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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68611528
· 쪽수 : 260쪽
· 출판일 : 2023-07-07
책 소개
목차
1부
나, 수자
새 학기
정순이
유경이
점방집 언니
유경의 비밀
여름방학
2학기
그녀, 문승희
2부
우리 집 식구
봄방학
2학년
수이언니
정순의 결혼
again, 유경
again, 나
에필로그
작가의 말
저자소개
책속에서
중학교에 갈 준비를 하면서 겨울 동안 집에서 놀기만 하는데도 나는, 나 자신이 부쩍 크는 것이 실감 났다. 동시에 나의 삶이 조금 뻔뻔해지고 교활해지는 것을 느꼈다. 갑자기 커버려서 어른만이 가지는 프레임 안의 비밀에 쑥 들어선 것 같았다. 어른의 대열에 진입하는 느낌은 모호하면서 비현실 같지만 실은 어떤 종류의 쾌감이었다.
겨우 한두 살 많을 뿐인 2학년이나 3학년 선배들은 점심 도시락을 재빨리 해치우고(대개 2교시 쉬는 시간부터 도시락은 비워졌다) 1학년 교실을 돌아다니며 S동생 찾기에 열을 올렸다. 이른바 S언니 시대였다. 관례처럼 선배들이 ‘S언니 S동생’을 만들던 땐데, 그때만 해도 아직 유행이었다. S언니 S동생을 만들어 도시의 고등학교에 진학하면 몰라도 우리 학교와 붙어 있는 여고에 진학하면 계속 언니 동생으로 남아 친자매 같은 우정을 지속해 나갔다.
선배들은 얼굴이 희고 애리애리하고 예쁘장하고 교복을 깔끔하게 입는 애를 골라 “S동생 할래?” 먼저 구애했다. 1학년 애들은 선배가 맘에 드는지 안 드는지 판단할 새도 없이 찍히면 S동생이 되어야 했다. S자매가 된 다음엔 색색깔의 편지지에 편지를 써서 주고받았다. 이름이 촌스럽다며 미현, 애리, 미리, 수정 같은 예명을 쓰고 편지로만 예명을 불렀다. 편지에서만 예명을 쓰는 건 부끄러움을 타서였다.
“사모님, 여자가 애 안 낳고 죽었으니 처자가 가서 대를 이으면 몹시 좋아할 것이요. 논도 몇 마지기는 되지요. 일 년에 반은 쌀밥 먹는 집 흔치 않잖아요.”
나는 이 대목에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른들이 쑥덕이면서 들먹이던 단어가 떠올랐다. 재취, 맞다. 정순을 재취로 보내려는 것이다. 오 마이 갓, 나는 속으로 고함을 질렀다. 그러면 재취 자리인 걸 엄마도 알고 있단 말인가? 건성으로 읽고 있던 책은 이미 안 본 지 오래다. 나는 책을 탁 덮고 일어났다.
정순은 텃밭에서 오이와 가지를 딴 소쿠리를 들고 나오고 있었다. 정순은 열아홉 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