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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원 (지은이), 박지훈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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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제목 : 열하일기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조선사 > 조선후기(영조~순종)
· ISBN : 9791170291312
· 쪽수 : 352쪽
· 출판일 : 2016-04-08

책 소개

월드클래식 9권. 우리나라 기행문학의 백미로 일컬어지는 <열하일기>는 1780년 박지원이 청나라 고종인 건륭제의 칠순연을 축하하기 위한 사신으로 가는 삼종형 박명원을 수행하여 중국 연경을 거쳐 청나라 황제의 피서지인 열하까지 여행한 기록이다.

목차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심양의 이모저모 _ 성경잡지盛京雜識
산해관에서 북경까지의 이야기 _ 관내정사關內程史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태학관에 머물며 _ 태학유관록太學留館錄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작품 해설
작가 연보

저자소개

박지원 (지은이)    정보 더보기
조선 후기의 탁월한 문장가이자 실학자다. 박사유(朴師愈)와 함평(咸平) 이씨(李氏) 사이에서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16세에 처사 이보천(李輔天)의 딸과 결혼했다. 장인에게는 《맹자》를, 처삼촌 이양천(李亮天)에게는 《사기(史記)》를 배워 본격적인 학문을 시작했다. 처남인 이재성(李在誠)과는 평생의 문우(文友) 관계를 이어 갔다. 청년 시절엔 세상의 염량세태에 실망해 불면증과 우울증으로 고생했으며 이러한 성장 배경을 바탕으로 진실한 인간형에 대해 모색한 전(傳) 아홉 편을 지어 《방경각외전(放?閣外傳)》이라는 이름으로 편찬했다. 영조 47년(1771) 마침내 과거를 보지 않기로 결심하고 서울 전의감동(典醫監洞)에 은거하면서 홍대용, 이덕무, 박제가, 유득공을 비롯한 많은 젊은 지식인들과 더불어 학문과 우정의 세계를 펼쳐 갔다. 정조 2년(1778) 홍국영이 세도를 잡고 벽파를 박해하자 생명에 위협을 느끼고 황해도 금천군(金川郡)에 있는 연암협(燕巖峽)으로 피신해 은둔 생활을 했다. 연암이라는 호는 이 골짝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정조 4년(1780)에 삼종형(三從兄)인 박명원(朴明源)의 연행(燕行) 권유를 받고 정사의 반당 자격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이때 건륭 황제가 열하에서 고희연을 치르는 바람에 조선 사신 역사상 처음으로 열하에 가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연행을 통해 깨달음을 확대한 연암은 여행의 경험을 수년간 정리해 《열하일기》를 저술했다. 정조 10년(1786) 유언호의 천거로 음사(蔭仕)인 선공감(繕工監) 감역(監役)에 임명되었다. 정조 13년(1789)에는 평시서주부(平市署主簿)와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를 역임했고, 정조 15년(1791)에는 한성부 판관을 지냈다. 그해 12월 안의현감에 임명되어 다음 해부터 임지에서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이때 정조 임금이 문체를 타락시킨 장본인으로 《열하일기》를 쓴 연암을 지목하고는 남공철을 통해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 명령했으나 실제로 응하지는 않았다. 정조 21년(1797) 61세에 면천군수로 임명되었다. 이 시절에 정조 임금에게 《과농소초(課農小抄)》를 지어 바쳐 칭송을 들었다. 1800년 양양부사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벼슬에서 물러났다. 순조 5년(1805) 10월 20일 서울 가회방(嘉會坊)의 재동(齋洞) 자택에서 깨끗하게 목욕시켜 달라는 유언만 남긴 채 세상을 떠났다. 선영이 있는 장단(長湍)의 대세현(大世峴)에 장사 지냈다. 박지원의 문학 정신은 ‘법고창신(法古創新)’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옛것을 본받되 변화를 알고 새롭게 지어내되 법도를 지키라”는 의미다. 그는 문학의 참된 정신은 변화의 정신을 바탕으로 창조적인 글을 쓰는 데 있다고 생각했다. 비슷하게 되려는 것은 참이 아니며, ‘닮았다’고 하는 말 속엔 이미 가짜가 들어 있다는 것이다. 연암은 억지로 점잖은 척 고상한 글을 써서는 안 되며 오직 진실한 마음으로 대상을 참되게 그려 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하여 그는 틀에 박힌 표현이나 관습적인 문체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독특한 문체를 지향했다. 나아가 옛날 저곳이 아닌 지금 여기를 이야기하고자 했다. 중국이 아닌 조선을, 과거가 아닌 현재를 이야기할 때 진정한 문학 정신을 구현할 수 있다고 믿었다. 연암의 학문적 성취와 사상은 《열하일기》에 집대성되어 있다. 《열하일기》에서 연암은 이용후생의 정신을 기반으로 청나라의 선진적 문물을 받아들여 낙후된 조선의 현실을 타개하자는 주장을 펼침으로써 북학파를 대표하는 학자로 우뚝 서게 되었다. 연암은 《열하일기》 외에도 《방경각외전》, 《과농소초》, 《한민명전의(限民名田議)》 등을 직접 편찬했다. 연암의 유고는 그의 아들 박종채에 의해서 정리되었는데 아들이 쓴 〈과정록추기〉에 의하면 연암의 유고는 문고 16권, 《열하일기》 24권, 《과농소초》 15권 등 총 55권으로 정리되었다. 《열하일기》는 오늘날 완질은 26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연암의 작품은 대부분이 문(文)이며 시(詩)는 50여 편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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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이용이 있은 연후에야 후생厚生이 될 것이요, 후생이 된 연후에야 정덕正德이 될 것이다. 대체 이용이 되지 않고서는 후생할 수 있는 이는 드물 것이니, 생활이 이미 제각기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찌 그 마음을 바로 지닐 수 있으리오.
-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중에서

이따금 꼬리와 털을 모조리 뽑고 양쪽 겨드랑 밑의 털까지도 뜯어내어 고깃덩어리만 남아 있는 닭이 절름거리며 다닌다. 이것은 빨리 키우기 위한 하나의 방법이요, 또한 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한 것이다. 여름에는 닭에 검은 이가 생겨 꼬리와 날개에 붙게 되면 반드시 콧병이 생기고, 주둥이로는 누런 물을 토해 내고 목에서는 가래 끓는 소리가 난다. 이런 증상을 계역鷄疫이라고 하는데 꼬리와 털을 미리 뽑아서 시원한 기운을 통해 준다고 한다. 꼴이 하도 흉해서 차마 눈을 뜨고 볼 수가 없다.
-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중에서

내 오늘에야 처음으로 인생이란 원래 아무것도 의탁할 것이 없이 다만 머리에는 하늘을 이고 발로는 땅을 밟은 채 떠돌아다니는 존재인 줄 깨달았다. 말을 세우고 사방을 돌아보다가 나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손을 들어 이마에다 얹고 말했다.
“아, 참 좋은 울음터로다. 정말 한 번 울 만하도다.”
- <압록강을 건너며 _ 도강록渡江錄> 중에서

비록 추녀가 몇 자가 넘는 화려한 고대광실에 석 자를 괸 큰 상을 받고 예쁜 계집 수백 명이 모시고 있는 즐거움이나,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아니한 구들목에 높지도 낮지도 않은 베개를 베고, 두껍지도 얇지도 않은 이불을 덮고, 깊지도 얕지도 않은 술잔을 받으면서, 장주도 호접도 아닌 꿈나라로 노니는 그 재미와는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
-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중에서

“소경을 볼 수 있는 자는 눈 있는 사람이라 소경을 보고 스스로 그 마음에 위태로이 여기는 것이지, 결코 소경이 위태로운 줄 아는 것이 아닙니다. 소경의 눈에는 어떠한 위태로움도 보이지 않는데 무엇이 위태롭단 말이오.”
- <북경에서 북으로 열하를 향해 _ 막북행정록漠北行程錄> 중에서

오미자 두어 알은 사실 한 개의 지푸라기와 같은 물건이지만 저 불경스런 중이 내게 버릇없는 소행을 보인 것은 실로 횡역橫逆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라 하겠다. 그것 때문에 싸움이 시작되었고 주먹다짐이 벌어졌을 뿐더러, 그들이 싸우는 동안은 분한 마음을 억제하지 못하고 저희들의 생사조차 생각하지 않을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니 이러한 경우를 보면 한낱 오미자 한두 알에 불과한 것이 커다란 재화를 초래했던 만큼, 아무리 작고 가벼운 물건이라 해도 결코 아무렇게 보아 넘겨서는 안 되는 것이리라.
-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중에서

아아, 슬픈 일이로다. 세상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되는구나. 그리고 천세가 당당한 곳에 사람들은 흥미를 보이지만 세상은 잠깐 사이에 변해 버리고 마니 어디에다 호소를 하겠는가. 이는 마치 진흙에 빠진 소가 바다로 떠내려가듯이, 또는 큰 빙산이 햇볕을 만나 녹아내리듯이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이와 다름없으니 어찌 슬프지 않겠는가.
- <북경으로 되돌아가는 이야기 _ 환연도중록還燕道中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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