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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1711765
· 쪽수 : 208쪽
· 출판일 : 2024-03-27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1부 아주 긴 잠을 잔 것 같았는데 겨우 다음 날 아침이었다
저 괜찮은데요? | 응급실에서 | 잘 부탁드립니다 | 말리는 사람은 살 수 있어 | 사랑하는 힘으로 살아갈게 | 몇 번이고 허물어지기 | 주머니가 갖고 싶어 | 모두의 부루마불 | 우리를 망치러 온 구원자
인터루드
2부 모든 미래의 나는 모든 과거의 나를 사랑할 것이다
몬스테라 살리기 | 연수와 나 | 복도 끝에 있을게 | 수많은 타인들 틈에서 | 불면의 연대 | 시인과 히피놈 | 우기의 날들 | 여럿이 나눠 진 사랑 | 가능성의 코창 | 안나와 벌새 | 동료의 기백 | 기대어 버티기
아웃트로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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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는 언니 나노라고 부를게요. 아, 그리고 나 바이섹슈얼이야.”
“어? 그래요? 나도. 하하.”
“반가워요, 나노 언니.”
내 인생 가장 빠른 커밍아웃이었다. 아. 여기에서는 어차피 모두 서로 신원을 모르는구나. 겉치레 따위 상관할 바가 아니구나. 나는 처음으로 몇 학년, 몇 학번, 어디 사장, 뭐를 쓰는 작가 김연지가 아닌, 오롯이, 정신병자 김연지가 되었다. 어처구니없이 기뻐서 실실 웃음이 나왔다. 내 병동생활은 그렇게 퀴어프렌들리한 환대를 받으며 시작되었다. _ 「응급실에서」 중에서
“저는 간식 못 먹어요. 거식증이랑 폭식증 때문에 입원한 거라. 대신 사람들한테 나눠주는 건 교수님한테 허락받았어요.”
어쩐지 밥 먹는 내내 표정이 어두워 보이더라니. 진이는 사람들에게 아몬드를 나눠주고 싶어 밥을 꾸역꾸역 먹은 것이었다. 나도 그런 적 있는데. 추석 때였나. 고향에 내려갈 여유도, 밥을 차려 먹을 기운도 없었지만 이웃 사는 친구에게 추석 상을 차려주고 싶어서 잡채와 두부전을 만든 적이 있다. 배드민턴을 치고 싶어 하는 친구 때문에 억지로 밖에 나갔다가 가을 저녁을 만끽했던 날도 있었지.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조금 떼어 나에게 나눠주는 식으로 하루하루를 건사하던 날들이었다. _ 「잘 부탁드립니다」 중에서
하루는 새벽까지 술을 진탕 마시다가, 동틀 때쯤 바다를 보러 가기로 했어. 다들 술에 절어가지고 좀비처럼 골목을 걷는데, 누가 말했어. 어! 쌍무지개다! 목이 뻐근해질 때까지 하늘을 봤다. 바다는 가지 않았어. 그냥 집으로 돌아와 뻗어 잤지. 이후로 아무도 그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어. 마치 없었던 일인 것처럼. 어떤 아름다운 순간은, 그저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편안히 있을 때 우연히 마법처럼 찾아오더라. 그 순간이 너무 소중해져서 함부로 입에 올릴 수도 없게 되더라. 퇴원하면 꼭 같이 바다 보러 가자.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올 것만 같아. 미래에 점 하나 찍어놓으면, 그날까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_ 「말리는 사람은 살 수 있어」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