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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68552005
· 쪽수 : 304쪽
· 출판일 : 2023-11-30
목차
추천사
영원히 기억될 남산의 언어운사 - 이규항(전 KBS 아나운서실장, 야구·민속씨름 전문 캐스터) 4
기억력과 기록의 차이를 보여 주는 책 - 이계진([사]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6
작가의 말 - 나의 비망록을 열며 8
인동의 세월 18
육군 소위에서 아나운서로 20
설렘의 상경길 25
“그게 이렇게 된 거야” 29
아나운서의 우상, 장기범 大 아나운서 36
육영수 여사와 아나운서실 40
고달픈 막내들 43
새벽 5시 뉴스 사고치다 46
신변에 위협을 받고 49
이광재 아나운서 54
군용기 타고 제주 여행 59
뜻밖에 터진 “파발마 사건” 62
물러가는 카리스마 68
보스, 외롭게 지다 71
가난 속에도 여유와 낭만은 있었다 73
“넌, 마! 왜 여태 안 자!?” 78
하늘도 노하고, 땅도 노하고 82
하천기와 무답회의 권수 87
새벽 5시의 방송 종료멘트 92
철가방, 스튜디오 침입 사건 94
심야에 찾아온 손님 96
중앙국장과 중앙극장의 차이 99
뉴스 원고 실종사건 104
명패名牌와 TV뉴스 106
오후의 로타리와 배호 108
국군의 날 행사와 나 116
KBS, 공영 방송으로 전환과 여의도 시대의 개막 121
방송사 통폐합 126
국기강하식과 영화 ‘국제시장’ 128
아나운서실에도 족보가 있다 132
아나운서들의 맏형, 이규항 아나운서 139
나는 청취율 100%의 진행자 141
미소의 전도사들 144
아나운서실의 삐에로 151
‘당황과 황당’, ‘용기와 오기’ 157
삐에로를 덮친 불운 162
아! 육 여사 노을에 지다 166
5·16 현장의 박종세 아나운서 173
아웅산의 나팔 소리 178
배구 중계방송 에피소드 187
가상상황과 실제상황 193
현장 중계 캐스터의 굴욕 195
김일성 사망과 정오 뉴스 특종 200
후배들의 축하 속에 마지막 정오 뉴스 203
방송의 고향, 라디오 사랑 207
눈물이냐 눈물이냐 212
우리말, ‘너무’로 통하다 219
전원의 향기 ― 人生 제2막을 열다
전원의 향기 224
전원과 도시의 2중 생활 228
흙에 살리라 230
못 배운 자식이 효자다? 234
CQ! CQ DX! 세계의 HAM을 부르다 237
잡초와의 전쟁 242
우리 주변에 사는 것은 모두 우리 친구다 244
말벌과 꿀벌 이야기 246
진객들의 방문 250
젊은 과학도 부부의 낙향 254
어느 노부부의 귀거래사 259
0.4g 한 알의 약이 생명을 구하다 263
신앙심의 위력 266
우리 집 귀염둥이 ‘나미’를 떠나보내고 272
펜션 유감 276
다시 도시 생활로 돌아가면서 279
아파트 적응하기 281
지옥과 천국을 오간 날 287
산을 오르며 292
50년 만에 일의 멍에를 벗어던지다 297
이야기를 끝내며 302
저자소개
책속에서
인동忍冬의 세월
내 나이 이제 80대 중반에 들어섰다.
우리 나이의 세대는 태어나면서부터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며 힘겹게 살아 여기까지 왔다. 일제의 식민통치와 제2차 세계대전의 막바지에서 태어나 겨우 걸음마를 익힐 나이인 1945년에 조국의 광복을 맞았고 코흘리개로 국민학교초등학교에 들어가 학교 공부가 무언지 겨우 알아갈 즈음인 1950년 북녘의 김일성이 쳐 내려와 수백만 명이 죽고 죽이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며 어린 가슴에 지울 수 없는 상처가 생겼다.
전쟁으로 잿더미가 돼버린 교정 한 귀퉁이에 천막을 치고 칠판도 없는 교실에서 중학생이 된 우리는 불안한 휴전 상황과 전화복구戰禍復舊의 어려움 속에서 겨우 고등학교를 마치고 대학엘 진학했으나 우리에게는 시련이 그칠 새가 없었다.
(중략)
국민소득 4만 달러, 총 수출액 6,500억 달러, 무역 2조 달러에 이르러 경제 규모가 200배로 성장한 것은 온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고 경제건설에 매진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당시 농업인구 80%로 가난한 농촌의 처녀, 총각들은 앞다투어 도시의 공장들로, 젊은이들은 광부와 간호사들로 서독에 파견되는 등 국민 한 사람이라도 더 외화를 벌어들이기에 있는 힘을 다했다.
이렇듯 국민 모두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경이적인 경제발전과 한강의 기적이 이루어지기까지는 온갖 시련과 고난을 헤치고 인동초忍冬草처럼 살아온 우리 세대가 주역을 담당했음에 뿌듯한 긍지를 느낀다.
가난 속에도 여유와 낭만은 있었다
6, 70년대 아나운서실에는 이광재 실장과 몇몇을 빼고는 대부분의 남자 아나운서들이 담배를 피웠다. 호주머니가 가난해 담배를 사 피울 능력이 없으면서도 끊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얻어 피는 선배들도 많았다. 저녁 근무를 하러 출근할 때 청자 한 갑을 사 넣고 들어오면 낮 근무를 마친 교대조원交代組員들이 반색을 하며 달려든다. 내가 반가워서가 아니라 담배가 떨어져 한 대 얻어 피우려고 다가오는 사람들이다.
20개비 한 갑에서 4~5개비를 빼주고 나면 담뱃갑이 금방 홀쭉해진다. 그러니 문제는 이다음부터다. 밤 근무 중 일찌감치 담배가 떨어졌거나 아예 담배를 사지 않고 남에게서 얻어 피우는 선배들에게 주고 나면 정작 내가 피울 담배가 없다. 새벽 5시 뉴스를 하고 나면 담배 생각이 간절한데 담배가 없다.
담배가 떨어지면 피우고 싶은 욕구는 더 강력해진다. 참다못한 나는 재떨이에 피우다 만 꽁초들을 골라 불을 붙인다. 낮 근무조가 들어오기까지는 서너 시간을 있어야 하니 그때까지는 어쩔 수 없이 재떨이를 뒤져야 한다.
이윽고 낮 근무조가 들어오면 우리가 어제저녁 그랬던 것처럼 야근조의 담배수탈(?)이 시작된다. 결국 피장파장이요 장군멍군이다.
지금 돌이켜 보면 통 이해할 수가 없다. 목소리가 생명이라며 날계란을 보약처럼 여기던 아나운서들이 담배는 최대의 적이란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많이 피워댔는지.
KBS, 공영 방송으로 전환과 여의도 시대의 개막
1957년 정동으로부터 옮겨 온 남산연주소는 기구가 확장되고 방송시설의 증설 등에 따라 협소해지면서 20년의 남산시대를 마감하고 1976년 12월 1일 여의도 종합청사를 준공함으로써 여의도시대를 열게 됐다.
KBS는 이날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 테이프를 끊고 우리나라 방송사의 큰 획을 그으며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뎠다.
(중략)
1927년 2월 16일, 방송이 시작되던 날부터 아나운서는 청취자들의 가장 사랑받는 친구였다. 농촌인구가 전 국민의 70%였던 그 시절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뉴스가 유일한 소식통이었다.
그나마 농어촌에서는 라디오를 가진 집이 한 마을에서 몇 집 되지 않았고 대부분이 벽에 매달린 유선방송 스피커 통에서 울려 나오는 방송을 듣는 것이 유일한 즐거움이었다.
그 시절 국민들은 방송국에는 아나운서들만 있는 줄 알 정도로 아나운서들의 역할이 컸던 것이다. 그런 만큼 아나운서들은 지금은 상상하기 어려운 친근한 존재였다.
장기범, 임택근, 최계환, 전영우, 박종세, 강영숙, 이광재 아나운서는 남녀노소, 도시농촌 할 것 없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그러다가 텔레비전 방송이 등장하고 민영방송들이 속속 생겨나면서 우리 방송에도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목소리의 주인공’으로만 청취자들에게 다가갔던 아나운서들의 얼굴이 TV 화면에 공개되면서 신비감도 걷히기 시작했다. 이와 동시에 KBS에서 명성을 날리던 아나운서들이 새로 개국한 문화방송MBC, 동아방송, 라디오서울TBC의 전신 등 각 방송사의 얼굴이 되면서 방송국 간의 불꽃 튀는 경쟁과 함께 라디오 전성시대인 60년대를 마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