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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사회과학 > 사회문제 > 사회문제 일반
· ISBN : 9791172133993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26-05-11
책 소개
잼민이부터 틀딱충까지 한국의 나이 멸칭 문화와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같아서 혐오하는 ‘나이 전쟁’의 실체
과거의 기성세대와는 다르게 활력이 넘치고 트렌드에 민감한 40대, 혹은 스스로 젊다고 착각하면서 꼰대짓을 일삼는 40대를 지칭하는 ‘영포티’는 멸칭일까, 아닐까? 공공장소에서 ‘매미’처럼 시끄럽게 떠드는 어르신을 가리키는 ‘할매미’는? 귀엽고 재미있는 어린이를 일컫는 ‘잼민이’는? 한 번이라도 입 밖으로 불러 보았거나 머릿속으로 떠올린 적이 있다면 당신은 대한민국에서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나이 전쟁’에 참전 중인 셈이다.
‘틀딱충, 연금충, 개저씨, 김여사, 급식충, 초글링’ 등 한국 사회는 나이 멸칭 문화에 점령당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년, 중년, 청년, 어린이 및 청소년 등 전 연령과 세대를 지칭하는 나이 멸칭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서로가 서로에 대해 조롱과 경멸을 주고받는다. 여러 연령대 중에서도 특히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인 아동과 노인에게 쉽게 비하와 경멸의 화살이 향한다. 이는 우리가 지독한 연령차별주의(Ageism) 사회를 살고 있다는 명백한 증거다.
나이는 사람을 판단하는 가장 쉽고 유용한 기준이다. 그래서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는 데 흔히 사용되지만 때로 해악, 불이익, 부당함을 초래하고 세대 간 결속을 약화시키기도 한다. 즉 상대의 나이가 ‘많아서, 적어서, 혹은 같아서’ 편견을 갖고 차별하는 행위가 ‘연령차별주의’다. 이것이 심각한 이유는 사회가 연령을 기준으로 개인의 능력과 태도를 판단하여 기회와 자원을 배제시키는 이데올로기적 기능을 갖기 때문이다. 그 결과 특정 연령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물론이고 그들에게 불리한 법 제도, 시스템, 규정 등이 만들어질 수 있다. 또 연령차별은 인종차별이나 성차별과 달리 피해 당사자들이 차별에 문제의식을 느끼거나 저항하지 않는다. ‘나이는 누구나 먹는 것’이라는 평등의 논리에 가려져 그 위험성이 제대로 인식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이는 모두를 차별의 피해자이자 가해자로 만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쩌다 연령차별주의 사회가 되었으며, ‘나이 전쟁’을 종식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전작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한 번은 불러보았다》 《차별의 나라에서 행복한 사람들》을 통해 인종, 국적, 지역, 성별, 장애, 빈부, 소수자 등 우리 사회의 다양한 차별과 혐오 문제를 꾸준히 다뤄 온 정회옥 교수는 이번에 ‘나이’로 화두를 넓혔다. 그의 신작 《나이 묻는 사회》는 세대별 나이 멸칭의 종류와 유래, 의미와 부작용을 살펴보고 정치, 사회, 대중문화, 일상 등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연령차별주의의 사례를 소개한다. 이런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한국형 연령차별주의가 발생하게 된 역사적·문화적 배경과 그 특징을 분석하고 궁극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는 개인적, 사회적, 제도적 방안을 모색한다.
한국은 처음 만나면 서로의 나이를 묻는 게 일상적인 ‘나이 묻는 사회’다. 관계를 시작할 때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를 가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나이를 기준으로 관계를 정립하는 데 익숙하지만, 나이를 잠시 내려놓고 한 사람을 온전히 마주하는 일에는 서툴다. 문화평론가 이라영의 추천처럼 “나이가 단지 숫자에 불과한 것도 아니지만, 나이가 한 사람의 모든 정체성을 잠식하는 것도 반대”하고 경계해야 한다. 연령대 간 유대와 연대를 방해하고 단절과 반목을 조장하는 나이는 기꺼이 ‘묻어 버려야’ 한다. 이 책은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나이 전쟁’의 본질을 이해하고 우리 안에 내면화된 차별의 시선을 거두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다. 이 책을 통해 나이라는 보이지 않는 족쇄가 어떻게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규율하고 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무기가 된 생애주기별 맞춤형 나이 멸칭들
치열한 나이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는 각 세대가 서로를 향해 ‘나이 멸칭’이라는 총알을 퍼붓고 있다. 생애주기별로 멸칭이 존재하니 누구라도 이 총탄을 피해 가기 어렵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 수단을 넘어, 우리 삶을 구조화하고 세계를 바라보는 사고의 틀을 만들어 낸다. 증오와 멸시의 언어는 느린 속도로 개인들 안에 스며들어 잔혹한 행동으로 발현한다. 단순히 농담과 유머로 여겼던 나이 멸칭이 우리 사회에 차별과 혐오 문화를 어떻게 고착시키는지 명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능력을 빗대어 만들어진 멸칭에는 노화에 대한 우리 사회의 편견이 짙게 담겨져 있다. 틀니를 희화화한 ‘틀딱충’, 감소된 청각 능력 때문에 크고 요란한 목소리를 내야 하는 행태를 비꼰 ‘할매미’, 벌레처럼 사회에 기여하는 바 없이 연금만 축내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연금충’ 등 멸칭들은 노인을 무력하고 쇠약하며 죽음과 가까운 존재로 그린다.(31쪽) 쇠퇴의 이미지는 중장년층에게도 이어진다. 부족한 생산력과 창의력 때문에 시대에 뒤떨어지고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편견, 권위적이고 무례하며 불평등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이미지, 재미없고 권위만 앞세우고 청년들을 한심하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 어려 보이려는 이중적 태도, ‘꼰대, 개저씨, 김여사, 영포티’는 이를 조롱하는 멸칭이다.(47쪽)
원래 마케팅·트렌드 용어였던 ‘MZ, 삼포 세대, 욜로 세대’는 청년들에 대한 노년·중장년 세대의 무시와 비판의 시선이 더해지면서 그 의미가 변질되었다. 이 멸칭들은 청년을 공적인 가치에는 관심이 없고 개인 욕구에만 충실한 이기적인 존재로 그린다. 미래를 위한 노력은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의욕도 없고 게으르며 불성실한 세대, 한마디로 무능하고 부족한 집단으로 매도하는 것이다.(66쪽) 미래의 희망이자 사회 변화의 원동력이 될 청소년과 어린이도 나이 멸칭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급식충, 잼민이, ~린이’ 등에는 어린이와 청소년이 독립적 인격체, 사회의 동등한 구성원이기보다 모든 영역에서 초보자이며 미숙하고 불완전한 존재라는 인식과 평가가 내포되어 있다. 문제는 차별어를 듣고 자란 아이들은 차별하는 어른이 되기 쉽다는 사실이다.(75쪽)
한국 사회는 나이라는 범주에 지나치게 집착한 나머지 각 나이대마다 멸칭을 만들어 붙였고, 이제 나이 범주는 그 범주에 속한 사람들의 삶을 이해하는 수단이기보다 부정적 고정관념을 연상시키는 기능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령자를 멸칭으로 부르는 행위는 고령자 개인의 문제로 그치는 게 아니라 사회구조적 문제로 연결된다. 젊은 세대에서 노인에 대한 부정적 편견이 늘어나면, 향후 이들이 노인을 위한 복지 제도를 결정하게 될 때 부정적 편견이 작동해 노인 복지는 감소하고 노인 빈곤, 노인 자살 문제는 더 심각해질 것이다.(46쪽) 이러한 우려는 전 연령대에서도 마찬가지이며, 나이 멸칭을 단순한 언어적 유희로 간주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하지만 나이 멸칭의 폐해는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한 단면일 뿐이다. 우리는 정치, 사회, 대중문화 등 전방위에서 차별과 혐오의 사례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간의 가치를 생산성과 연결시킨 한국형 연령차별주의
한국 사회는 단기간에 빠른 경제 성장을 이룬 역사적·문화적 배경 때문에 생존을 위한 비교와 경쟁이 일상이 되었다. 그래서 종종 ‘생산성=인간의 가치’라는 등식이 성립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신체적·정신적 능력이 저하됐거나 부족하다고 여겨지는 노인과 어린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중년, 불평불만과 남 탓만 일삼는 청년은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경멸과 배제의 대상이 된다. 죽음과 가깝거나 자기 관리가 되지 않는 존재도 같은 맥락에서 차별을 받는다.(117쪽)
정년제는 대표적인 제도적 연령차별이다. 일정한 나이가 되면 사람이 갑자기 무능력해지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퇴직을 시키는 것이다. 근로자의 의사에 반하는 연령 기준 강제퇴직은 정당한 사유 없이 특정 연령층을 다른 연령층에 비해 다르게 처우하는 것이므로 헌법상 행복추구권, 직업 선택의 자유, 평등권, 근로권 등 기본권 침해 소지가 있다. 해외에서는 정년제가 폐지되거나 연장되는 추세이며, 정년 연장의 기준을 사회보장제도와 연계하여 설계하고 있다.(156쪽)
고령자 운전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는 관련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커지고 있다. 노화가 인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교통사고는 운전자의 나이보다는 운전 당시의 몸 상태나 피로도가 더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안전한 사회를 위해서라면 ‘늙은 몸과 나이’가 아닌, 위험한 운전을 하는 ‘행동’을 규제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노년층의 운전을 무조건 금지하기보단 면허 제도를 촘촘히 설계해야 한다.(178쪽)
우리나라의 정치 영역에서는 연령차별적 상황을 자주 맞닥뜨릴 수 있다. 최다 득표자가 2명 이상이면 연장자가 당선되다는 규정, 이른바 ‘장유유서 선거’가 대표적이다.(188쪽) 또한 다른 나라에 비해 40세 이하 젊은 정치인의 수가 압도적으로 적고, 국회의원·지방의원·교육감 등과 다르게 대통령 선거에는 40세 이상인 사람만 출마할 수 있다는 규정도 존재한다.(197쪽) 나이가 어릴수록 더 많은 투표권을 가지고, 나이가 많을수록 더 적은 투표권을 가져야 한다는 차등 투표제·여명 투표제도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는 불평등한 발상이다.(206쪽)
청년층의 주거 안정과 저출생 극복 대책 마련의 일환으로 마련된 공공임대주택 제도의 경우 세대원 수별 규정된 면적이 너무 좁게 산정되었는데 이는 “젊으니까 좁은 데 살아도 괜찮다”는 낡은 편견이 바탕인 정책이다.(212쪽) 또 어린이와 청소년에게 건네는 “대견하다” 혹은 “기특하다”는 칭찬에는 상대를 동등한 존재로 존중하지 않고 미성숙하거나 보호받아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인식이 깔려 있다.(219쪽) 이 외에도 어르신 호칭 문제, 임금피크제, 황혼육아와 돌봄노동, 저속노화 열풍,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등 우리 사회에는 참으로 다양한 연령차별 문제가 숨어 있다. 하지만 나이에 대한 제한을 모두 없애는 방향은 결코 좋은 해결책이 아니다. 지나치게 나이에 얽매인 사회는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제도적 맥락에 맞는 나이 기준에 대한 논의를 가져야 한다.
어떻게 ‘나이 전쟁’을 끝내고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향할 것인가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사회적 관계에서, 평등함이 아닌 우열 또는 상하의 차등을 두었다. 이는 불평등을 전제로 한 유교 사상이 깊게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여기에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냉전 시대, 군사 독재 정권, 국가 주도 경제 성장을 거치면서 집단주의적 성향이 강해졌다. 나이에 따른 서열은 우리 사회에서 반드시 지켜야 할 기본 규범으로 소중히 여겨져 왔다. 하지만 산업화로 인한 자본주의의 발달과 개인주의 대두, 평등한 정치권력을 추구하는 민주화는 우리 사회의 가치 혼란을 가져왔다. 근대화 이후 그 기본 규범이 무너지고 세대 간 충돌이 발생했으며 각 연령대마다 맞춤형 편견과 차별이 혼재하게 되었다.(48쪽) 또 4차 산업 혁명, AI 기술의 보편화 등 사회가 매우 빠르게 변화함에도 여전히 밀도 있는 사회적 논의와 나이에 대한 도덕적 규율의 재창출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나이를 묻는 사회는 나이에 따른 여러 긴장을 발생시킨다. 한국 사회는 세대 간에 서로를 이해할 교육 제도나 환경이 충분하지 못하다. 저자는 나이를 묻지 않고 나이와 상관없이 어우러져 사는 사회, 연령 블라인드(age-blind) 사회야말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임을 강조한다.(322쪽)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나이대의 사람들 간 접촉이 중요하다. 예를 들면 서울시의 ‘한 지붕 세대 공감’, 네덜란드의 ‘후마니타스’, 프랑스의 ‘한 지붕, 두 세대’처럼 고령층과 청년층 간 상호작용을 증진시킬 수 있는 유용한 프로그램이 많아져야 한다. 또 어린이집과 노인 복지 시설이 함께 있는 세대 통합 돌봄 센터, 세대 간 멘토링 프로그램 등도 효과적이다.(310쪽)
세대 간 인식 변화를 위한 교육도 중요하다. 학교 교과서에서 ‘퇴행, 기능 저하’처럼 부정적 용어를 사용하는 대신 노년기에도 새로운 발달이 시작될 수 있고 생애 단계마다 중요한 발달 과정을 거친다는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316쪽) 가상현실 기술을 사용해 노년 체험, 어린이 체험을 해 보는 것은 다른 연령대에 대한 추상적인 이해를 넘어 실질적인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 법 제도적인 개선도 필요하다.(318쪽) 우리나라에도 연령차별을 금지하는 법이 존재하지만 실제 현장과 집행에는 괴리가 있다. 세대 간 교류와 통합을 전담하는 정부 기구를 설치하거나 정부가 민간단체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제도가 필요하다.(320쪽)
나이는 삶의 한순간이자 과정일 뿐이다. 모든 세대가 나이가 주는 편견에서 자유로워질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의 삶을 공유하고 연대하는 성숙한 공동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은 단순히 한국형 연령차별주의의 실태를 고발하는 데에서 그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언젠가는 약자인 ‘어린이’였으며 반드시 ‘노인’이 될 것이라는 삶의 진리이자 역설을 일깨우며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갈 공존의 길을 선사한다.
목차
추천사
들어가는 말: 나이라는 억압이 만들어 낸 혐오와 차별
1장 한국 사회를 집어삼킨 나이 멸칭 문화
나이는 어떻게 존재와 삶을 규정하는가
연령차별주의 사회, 한국
틀딱충, 할매미, 연금충으로 불리는 노년
개저씨, 영포티, 김여사가 되어 버린 중장년
MZ, 삼포 세대, 욜로의 틀에 갇힌 청년
급식충, ~린이, 잼민이라 조롱받는 아동·청소년
혐오와 분열을 조장하는 각국의 나이 멸칭
2장 우리는 왜 나이에 집착하는가
근대화, 산업화를 떠받친 경로사상과 장유유서
나이 전쟁의 시작과 양상
3장 정치사회 이슈로 떠오른 연령차별 문제들
어르신을 어르신이라 부르지 못할 때
몇 살까지 일하고 싶으세요?
대한민국은 노인정치의 나라
언제 운전대를 놓아야 할까
나이 많은 사람이 이기는 선거
40세 이상만 대통령 자격이 있다?
나이에 따라 투표권이 다른 평등선거
젊으니까 좁은 집에 살아도 괜찮아
‘대견하다’는 정말 칭찬일까?
4장 일상에서 마주친 연령차별의 단상들
교통약자석인가, 노인석인가
‘버릇없는’ 노인과 노인 연령 기준
황혼육아에서 박카스 할머니까지
더 이상 어리지 않은 여성의 한계
28세 이상의 미스코리아를 꿈꾸며
나이 들고 싶지 않은 사회의 저속노화 열풍
금쪽이들에게도 정당한 권리가 있다
노키즈존과 노시니어존, 다음은 누구?
5장 나이 묻지 않는 사회로 나아가기
서로 다른 나이를 살지만 하나의 삶을 공유하다
나이보다 중요한 가치들을 위하여
참고문헌
주
저자소개
책속에서
우리 사회는 어떨까? 강산이 변한다는 서른 해의 간격을 넘어 서로 친구가 될 수 있는 사회일까?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아직 그렇지 못하다. 우리는 처음 만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의 나이를 묻는다. 관계를 시작하기에 앞서 나이를 먼저 확인해야 마음이 놓이는 문화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나이는 관계의 방향을 정하는 일종의 좌표로, 나이를 알아야 말을 놓을지 높일지, 어느 자리에 서야 할지를 비로소 정할 수 있다.
사실 나이에는 ‘역연령(chronological age)’과 ‘기능적 연령(functional age)’이 있다. 역연령은 출생 이후의 시간 흐름에 따라 매겨지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이를 뜻한다. 반면 기능적 연령은 개인이 특정 역할이나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능력에 따라 달라지는 나이다. 그래서 60세라 하더라도 기능적 연령은 35세처럼 활기찰 수 있고, 반대로 30세라 하더라도 기능적 연령이 이미 70세에 이르렀을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 두 가지 차이를 외면한 채 역연령에만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한국인들은 삶의 전 과정에서 특정한 나이에 맞는 직업, 언어, 태도, 결혼 등을 갖추어야 한다는 압박을 받으며 살아간다.
나이 차별은 한국 사회를 세대 간 분열시키기도 하지만, 동일 세대 내에서의 분열도 야기한다. 한 연구에 의하면, 노인들은 본인이 속해 있는 노인 집단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경향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때로는 동일시하고 때로는 자신과 분리하기도 했는데, 노인으로서 활동적 삶을 영위할수록 다른 노인들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고 자신과 구분 짓는 경향이 컸다. (중략)
노인 멸칭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노인들이 서로를 혐오하는 ‘노노 혐오’ 현상이 생긴다. 탑골공원 내 급식소를 탐방한 기사에 따르면, 노인들이 서로 대화하는 풍경을 상상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고 한다. 노인들은 ‘지저분하다’ ‘냄새 난다’ ‘무섭다’ 등의 이유를 들어 친구를 사귀거나 말을 걸고 싶지 않다고 응답했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말하는 노인들은 서로를 타자화하며 거리를 두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