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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예술/대중문화 > 사진 > 사진집
· ISBN : 9791170370666
· 쪽수 : 128쪽
· 출판일 : 2024-12-18
책 소개
시각적으로 발굴하는 시선
제주도에서 태어나 자란 박형근은 유년 시절에 동네 주변의 여러 동굴에서 친구들과 뛰어놀았다. 그 동굴 중에 어떤 곳은 일제강점기 시절에 일본군의 군사시설로 사용되었고, 또 어떤 곳에는 제주 4.3 사건 때 주민들이 숨어 지내다가 학살당했던 사연이 깃들어 있었다. 나중에 커서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그는 관광객이 북적이는 제주의 관광지마다 한국의 비극적인 근현대사가 숨겨져 있다는 걸 깨닫게 된다. 이후부터 박형근은 관광지화되거나 재개발된 제주의 현재 풍경 속에 숨겨진 역사의 지층을 시각적으로 발굴하는 작업을 지속해 왔다.
한편, 박형근은 군복무 시절의 경험에서 비롯된 접경지대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두만강 유역을 탐색했다. 북한, 중국, 러시아 3국의 접경지역인 두만강 유역은 삼엄한 감시와 경계가 이뤄지는 곳이자, 동시에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건 탈북민의 월경이 행해지는 곳이다. 이 지역의 여러 도시와 자연을 답사한 박형근은 제주도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념이 갈등하고 대립했던 어제의 흔적을 더듬는 동시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오늘을 바라보았다.
이처럼 박형근은 지금 눈앞의 풍경을 직시하면서 그 속에 잠재된 역사의 기억과 시간의 흔적을 주시한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을 통해 완성된 세 개의 연작들 중에서 90여 점을 선별해 사진집『기억의 지층』을 선보인다. 책에는 국내외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두 비평가 장나윤, 엘리사 메데의 에세이를 수록했다. 두 편의 글은 오늘의 풍경에서 시간의 지층을 시각적으로 발굴하는 박형근의 깊고 단단한 시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한편, 이번 사진집은 국내의 사진 전문 출판사인 ‘보스토크 프레스’가 기획과 편집을 맡았고, 네덜란드의 아트북 전문 출판사 ‘에리스케이커넥션’이 디자인과 제작을 맡아 공동 출판하였다. 두 출판사의 특별한 협업으로 만들어진 책에서는 서로 다른 작업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구성과 제본, 섬세한 색과 톤을 정교하게 재현한 인쇄 결과물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Jejudo (2005-2022)
Forbidden Forest (2009-2013)
The Tumen River Project (2014-2017)
아카이브로서의 풍경들: 장소감에 대한 노트 _ 엘리사 메데
기억의 공간, 그 너머 _ 장나윤
제주도, 작가 노트 _ 박형근
두만강 프로젝트, 작가 노트 _ 박형근
저자소개
책속에서
작가의 대형 카메라가 담아내는 사진들에서 발견되는 기념성과 심미화는 인식과 애도의 제스처처럼 느껴진다. 여기서 드문드문 보이는 인간의 존재마저도 풍경의 한 요소에 지나지 않고, 시간이 흐르는 가운데 나타나는 일시적 현상에 불과해 보인다. 전쟁터에서 관광 명소로, 죽음과 이별의 상징에서 생존의 기회로, 그리움에서 해방으로 바뀌는 가운데 환경의 회복력과 인간의 적응력 사이에 존재하는 끊임없는 긴장감과 조작된 풍경을 경험할 수 있다.
- 엘리사 메데, <아카이브로서의 풍경들: 장소감에 대한 노트> 중에서.
<Jejudo>, <Forbidden Forest>, <The Tumen River Project> 연작들을 차례로 살펴보는 경험이 특별한 이유는, 서로 무관해 보이는 여러 역사적 사건과 장소들이 사실은 모두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그리고 그 역사적 얽힘이 현재의 경험을 규정하고 있음을 보는 이로 하여금 깨닫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처럼 과거가 현재에 미치는 지속적인 영향을 은유적이고 암시적인 방식으로 표상하는 박형근의 작품은, 궁극적으로는 보는 이로 하여금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고 질문할 것을 요청한다. 때론 고통스럽고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박형근의 사진 속 ‘기억의 공간’을 계속해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 장나윤, <기억의 공간, 그 너머> 중에서.
<Jejudo>(2005–2022) 연작은 제주도라는 불확실한 이미지 너머에 존재할지 모를 어떤 진실에 다가가고 싶다는 갈망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이것은 설명할 수 조차 없는 숙명적, 불가역적 이끌림에 의해서 혹은 잠재된 세계와의 낯선 조우, 원초적 감각, 무의식적인 세계와의 연결점을 찾아가려는 여정이었다. 실재와 환상이 중첩된 시공간 제주에서, 공상은 현실이 되고 사진은 뿌옇게 흐려진다.
- 박형근, 작가 노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