다. 화부가 연소기를 작동했고, 가스불은 화악 소리를 내며 타올랐다. 두꺼운 유리에 특수 코팅된, 장방형의 조그만 창을 통해 벌겋게 타고 있는 연소실 안이 빠끔히 들여다보였다. 비로소 나는 눈물이 왈칵 솟구쳤다. 더 이상 보고 있을 수 없어 돌아섰는데, 대기실의 딱딱한 나무벤치에 얼굴을 감싸고 앉은 문희도 계속 흐느끼고 있었다. 그 애는 아까 엄마의 관이 연소실 안으로 들어가던 때부터 엉엉 소리 내어 울었던 것이다.
침통한 표정을 한 아버지가 문희의 어깨를 다독이며 위로하고 있었다. 나는 그 애 옆에 다가가 딱딱한 그 나무벤치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았다. 아까보단 꽤 진정되었으나 그래도 줄곧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끼고 있는 문희를 나는 목덜미를 싸안듯이 팔로 감싸주었다.
“선이야, 엄마가 없으니 이젠 니가 동생을 잘 돌봐야 해.”
아버지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지만 나 역시 위로받아야 할 처지인 건 마찬가지였다.
나보다 더 어린 문희의 슬픔을 염려한 아버지가 그렇게 말한 것쯤은 나로서도 충분히 알 만한 나이였다. 그 당시 문희가 초등학교 5학년, 네 살 터울로 언니인 나는 중학교 3학년이었다. 그러나 슬픔의 깊이에 연령이 무슨 상관이랴.
“이젠 니가 엄마 대신 문희를 잘 보살펴야 해…….”
엄마가 세상을 떠난 후로 아버지가 이따금씩 입버릇처럼 되뇌던 이 말을 그동안 나는 얼마나 빈번하게 들어왔는지 헤아릴 수조차 없다. 아버지와 가사를 분담하여 평소 집안에서 엄마가 맡아 했던 역할은 온전히 내 차지였다. 주로 식탁을 차리고 설거지하고 빨래하는 일이긴 했으나 그밖에 사사로운 뒷바라지까지 역시 내 몫이었다.
엄마가 없는 빈자리를 메우려는 내 행동은 어쩌면 문희를 의식해서 꽤 작위적이었던 데가 있었다. 그 애의 초등학교 졸업식장에도 나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아버지와 함께 가서 엄마를 대신했다. 또, 문희가 중학교 입학 무렵에 초경을 치렀을 때도 나는 여자로서 누구나 겪는 그 통과의례를 설명하며 엄마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엄마가 없는 세상을 너무 일찍 경험했던 탓일까. 문희는 정신적 충격의 후유증을 유달리 오래 겪는 것 같았다. 자주 침울해 했고 말수도 줄었다. 그런 기미가 보이면 나는 곧잘 문희에게 제안했다. 옛날에 엄마와 함께 셋이서 다락방 창문을 열고 지붕 위로 나가 앉아 달구경하던 때처럼 하자고.
달은 어디쯤 떴을까. 그 무렵 추분 지나 한로의 절기를 앞둔 시월 초순이었는데, 엄마의 말을 빌리면 음력 초이레나 여드레쯤엔 상현달이 떠서 초저녁이면 남쪽의 중천에 위치하는 걸 볼 수 있다 하였다. 엄마는 달과 관련된 음력에 민감했고, 달력에는 24절기마다 반드시 동그라미 표시를 해 두었었다. 그리고 집안의 주요 대소사, 예컨대 조상의 제삿날이나 가족의 생일 등은 모두 음력으로 치렀기에 잊지 않고 항상 메모해 두는 습관이 있었다.
“달력은, 인류가 고안해 낸 위대한 발명품이야. 엄마가 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 때문에 인간은 옛날부터 해와 달의 운행을 관측해서 시간을 만들고 달력을 만들었다대.……”
어느 땐가 해가 바뀌는 세모에 엄마는 새 달력에다 미리 날짜를 찾아가며 동그라미를 치거나 누구의 제삿날, 누구의 생일날 따위를 메모하면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죽음이 어쩔 수 없는 숙명이란 건 누구나 다 안다. 그러나 항시 나를 불편하게 하는 건 엄마를 현실의 일상에서 영영 볼 수 없다는 그 슬픔이다. 내가 이제 엄마를 위해 할 일이란 달력에 동그라미나 치고 엄마의 기제사(忌祭祀) 날짜만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2
언젠가 상현달이 뜨던 밤에 우리는 엄마를 가운데 두고 지붕 위에 나앉아 오순도순 오래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그 무렵, 낮 시간이 점차 짧아져 일찌감치 저녁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끝낸 저녁 7시쯤 되자 벌써 사위는 캄캄했다. 우리는 다락방의 창틀을 넘어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발을 디뎌 경사가 완만한, 덩치 큰 맞배지붕 위에 나란히 앉아 호수를 내려다보았다. 호수의 습기를 머금은 눅눅한 공기가 대기를 떠도는 감촉에 몸이 서늘해짐을 느끼던 시월 초순의 어느 저녁이었다. 문희가 여섯 살 때였는지, 일곱 살이었는지는 분명치 않다.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던 것만은 확실하다.
호수에 비쳐 일그러진 상현달의 반영을 보고 그 애는 무심코, 어둠이 베어 먹다 수면에 떨어뜨린 달 조각……이라는 투의 표현을 함으로써 엄마를 깜짝 놀라게 했다.
“우리 문희에겐 시인 될 소질이 다분히 있는 것 같애.…… 어쩜 외삼촌 닮았나 봐.”
엄마의 오빠뻘인 외삼촌은 시인이었다. 엄마의 그런 감탄에 문희는 잠깐 고개를 갸웃하더니, “아니, 난 커서 엄마처럼 화가가 될 거야”라고 단호히 말했다.
“아무렇든, 엄마가 봐도 문희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게 달 같은 성격이거든. 그건 예술가적 기질에 딱 맞아. 반대로 선이는 명랑쾌활하고 활동적이라서 해처럼 밝은 성격이야. 그런데 달은 스스로 빛을 내지 못해서 햇빛을 받는 부분만 우리 눈에 보이지. 그러니까 우리 선이도 늘 문희가 빛날 수 있도록 곁에서 보살피고 도와줘야 해. 달이 밝게 빛나는 건 오직 태양빛을 받아 반사하는 이치 때문이듯이…….”
밤에 멀리서 보면 호숫가 기슭의 숲 그늘에 엎드린 이층집 맞배지붕 위로 불쑥 솟아 있는 다락방의 불 켜진 창이 무슨 거대한 괴물의 눈처럼 빛나던 건축 양식―그건 미술 선생이었던 엄마가 직접 궁리하여 설계한 것이었다. 엄마는 우리 자매를 위해 다락방을 만들었고, 자신만의 화실을 갖고 싶어 이층에 또 하나의 방을 베란다 양식으로 꾸몄다. 그 방은 집 내부의 아래층과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으로도 통했지만, 직접 밖으로도 나갈 수 있게끔 한쪽에 누마루가 딸려 있어 난간을 붙인 계단을 따라 곧장 정원과 이어지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이 정원은 화실 못잖게 엄마의 정성과 노력을 쏟아 가꾸어진 것으로, 엄마 스스로는 ‘나의 에덴동산’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거창한 이름 대신 단지 ‘엄마의 정원’이라고만 호칭했다. 그 정원의 한쪽 구석, 농기구 등속을 보관하는 창고에 딸린 까대기는 유기농법을 고집하던 엄마가 만드는 퇴비 썩는 냄새의 진원지였다. 이따금 호수 위를 불어오는 바람에 실려 묘한, 그러나 그다지 역하지 않은 냄새로 코끝을 자극하곤 했다.
아무튼 이 정원과 화실에서 엄마는 그 무렵 ‘달과 호수’를 소재로 끊임없는 변주(變奏)를 시도하고 있었다. 엄마가 우리 자매에게 곧잘 들려주던 달의 위치와 변화에 대한 이야기도 이 화실의 캔버스 앞에서, 혹은 지붕 위 다락방의 창틀 머름에서 오랜 시간 밤하늘을 관찰한 내용들이었던 것이다.
엄마와 우리는 문답형식으로 자주 달에 관해 대화하였다.
“달의 모양과 위치는 매일 변하는데, 왜 그럴까?”
“달이 지구 주위를 공전하니까요. 학교에서 배웠어요.”
“그래, 맞아. 그런데 오른쪽으로 휘어진 눈썹 모양의 초승달은 음력 초이틀 경 저녁 무렵이면 서쪽 하늘에서 보이다가 바로 지고 말지.”
“초승달이 서쪽에서 뜬다는 말인가요?”
“아니, 그런 뜻이 아냐. 달도 해처럼 반드시 동쪽에서 뜨지. 하지만 우리 눈에 보일쯤엔 이미 날이 저문 초저녁 서쪽 하늘에 가 있기 때문에 꼭 서쪽에서 뜬 것처럼 보인다는 얘기야. 그렇게 매일 조금씩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동하며 커지다가 7,8일 경엔 지금처럼 오른쪽이 둥근 반원 모양의 상현달로 되는 거야.” 엄마가 또 말했다. “그러니까, 상현달은 초저녁 남쪽 하늘에 떠서 서쪽으로 기울고, 하루하루 그 위치도 동쪽 가까운 하늘에서 원형에 가까운 형태를 보이다가 마침내 십오야(十五夜)가 되면 완전히 둥근 보름달로 변하지. 보름달은 초저녁 동쪽 하늘에서 떠올라 남쪽 하늘을 지나 서쪽으로 진단다.”
“그럼, 보름달이 하현달로 변하는 모습은 반대겠네요.”
“응, 그렇지. 왼쪽으로 휘어진 반달 모양의 하현달은 한밤 자정쯤 동쪽 하늘에서 뜨고 새벽녘엔 중천에 가 있지. 그런데 초승달과 정반대 모양의 그믐달은 새벽이 돼야 동쪽 하늘에서 뜨는 걸 볼 수 있단다.……”
엄마의 화실에는, 고요하게 산과 하늘과 달을 품은 호수 풍경의 그림들이 가득 차 있었다. 어떤 것은 완성된 형태로, 어떤 것은 그리다가 만 미완성의 형태로. 그것들은 엄마가 우리에게 들려준 달의 위치와 모양이 각기 다른 화폭들이었다.
우리 집 다락방이나 지붕 위에서 바라본 호수는 처음부터 거대한 자연 호수였던 것처럼 우리의 출생 전부터 이미 거기 있었다. 그래서 마치 그것이 1969년 댐 건설을 위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라는 사실을 거짓말처럼 감춘 능청스런 모습을 한 채 의연히 태고(太古)의 고요 같은 으늑함을 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