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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151369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5-12-24
책 소개
목차
서문 | 지금, 이 순간이 선물이다·4
추천사 | 사색과 성찰의 시간을 선물 받다 - 김정민·6
Ⅰ.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12
서천의 사계·17
내 안의 뜰·21
금강 하구언의 숨·26
옛길은 추억의 그리움이다·31
기다림 그리고 시작·36
때가 되면 피는 꽃·41
낯선 그녀·46
Ⅱ. 바늘로 그리는 그림
그 자체만으로도 완벽한 집·52
봄빛처럼 찬란한 나날·57
뭍에 오른 조각배·62
인생을 함께하는 집·67
다시, 수학여행처럼·72
이순이 손짓하는 즈음·78
바늘로 그리는 그림·83
어머니의 여름·88
Ⅲ. 무보수 비서
숲으로 간다·94
아름다운 이별·99
청년이 된 남자·103
둥지를 날다·107
어머니의 삼계죽·111
손님에서 가족으로·115
행복한 숙제·120
무보수 비서·125
Ⅳ. 안식의 끈, 고향 집
달콤한 정원·132
안녕, 숨터·136
안식의 끈, 고향 집·141
달 마중·146
멈춘 시계·152
해바라기 사랑·156
어둠이 짙을수록 달은 밝다·162
공포와 악몽이 지나간 자리·166
Ⅴ. 흰 가운의 무게
마당 넓은 집·172
번개를 치다·177
뿌리 깊은 나무·182
삶의 경계를 넘다·187
서림문학동인회와 나들이·191
아름다운 사람은 언제나 아름답다·195
흰 가운의 무게·199
한 여름날의 미열·204
서평 | 기다림 끝에 핀 꽃 – 장석영·210
저자소개
책속에서
Ⅰ.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발씨가 익은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은 아프고 쓸쓸하다. 차창 밖 풍경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건만 내 마음은 검은빛이다. 낮 동안 하동지동하던 업무와 일상생활에 휘둘려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의 시간으로 돌려주는 까닭이다. 오늘,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 주실까.
무술년 2월 초입, 숙환으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전까지는 작은어머니와 요양보호사의 간호를 받았다. 약간의 치매 증상과 관절의 힘이 빠지면서 자꾸 넘어지곤 하였다. 자연스레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겨우 화장실을 드나들던 기운마저 점점 방안에서 해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문밖까지 나와 마중하던 어머니는 병상에서 맞는다. 입원할 당시만 해도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가뭇없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신다. 짧게 자른 머리, 얼굴엔 검버섯과 붉은 딱지가 사의 갈림길에서 시간을 재촉하는 것 같아 짠하니 아프다. 어떤 날은 손과 발이 퉁퉁 불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수액 꽂을 혈관을 찾지 못해 장딴지와 허벅지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곤 한다.
어머니는 꽃이슬처럼 조심스럽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도 없다. 간호사가 일정 시간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체위를 바꿔 준다. 일반실과 집중치료실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집중치료실에서 좀처럼 일반실로 이동할 기미가 없다. 상태가 점점 악화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식사는 코를 이용한 경관영양법으로 대체한 지 오래다. 침상 옆에는 심장, 맥박,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가 여러 갈래의 전기선을 늘어뜨린 채 서 있다.
어머니는 구순에서 세 해를 넘기면서 아기가 되었다. “어머니, 어머니…….” 한참을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손을 쥐어 봐도, 어깨를 토닥이며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그저 초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눈물인지 눈곱인지 흘러내린 이물질을 휴지로 닦아 준다. 한마디의 말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눈 맞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풋심이라도 내주길 고대한다. 그렇게라도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오래도록 있어 주면 좋겠다.
아기가 된 어머니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외로움에 무섭지는 않을까. 그토록 꿈꿨던 곳을 서성일까. 어떤 곳을 여행하고,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까. 지난 세월 만났던 인연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을 돌볼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어머니, 지금쯤 그곳에 있을까.
누군가 인생을 소풍이라 했던가. 한순간에 가족이 되고, 주변인이 되고, 한 세상 사람으로 어우러진다. 짧게 혹은 길게 인연이 된다. 한 생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어머니와의 인연도 그렇다. 내게 주신 사랑은 가히 높고, 넓고, 크다.
어머니의 삶은 인생의 길잡이였다. 힘에 겨워도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손톱이 갈라지고 상처가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항상 정갈한 매무새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집안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서 갈무리를 잘하셨다.
지금쯤 어머니는 반환점을 돌아 처음 왔던 길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기가 된 것일까. 꾀꾀한 얼굴로 하르르 심호흡한다. 몸은 자유롭지 않아도 정신은 자유로운 날개를 달지 않았을까. 생과 사의 잇닿은 경계를 향해, 그 끝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걷고 있으리라.
딸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할머니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손과 얼굴 그리고 환자복 밖으로 드러난 곳을 어루만진다. 손은 물론 볼과 입에 뽀뽀한다. 코딱지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꺼내고 거친 피부에 보습크림을 발라준다. 할머니에게 받았던 밥물림 사랑만큼이나 눈물겹다.
오늘은 어머니가 눈을 마주친다. 눈동자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막이 있다. 그 눈동자 안에서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인다. “어머니, 어머니!” 부르지만 메아리만 남는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들여다본다. 발씬 웃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저 의미 없는 눈짓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라도 조금 더 힘을 내주길 바라고 바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대문 밖 마중을 기대한다. 따뜻한 온기가 있는 어머니의 집에서 도란도란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코촉상이어도 식구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이슬빛 찬란한 새 아침의 햇살을 함께 맞이하길 고대한다.
서천의 사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땅풀림 머리가 되면 살아있는 만물은 봄으로의 기지개를 켠다. 생동하는 봄의 전령사를 따라 시나브로 계절의 출발선에 선다. 하품하듯 긴 호흡은 삶의 치열함 속으로 들어간다는 신호요, 지난 계절 잉태한 새 생명을 내놓을 알맞은 희망의 시기다. 잎을 떨어냈던 나무마다 움돋이를 내보내 생동생동 짙은 초록으로 이끈다.
서천의 사계는 아름다운 정원이요, 보금자리다. 신성리 갈대밭,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 금강하굿둑 철새도래지, 힐링하기 좋은 송림 해수욕장, 우리 전통 건축의 자연미를 볼 수 있는 문헌서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돋이, 해송이 아름다운 춘장대해수욕장,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 지인 마량진….
서천은 서해의 중심이자 충남의 최남단에 있고, 우리나라 4대강 중 하나인 금강이 있다.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이요, 바다와 만나는 아름다운 노을이 있다. 기름진 옥토와 서해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풍부한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내준다.
서천은 성리학의 대가인 목은 이색과 독립운동가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다. 백제의 군사 요충지였던 기벌포 문화권은 천오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백제의 향기가 면면히 이어진다. 저산팔읍길쌈놀이는 백제 때부터 이어온 서천 지역 고유의 대표적 생활 문화로 방문객까지 누리는 전통문화이다.
서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사계절 관광지요, 어깻바람이 이는 고향이다. 마을마다 울타리를 이루는 동산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가워 봉실거린다. 어머니의 후듯후듯한 품처럼 언제나 평화로운 곳이요, 마음껏 세상으로 내달릴 수 있는 배경이다.
잠깐 외곽으로 나가면 만나는 서해가 있다. 얕은 바다는 올똑볼똑한 개펄로 진득하다. 개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쬐는가 하면 인기척에 놀라 순식간에 제집으로 숨바꼭질하듯 몸을 피한다. 밀물과 썰물의 조화로운 자연현상은 기다림을 알게 한다.
바다로 나가는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한 계절을 살아가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사계절 아니 수년 동안 계절의 순환 고리와 맞물려 우리와 함께 간다. 가로수는 어느 순간 갈맷빛으로 바뀌고 꽃잎을 맺는다. 꽃을 떨어낸 자리는 열매를 맺고, 잎사귀를 떨구면 동면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어느 계절이든 쪽빛의 멀리 있는 바다와 윤슬의 일렁거림도 좋다. 물꽃이 이는 파도를 보노라면 심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내 헝그럽다. 숨 가쁜 외줄의 인생처럼 쉬어감의 배려를 만나는 곳이요, 뒤를 돌아보는 여유에 깊은 호흡을 한다. 먼눈팔 때도, 세파에 시달릴 때도 나직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고요의 잠 속으로 이끈다.
숲으로 들어가면 계절과 관계없이 신선한 피톤치드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도 좋다. 그곳에 사람의 냄새, 바람의 냄새, 숲의 냄새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천의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다.
서천에서 나고, 자라고, 미래에도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곳에 살리라. 지천명을 지나면서도 소리 없이 스며든 ‘서천 사람’이라는 것이 좋다. 눈비음하지 않아도, 먼 길을 돌아와 쉼이 필요할 때 언제고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곳이다. 그런 서천의 사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누구나 서천 사계의 정원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기에 한 계절이 지난다 해도 자연스러운 희망으로 기다리면 된다. 언제든지 따뜻한 마음이 고플 때 바람 쐬듯 발길 닿는 곳으로 나가면 된다. 그곳에서 가만히 들려주는 위로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용기를 느끼면 되니까.
서천의 사계를 영원한 가치로 만나길 고대한다.
내 안의 뜰
내 고향 ‘진재’를 떠올리면 막연한 그리움에 먹먹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을 발치에 두고도 쉬이 갈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삶의 톱니바퀴를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두려워한 까닭일까.
오래된 고향 집 나무 마루에 앉았다. 허름한 담장을 넘어온 새뜻한 바람이 뺨을 두드린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음에도 따뜻하고 평화로움은 온새미로 한결같다. 알 수 없는 향기, 무한한 벅찬 기운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니 더아니 기쁜가.
낮은 담장 주변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파릇한 싹들이 생동생동 기지개를 켜기라도 하듯 앞다투어 연한 연둣빛 속살을 드러낸다. 풀포기 하나하나 신비롭다. 나무의 새싹도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아진다.
오래된 집은 등이 굽듯 기운다. 흙으로 된 벽은 금이 가고 구멍이 뚫렸다. 커튼을 드리우듯 거미줄이 한껏 바람에 한들거린다. 오랫동안 주인의 부재에 쓸쓸함이 배었나 보다. 임시방편으로 흙을 빚어 메운 자리가 그나마 흔적으로 남았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들창문은 어머니 같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움에 눈물겹다. 방문마다 나무 창살에 한지를 곱게 바른 여닫이문은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다. 가만한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내 안의 뜰에, 고향 집을 지키고 있었나 보다. 흐리마리한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오빠 내외는 주말에 들러 집안닦달은 물론 푸서리가 된 밭을 일군다. 사람이 살지 않아 손품과 발품이 여간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뒤란의 울타리를 이루는 신우대밭을 정리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집 주변을 이루는 텃밭은 잡풀이 경쟁이라도 하듯 키 재기 한다. 쓰렁쓰렁 일했다고는 하나 여무지고 빈틈이 없이 깔끔하다.
우리는 산림조합에서 매년 주는 나무교환권으로 이번에는 ‘왕대추’ 나무를 골랐다. 그동안 딱히 나무 심을 곳이 없어 고향 집 주변 텃밭 빈자리에 심었다. 심을 때의 설렘과 열매를 기대하면 벌써부터 풍요로워진다. 돌아보니 여백을 채우듯 제법 여러 종의 오금드리 나무가 거기에 있다.
오빠 내외가 고향 집에 오는 날을 골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망중한을 틈타 갔을 때,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두 팔 벌려 우리를 맞는다. 작업복, 모자, 장갑, 장화를 신은 모습에서 한참은 일하고 난 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텃밭으로 향했다. 가져온 ‘왕대추’ 나무를 볕이 잘 드는 최적의 장소에 심었다. 풋머리가 되려면 서너 해는 기다려야 한다. 해마다 정성껏 거름을 주노라면 탐스러운 대추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심었던 나무가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양 제법 늠름하게 가지를 뻗었다. 주인의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는지 밭에는 냉이, 파, 도라지, 더덕, 돼지감자가 지천이다.
남편과 나는 돼지감자를 캤다. 얼마나 알이 실하고 많던지 짧은 고랑에서 노다지가 나오듯 끝이 없다. 깨끗하게 손질한 돼지감자를 안아 들고 부자가 되었다. 혼자 먹기는 많아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오빠 내외는 도라지와 더덕을 한 보따리 챙겨 준다.
큰올케는 깨끗하게 정돈된 마루인데도 수건으로 시부적시부적 닦고는 앉기를 권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커피 향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옛 추억의 끈을 이어 묶었다. 고향 뜰의 변화와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들음들음 들어도 반가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소끔 땀을 흘리고 난 후의 휴식은 내 안의 뜰만큼 고요하다. 마루에서 내다뵈는 동네 풍경이 한가롭다. 담 너머 보이는 빈집의 대나무 울타리는 경계를 잃었나 보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파란 하늘에 몽게뭉게 그림을 그리듯 정겹다. 미완의 수채화처럼 봄이 이제 막 출발선에서 도움닫기 한다.
빗장 걸린 나무 대문을 열고 나가면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였다. 마당 가 감나무 사이 원두막에 오르면 마음은 언제나 평안하다. 저 멀리 들녘을 지나오는 바람에도, 비가 내리면 초가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물방울에도 싱그러움이 있다. 꿈에서조차 마음만은 고비샅샅 그곳을 누빈다.
내 안의 뜰에 고향의 소소한 일상을 채운다. 언제든 웅숭깊은 품으로 맞아 주는 어머니의 품이요, 내 삶의 보루다. 생각만 하여도 무한한 평안과 위로를 받는 곳이다. 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그 뜰을 서성이리라. 눈물겹도록 그리운 내 뜰에 사랑의 나무를 심듯 정성을 다해야겠다.
Ⅰ. 어디쯤 가고 있을까
어디쯤 가고 있을까
발씨가 익은 요양병원으로 가는 길은 아프고 쓸쓸하다. 차창 밖 풍경은 온통 초록으로 물들었건만 내 마음은 검은빛이다. 낮 동안 하동지동하던 업무와 일상생활에 휘둘려 잠시 잊고 있던 기억의 시간으로 돌려주는 까닭이다. 오늘, 어머니는 어떤 모습으로 맞이해 주실까.
무술년 2월 초입, 숙환으로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셨다. 그전까지는 작은어머니와 요양보호사의 간호를 받았다. 약간의 치매 증상과 관절의 힘이 빠지면서 자꾸 넘어지곤 하였다. 자연스레 몸에 상처가 늘어났다. 겨우 화장실을 드나들던 기운마저 점점 방안에서 해소하는 일이 잦아졌다.
문밖까지 나와 마중하던 어머니는 병상에서 맞는다. 입원할 당시만 해도 반갑게 맞아 주었는데 가뭇없이 기억 속으로 사라졌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신다. 짧게 자른 머리, 얼굴엔 검버섯과 붉은 딱지가 사의 갈림길에서 시간을 재촉하는 것 같아 짠하니 아프다. 어떤 날은 손과 발이 퉁퉁 불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다. 수액 꽂을 혈관을 찾지 못해 장딴지와 허벅지에 주삿바늘이 꽂혀 있곤 한다.
어머니는 꽃이슬처럼 조심스럽다. 스스로 몸을 가눌 수도 없다. 간호사가 일정 시간마다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체위를 바꿔 준다. 일반실과 집중치료실을 몇 차례 반복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 집중치료실에서 좀처럼 일반실로 이동할 기미가 없다. 상태가 점점 악화하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다. 식사는 코를 이용한 경관영양법으로 대체한 지 오래다. 침상 옆에는 심장, 맥박, 혈압을 측정하는 기계가 여러 갈래의 전기선을 늘어뜨린 채 서 있다.
어머니는 구순에서 세 해를 넘기면서 아기가 되었다. “어머니, 어머니…….” 한참을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손을 쥐어 봐도, 어깨를 토닥이며 흔들어도 반응이 없다. 그저 초점 없이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눈물인지 눈곱인지 흘러내린 이물질을 휴지로 닦아 준다. 한마디의 말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눈 맞춤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풋심이라도 내주길 고대한다. 그렇게라도 조금만 더, 우리 곁에 오래도록 있어 주면 좋겠다.
아기가 된 어머니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외로움에 무섭지는 않을까. 그토록 꿈꿨던 곳을 서성일까. 어떤 곳을 여행하고, 누구와 소통하고 있을까. 지난 세월 만났던 인연들은 기억하고 있을까. 아름답고 소중한 시간 속에서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우리 아이들을 돌볼 때가 가장 행복했다는 어머니, 지금쯤 그곳에 있을까.
누군가 인생을 소풍이라 했던가. 한순간에 가족이 되고, 주변인이 되고, 한 세상 사람으로 어우러진다. 짧게 혹은 길게 인연이 된다. 한 생을 살아내는 과정에서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다. 어머니와의 인연도 그렇다. 내게 주신 사랑은 가히 높고, 넓고, 크다.
어머니의 삶은 인생의 길잡이였다. 힘에 겨워도 가족을 위한 일이라면 손톱이 갈라지고 상처가 나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항상 정갈한 매무새를 잃지 않았다. 어머니에게는 사람들이 모여들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집안은 물론 마을의 대소사를 맡아서 갈무리를 잘하셨다.
지금쯤 어머니는 반환점을 돌아 처음 왔던 길에 다다른 것은 아닐까. 그래서 아기가 된 것일까. 꾀꾀한 얼굴로 하르르 심호흡한다. 몸은 자유롭지 않아도 정신은 자유로운 날개를 달지 않았을까. 생과 사의 잇닿은 경계를 향해, 그 끝을 향해 아주 천천히 걷고 있으리라.
딸아이는 아무런 반응이 없는 할머니에게 끊임없이 말을 건다. 손과 얼굴 그리고 환자복 밖으로 드러난 곳을 어루만진다. 손은 물론 볼과 입에 뽀뽀한다. 코딱지를 아무렇지 않게 손으로 꺼내고 거친 피부에 보습크림을 발라준다. 할머니에게 받았던 밥물림 사랑만큼이나 눈물겹다.
오늘은 어머니가 눈을 마주친다. 눈동자는 안개가 낀 것처럼 뿌연 막이 있다. 그 눈동자 안에서 어머니의 눈빛이 반짝인다. “어머니, 어머니!” 부르지만 메아리만 남는다. 반가운 마음에 한참을 들여다본다. 발씬 웃는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저 의미 없는 눈짓이었다 하더라도, 그렇게라도 조금 더 힘을 내주길 바라고 바란다.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어머니의 대문 밖 마중을 기대한다. 따뜻한 온기가 있는 어머니의 집에서 도란도란 행복한 꿈을 꾸고 싶다. 코촉상이어도 식구들 모여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면 좋겠다.
이슬빛 찬란한 새 아침의 햇살을 함께 맞이하길 고대한다.
서천의 사계
긴 겨울잠에서 깨어난 듯 땅풀림 머리가 되면 살아있는 만물은 봄으로의 기지개를 켠다. 생동하는 봄의 전령사를 따라 시나브로 계절의 출발선에 선다. 하품하듯 긴 호흡은 삶의 치열함 속으로 들어간다는 신호요, 지난 계절 잉태한 새 생명을 내놓을 알맞은 희망의 시기다. 잎을 떨어냈던 나무마다 움돋이를 내보내 생동생동 짙은 초록으로 이끈다.
서천의 사계는 아름다운 정원이요, 보금자리다. 신성리 갈대밭, 금강과 서해가 만나는 곳 금강하굿둑 철새도래지, 힐링하기 좋은 송림 해수욕장, 우리 전통 건축의 자연미를 볼 수 있는 문헌서원, 마량리 동백나무 숲과 해돋이, 해송이 아름다운 춘장대해수욕장, 우리나라 최초 성경 전래 지인 마량진….
서천은 서해의 중심이자 충남의 최남단에 있고, 우리나라 4대강 중 하나인 금강이 있다. 이곳은 철새들의 낙원이요, 바다와 만나는 아름다운 노을이 있다. 기름진 옥토와 서해가 조화를 이루는 곳으로 풍부한 먹을거리를 아낌없이 내준다.
서천은 성리학의 대가인 목은 이색과 독립운동가였던 월남 이상재 선생 등 역사와 문화가 살아있는 곳이다. 백제의 군사 요충지였던 기벌포 문화권은 천오백 년의 세월이 흘렀음에도 백제의 향기가 면면히 이어진다. 저산팔읍길쌈놀이는 백제 때부터 이어온 서천 지역 고유의 대표적 생활 문화로 방문객까지 누리는 전통문화이다.
서천은 계절의 변화가 뚜렷하다. 사계절 관광지요, 어깻바람이 이는 고향이다. 마을마다 울타리를 이루는 동산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사람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반가워 봉실거린다. 어머니의 후듯후듯한 품처럼 언제나 평화로운 곳이요, 마음껏 세상으로 내달릴 수 있는 배경이다.
잠깐 외곽으로 나가면 만나는 서해가 있다. 얕은 바다는 올똑볼똑한 개펄로 진득하다. 개펄을 터전으로 살아가는 생명체를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옹기종기 모여 햇볕을 쬐는가 하면 인기척에 놀라 순식간에 제집으로 숨바꼭질하듯 몸을 피한다. 밀물과 썰물의 조화로운 자연현상은 기다림을 알게 한다.
바다로 나가는 길은 계절에 상관없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이 있다. 한 계절을 살아가는 식물이 있는가 하면, 사계절 아니 수년 동안 계절의 순환 고리와 맞물려 우리와 함께 간다. 가로수는 어느 순간 갈맷빛으로 바뀌고 꽃잎을 맺는다. 꽃을 떨어낸 자리는 열매를 맺고, 잎사귀를 떨구면 동면의 시간으로 들어간다.
어느 계절이든 쪽빛의 멀리 있는 바다와 윤슬의 일렁거림도 좋다. 물꽃이 이는 파도를 보노라면 심연의 어두운 그림자를 지워내 헝그럽다. 숨 가쁜 외줄의 인생처럼 쉬어감의 배려를 만나는 곳이요, 뒤를 돌아보는 여유에 깊은 호흡을 한다. 먼눈팔 때도, 세파에 시달릴 때도 나직이 들려오는 파도 소리는 고요의 잠 속으로 이끈다.
숲으로 들어가면 계절과 관계없이 신선한 피톤치드가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한다. 빽빽한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살의 눈부심도 좋다. 그곳에 사람의 냄새, 바람의 냄새, 숲의 냄새가 어우러져 하나가 된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서천의 풍경은 정겹기 그지없다.
서천에서 나고, 자라고, 미래에도 아니 어쩌면 죽을 때까지 이곳에 살리라. 지천명을 지나면서도 소리 없이 스며든 ‘서천 사람’이라는 것이 좋다. 눈비음하지 않아도, 먼 길을 돌아와 쉼이 필요할 때 언제고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곳이다. 그런 서천의 사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까닭이다.
누구나 서천 사계의 정원을 누릴 자격이 충분하기에 한 계절이 지난다 해도 자연스러운 희망으로 기다리면 된다. 언제든지 따뜻한 마음이 고플 때 바람 쐬듯 발길 닿는 곳으로 나가면 된다. 그곳에서 가만히 들려주는 위로와 마음을 훈훈하게 하는 용기를 느끼면 되니까.
서천의 사계를 영원한 가치로 만나길 고대한다.
내 안의 뜰
내 고향 ‘진재’를 떠올리면 막연한 그리움에 먹먹하다. 가벼운 마음으로 나서기만 하면 되는 것을 발치에 두고도 쉬이 갈 수 없는 것은 왜일까. 삶의 톱니바퀴를 벗어나면 큰일이라도 나는 것처럼 두려워한 까닭일까.
오래된 고향 집 나무 마루에 앉았다. 허름한 담장을 넘어온 새뜻한 바람이 뺨을 두드린다. 강산이 세 번은 바뀌었음에도 따뜻하고 평화로움은 온새미로 한결같다. 알 수 없는 향기, 무한한 벅찬 기운이 가슴 속에서 꿈틀거리니 더아니 기쁜가.
낮은 담장 주변에는 겨우내 움츠렸던 파릇한 싹들이 생동생동 기지개를 켜기라도 하듯 앞다투어 연한 연둣빛 속살을 드러낸다. 풀포기 하나하나 신비롭다. 나무의 새싹도 어서 오라고 손짓하는 것 같아 기분은 좋아진다.
오래된 집은 등이 굽듯 기운다. 흙으로 된 벽은 금이 가고 구멍이 뚫렸다. 커튼을 드리우듯 거미줄이 한껏 바람에 한들거린다. 오랫동안 주인의 부재에 쓸쓸함이 배었나 보다. 임시방편으로 흙을 빚어 메운 자리가 그나마 흔적으로 남았다.
덩그러니 남아 있는 들창문은 어머니 같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를 기다리던 어머니가 사무치게 보고 싶고 그리움에 눈물겹다. 방문마다 나무 창살에 한지를 곱게 바른 여닫이문은 금방이라도 열릴 것 같다. 가만한 미소를 지으시던 어머니는 내 안의 뜰에, 고향 집을 지키고 있었나 보다. 흐리마리한 기억들이 선명해진다.
오빠 내외는 주말에 들러 집안닦달은 물론 푸서리가 된 밭을 일군다. 사람이 살지 않아 손품과 발품이 여간 많이 드는 것이 아니다. 뒤란의 울타리를 이루는 신우대밭을 정리하는 것도 매우 어려운 작업이다. 집 주변을 이루는 텃밭은 잡풀이 경쟁이라도 하듯 키 재기 한다. 쓰렁쓰렁 일했다고는 하나 여무지고 빈틈이 없이 깔끔하다.
우리는 산림조합에서 매년 주는 나무교환권으로 이번에는 ‘왕대추’ 나무를 골랐다. 그동안 딱히 나무 심을 곳이 없어 고향 집 주변 텃밭 빈자리에 심었다. 심을 때의 설렘과 열매를 기대하면 벌써부터 풍요로워진다. 돌아보니 여백을 채우듯 제법 여러 종의 오금드리 나무가 거기에 있다.
오빠 내외가 고향 집에 오는 날을 골라 한달음에 달려갔다. 망중한을 틈타 갔을 때, 부모님이 그랬던 것처럼 두 팔 벌려 우리를 맞는다. 작업복, 모자, 장갑, 장화를 신은 모습에서 한참은 일하고 난 후라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우리는 텃밭으로 향했다. 가져온 ‘왕대추’ 나무를 볕이 잘 드는 최적의 장소에 심었다. 풋머리가 되려면 서너 해는 기다려야 한다. 해마다 정성껏 거름을 주노라면 탐스러운 대추가 열릴 것으로 기대한다. 지난해 심었던 나무가 터줏대감이라도 되는 양 제법 늠름하게 가지를 뻗었다. 주인의 정성에 화답이라도 하는지 밭에는 냉이, 파, 도라지, 더덕, 돼지감자가 지천이다.
남편과 나는 돼지감자를 캤다. 얼마나 알이 실하고 많던지 짧은 고랑에서 노다지가 나오듯 끝이 없다. 깨끗하게 손질한 돼지감자를 안아 들고 부자가 되었다. 혼자 먹기는 많아서 좋은 사람들과 나누기로 했다. 오빠 내외는 도라지와 더덕을 한 보따리 챙겨 준다.
큰올케는 깨끗하게 정돈된 마루인데도 수건으로 시부적시부적 닦고는 앉기를 권했다. 고즈넉한 분위기와 어우러져 커피 향은 더욱 진하게 다가왔다. 옛 추억의 끈을 이어 묶었다. 고향 뜰의 변화와 주변 사람들의 소식을 들음들음 들어도 반가우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한소끔 땀을 흘리고 난 후의 휴식은 내 안의 뜰만큼 고요하다. 마루에서 내다뵈는 동네 풍경이 한가롭다. 담 너머 보이는 빈집의 대나무 울타리는 경계를 잃었나 보다. 굴뚝에서는 연기가 파란 하늘에 몽게뭉게 그림을 그리듯 정겹다. 미완의 수채화처럼 봄이 이제 막 출발선에서 도움닫기 한다.
빗장 걸린 나무 대문을 열고 나가면 새로운 세상으로의 통로였다. 마당 가 감나무 사이 원두막에 오르면 마음은 언제나 평안하다. 저 멀리 들녘을 지나오는 바람에도, 비가 내리면 초가지붕을 타고 내려오는 물방울에도 싱그러움이 있다. 꿈에서조차 마음만은 고비샅샅 그곳을 누빈다.
내 안의 뜰에 고향의 소소한 일상을 채운다. 언제든 웅숭깊은 품으로 맞아 주는 어머니의 품이요, 내 삶의 보루다. 생각만 하여도 무한한 평안과 위로를 받는 곳이다. 생이 끝나는 날까지 아니 그 이후로도 그 뜰을 서성이리라. 눈물겹도록 그리운 내 뜰에 사랑의 나무를 심듯 정성을 다해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