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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오은 (지은이)
위즈덤하우스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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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eBook 미리보기

책 정보

· 제목 :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71714599
· 쪽수 : 240쪽
· 출판일 : 2025-07-30

책 소개

박인환문학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시집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로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온 오은 시인의 필사 에세이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이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되었다.

목차

작가의 말_ 밤이면 떠오르는
속삭이다
흐르다
그립다
쓰다
깊다
기울다
서성이다
두근거리다
넘치다
흐느끼다
달뜨다
무르다
스치다
잠잠하다
뿌리치다
또렷하다
빛나다
발음하다
두드리다
빛있다
혼잣소리하다
비스듬하다
속앓이하다
만나다
친구의 말_ 어깨가 넓은 은에게 _유희경

저자소개

오은 (지은이)    정보 더보기
어릴 적에는 회색을 가장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갈피를 못 잡고 언제나 오락가락 정신없었다. 변덕이 죽 끓듯 했고, 머릿속으로 그 죽을 끊이다가 새까맣게 태워먹기 일쑤였다. 빨간색이라는 이유로 피와 고깃덩어리를 무서워했고, 같은 이유로 사과와 우체통을 마음에 두었다. 같은 빨간색이라도 채도와 명도에 따라 다채로운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알았다. 부잣집 아이들처럼 은색과 에메랄드색이 포함된 64색 크레파스를 갖고 싶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에는 원색은 좋아했지만 원색적인 말은 싫어했다. 한마디로 평범했단 소리다. 특히 푸른색에 열광했는데, 등굣길에 하늘을 올려다보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시간 날 때마다 휘파람을 불었지만 쇳소리 말고는 아무것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내 힘으로 할 수 없는 것들을 묵묵히 인정하게 되었다. 키는 쑥쑥 자랐지만, 노래방에서는 외려 키를 낮춰야만 했다. 시험을 망친 날에는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청포도 맛이 나는 연두색 사탕을 아작아작 깨물어 먹는 일이 잦았다. 이십대에는 하늘과 바다를 보는 일이 현저히 줄어들었다. 대신, 빨간색이 식욕을 돋우는 색이라는 사실을 몸소 깨달았다. 선홍색 꽃등심이 회색으로 변할 때는 왠지 모르게 서글퍼졌다. 더이상 나는 회색을 동경하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20년 넘게 쓰고 있던 색안경들을 손수 하나씩 벗었다. 하얀 종이에 까만 글자들을 채워넣는 일은 어느새 인생의 커다란 부분이 되어 있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개중 빨간 펜이 가장 무시무시하다는 사실을 새삼 절감했다. 서른이 된 지금은 연두색을 가장 좋아한다. 먼셀 표색계에서 5GY 7/10에 해당하는 바로 그 색 말이다. 연두라는 말에는 모종의 가능성이 담겨 있다. 앞으로 더 짙어질 거라는 희망도 있고 무럭무럭 자라나 누군가에게 그늘을 선사해주겠다는 당찬 의지도 있다. 무엇보다 연두는 철들지 않아서 좋다. 철이 들면 색은 짙어지고 무거워지고 참을 수 없이 끈적끈적해진다. 나는 아마 평생 철들지 못할 것 같다. 그리고 지금, 레드와 옐로의 계절을 지나 화이트와 블랙의 계절을 거쳐 그린과 블루의 계절이 다가오고 있다.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면서도 색다르게 사는 법이 필요한 때가, 또다시 찾아든 것이다. 2002년 『현대시』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호텔 타셀의 돼지들』 『우리는 분위기를 사랑해』 『유에서 유』 『왼손은 마음이 아파』 『나는 이름이 있었다』 『없음의 대명사』, 청소년 시집 『마음의 일』, 산문집 『너는 시방 위험한 로봇이다』 『다독임』 『초록을 입고』 『뭐 어때』 『밤에만 착해지는 사람들』 등이 있다. 박인환문학상, 구상시문학상, 현대시작품상, 대산문학상, 시인수첩작품상을 수상했다. 작란作亂 동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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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서

나를 위로해주는 말들은 대부분 속삭임이었다. 편지에 쓰인 문장, 한두 줄의 문자 메시지조차 속삭이듯 다가오는 경우가 많았다. 그럴 때 글은 읽는 것이 아니었다. 깃드는 것이었다. 그럴 때 말은 듣는 게 아니었다. 흘러드는 것이었다. 너의 곁에는 아직 내가 있다는 것, 잊어버리지도 잃어버리지도 않겠다는 것, 훗날이 옛날이 될 때까지 응원을 멈추지 않겠다는 것, 내일이면 한결 괜찮으리라는 것…… 손을 잡듯, 이마를 짚듯, 어깨를 두드리듯 속삭임은 그렇게 왔다.


그런 날이면 무언가를 쓰고 싶다. 아니,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것 같다. 흐르던 것이 다시 흐를 수 있게 벽을 걷어내야 한다. 제대로 끝나지 못했던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고맙다고 해야 한다. 미안하다고 해야 한다. 중간에서 끊겼던 이야기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만나야 한다. 눈을 마주쳐야 한다. 못다 한 말이 너무 많아서 쓸 때면 어김없이 겸허해진다.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 착해진다. 밤에만 착해진다.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셈하고 있지는 않았으면 해. 거절 못해서 쩔쩔매고 있을 가능성은 여전할 테지만, 할 수 없는 일을 꾸역꾸역 해내다가 몸과 마음을 다치지는 않았으면 해. 너를 지킬 수 있었으면 해. 아무리 바쁘더라도 스스로를 지키는 일을 소홀히 하지 않았으면 해.
부디 너는 지금의 나보다 좀 더 나은 사람이었으면 해.


도서 정보 제공 : Yes24(www.yes24.com), 알라딘(www.alad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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