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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아시아사 > 중앙아시아사
· ISBN : 9791169811453
· 쪽수 : 424쪽
· 출판일 : 2023-07-21
책 소개
목차
책머리에
일러두기
서론
1. 무대: 고비 남북의 몽골 초원과 장성 이남의 목농복합구역(잡거지), 그리고 톈산 주변 오아시스와 초원
2. 자료: 한문 자료와 발굴 자료의 간극 극복
3. 내용: 400년 넘게 이어진 몽골 초원의 첫 유목제국 역사 복원
제1편 진상과 전사: 『사기』 「흉노열전」 속의 흉노
제1장 사마천이 그린 기마 유목민, 흉노의 ‘진상’
1. 사마천의 「흉노열전」 저술 구상
2. 사마천이 그린 흉노의 선조와 유목 습속
3. 선조와 유목에 대한 기록의 재구성과 사마천의 흉노 이해
제2장 사마천의 흉노 ‘건국 전사’ 구성: 융적, 융, 호, 그리고 흉노의 출현
1. 도시 주변의 ‘비농경민’ 융적과 중국의 공존
2. 계곡에 사는 다양한 목축민 융과 중국의 만남
3. 유목 기마궁사 호와 중국의 충돌, 그리고 장성
4. 흉노의 출현과 대결의 심화: 흉노사의 시작
제2편 건국과 발전(기원전 209~기원전 141)
제1장 묵특의 국가 건설과 지향: 선우에서 대선우로(기원전 209~기원전 174)
1. 묵특의 집권과 호와 융의 통합 노력
2. 기마 유목민 ‘인궁지민’ 중심의 체제 정비
3. 통일 중국 한과의 화친과 반한 세력의 포섭
4. 서방 진출과 기마 유목민 중심의 유목제국 ‘인궁지국’의 성립
제2장 대선우 중심의 체제 정비와 한과의 관계(기원전 174~기원전 141)
1. 노상 대선우의 위상 강화와 한인 관료의 협력
2. 군신 대선우의 압박과 한의 화친 고수
제3편 대결과 위축(기원전 141~기원전 56)
제1장 흉노와 한의 전면전과 막북 이주(기원전 141~기원전 119)
1. 군신 대선우의 공세와 무제의 북벌
2. 대결 격화와 이치사 대선우의 막북 이주
제2장 한의 공세 강화와 막북에 위축된 흉노(기원전 119~기원전 56)
1. 흉노의 위축과 지역 국가화
2. 전면전 재개와 흉노의 고립 타개 노력
3. 종전 이후 흉노의 화친 요구와 공방전 재개
4. 선제의 북벌 이후 흉노의 위축 심화와 계승 분쟁
제4편 고립과 반격(기원전 56~48)
제1장 흉노의 고립과 막북 중심 국가의 형성(기원전 56~기원전 8)
1. 호한야의 남하와 질지골도후의 서천 실패
2. 막북 초원 중심의 체제 정비와 한과의 공존
제2장 한에 대한 흉노의 반격과 그 한계(기원전 8~48)
1. 흉노의 고립 심화와 한과의 갈등 폭발
2. 신한 교체기 흉노의 확장 노력과 실패
제5편 분열과 해체(48~216)
제1장 흉노의 남북 분열과 대결(48~91)
1. 계승 분쟁의 재현과 남북 경쟁
2. 흉노의 남북 대결 심화와 북흉노의 소멸
제2장 남흉노의 약화와 해체(91~216)
1. 한의 통제 강화와 남흉노의 분열
2. 대선우 권위의 약화와 흉노의 군소 세력화
맺음말 - 고대 유목제국의 원상과 그 후계
1. 흉노 유목제국의 성격과 그 유산
2. 흉노의 후계, 내지로 침투한 병주 흉노(216~310)
부록
1. 흉노 유목제국 대선우의 계승과 분열
2. 흉노 유목제국 대선우의 계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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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유목에 관한 사마천의 정확한 이해와 후대의 잘못된 인용
사마천은 (…) 유목민들이 고정된 주거는 없으나 목초지만큼은 정해진 범위를 ‘맴돌며’ 옮겨 다닌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했다. (…) ‘맴돌며’ 옮겨 다닌다고 한 사마천의 표현이 전혀 주목받지 못한 결과 『사기』를 모범으로 삼아 서술된 후대의 「북적전」에서도 유목에 대한 설명만큼은 달라졌다. 반고에서 시작된 ‘붙박이로 머무는 곳 없이 옮겨 다닌다’라는 표현이 점차 굳어져 정사 「북적전」에서 유목을 설명하는 ‘원형prototype’이 되었다. 때로는 유목민을 비하하는 내용이 더해지기도 했다. ‘유목=이동’, ‘북방 주민=유목민’이라는 단순한 도식이 깊숙이 자리 잡았고, 후대에도 「북적전」의 내용이 계속 인용되면서 유목에 관한 전형적인 표현으로 쓰이게 되었다. 후대의 사가들은 자신이 사마천의 표현을 그대로 이어받았다고 착각했다. 사마천도 유목민을 정처 없이 떠돌면서 가축을 키우며 사는 존재로 설명했다고 견강부회하는 이들도 있었다. 연구자들 역시 최근까지도 이를 교정하지도, 비판하지도 않고 습관적으로 사용한 결과 『사기』 「흉노열전」 모두의 내용을 전혀 다르게 이해했다. 유목의 특징을 사실에 가깝게 기록한 사마천의 이해가 오히려 후대에 관념적인 이해로 퇴보한 것을 고민 없이 반복 인용한 탓이었다.
전국시대, 기마궁사 호胡의 등장
전국시대에 중국 북변의 국가가 북쪽에서 맞닥뜨린 존재는 초원에 살던 호였다. 이와 관련해 조의 발전에 큰 역할을 했던 무령왕武靈王은 풍속을 과감히 바꾸는 정책을 추진했다. 즉 “[중국에서 입지 않는 다른 족속의] 바지를 입고 말을 타며 활 쏘는 것(호복기사胡服騎射)”과 같은 신기술을 수용했다. 무령왕은 이를 통해 북쪽의 임호와 누번을 격파한 다음 장성을 쌓는 등 큰 성과를 거두었다. 사육한 말을 타고 활을 쏘는 호의 탁월한 군사적 능력을 무령왕이 수용했다는 『사기』의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기마궁사’는 호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었다. 전국시대 이후 기록에 나타난 호는 모두 ‘기마와 궁술에 특화된 유목민’을 지칭했다. 사마천은 그들을 ‘활을 당기는 사람(引弓之民)’이라 했다. 그만큼 ‘기사騎射’는 곧 호를 설명하는 표현이었다. 한편 호는 초원에서 계절에 따라 순환 이동을 하며 주로 말과 소, 양을 사육하는 전문화된 목축, 즉 유목을 했다는 점에서도 융과 달랐다.
묵특 선우의 건국
진이 무너지면서 장성과 직도의 건설, 요새와 둔전의 설치 등이 중단된 것은 흉노 입장에서는 절호의 기회였다. 묵특 선우는 치밀한 준비 끝에 아버지를 죽이고 권력을 장악한 다음 주변으로 확장해나갔다. 즉위 이후 10여 년에 걸쳐 중국의 간섭 없이, 느슨한 연합 형태가 아닌 자신의 강력한 통제하에서 ‘호와 융을 통합한 새로운 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새로운 국가를 건설한 이후에는 비록 초보적이기는 하나 ‘분봉’으로 나뉜 각각의 영역을 하나로 묶는 다양한 통치 행위를 통해 자신을 중심으로 체제를 정비했다. (…) 건국에 성공한 묵특 선우는 세력을 확장하고 더 발전하기 위해 진한 교체기 중국에서 이탈한 주민이나 통일 과정에서 한에 저항한 세력을 포섭했다. (…) 이런 움직임에 부응하여 확장을 멈추지 않았고 거대한 통합 체제, 즉 ‘유목제국’으로의 발전을 도모했다. 이는 단지 호와 융만이 아니라 다양한 집단을 하나로 통합하는 일이었다. 묵특 선우는 막 통일된 중국에 공세를 가해 자신의 입지를 인정받으며 새로운 ‘대안 세력’이 되고자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