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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7413066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16-11-01
책 소개
목차
풍선을 불어봐
실비아와 소윤
명랑한 인생
밤의 놀이터
● 해설 | 건조한 현실과 뜨거운 낭만, 그 사이/ 오홍진
● 작가의 말 | 두려워하면서 기대하는 두 삶의 기록
저자소개
책속에서
강이 병실 문을 밀고 들어오자 나는 쌀쌀맞게 말했다.
“그만 와요.”
부담스럽다는 뒷말은 막상 보니 안 나왔다.
“좀 특별한 사업인데 어떠실는지…….”
내 말은 듣는지 마는지 강은 자기 할 말만 한다. 뭔 사업씩이나, 나는 속으로 중얼거리며 하품 묻은 얼굴을 하고 반쯤 누워 있다. 강은 누워 있는 내 앞에서 바지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훕하고 숨을 들이키며 불기 시작했다. 주황색 풍선이었다. 나는 그가 하모니카 정도를 꺼내들고 불 줄 알았다. 강은 훕훕 하며 풍선을 불기 시작했다. 풍선은 급격히 커져갔다. 그는 빵 하고 커다래진 풍선을 내게 내밀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링거 꽂은 손으로 풍선을 가볍게 튕겨주었다. 풍선이 이리저리 날리더니 천장에 가 딱 붙은 듯이 멈췄다. 강이 두 번째 풍선을 불어 또 내 앞으로 내밀었다. 이번에는 하늘색이었다. 나는 아까와 똑같이 풍선을 가볍게 튕겼다. 풍선은 지그재그로 원을 그리며 포르르 날아갔다. 그리고 세 번째 네 번째……. 좁은 병실 안에 빨갛고 파랗고 노란 색색의 풍선이 두둥실 떠다니고 나는 마치 아기 시절로 돌아간 듯 도취해서 눈을 커다랗게 뜨고 실내를 둘러보았다. 나는 그가 부는 풍선처럼 천장까지 붕 떠오를 것만 같았다. 나는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나는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웃으며 손뼉을 쳤다. 오버한 내 모습에 강도 놀란 표정이었다. 나는 뻘쭘해졌다. 강이 나를 따라 엉거주춤 웃었다. 강의 표정은 딱 이렇게 보였다. 날 보고 웃어주다니, 믿기지 않아요. 강이 수줍은 듯 고개를 숙였다. 입꼬리가 살짝 말아올라간 미소를 띠고서. 나는 강이 수줍어하는 것을 처음 보았다.
병실에는 강과 나만이 있었다. 미묘한 침묵이 길어지고 있었다. 이 어색함은 뭐지. 무난한 대화가 뭐가 있을까.
‘강, 멋져요. 내일도 와서 불어줄래요? 풍선은 마음을 환하게 하네요.’
나는 감동을 숨긴 채 말하기가 몹시 거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지금 이 말을 꼭 해야 되겠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다는 걸 배웠고 때를 놓치면 기회는 안 올 거니까. 내 입에서 나온 말은 나 자신도 예측불허였다.
“무슨 애들도 아니고……. 웬 풍선이래요.”
강이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대답했다.
“왜요. 이거 재미없어요? 아주 싸요. 한 봉지에 삼천 원밖에 안 하는데…….”
하며 강은 또 수줍은 듯 웃었다.
이 좁은 공간에 우린 둘뿐이었다. 간호사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 「풍선을 불어봐」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