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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5720210
· 쪽수 : 380쪽
· 출판일 : 2016-04-05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_ 5
거기. 그가. 있다 _ 7
에필로그 _ 379
저자소개
책속에서
엊그제까지만 해도 그는 결단코 극장에 가지 않을 생각이었다. 겨우내 진행된 공연작업 초반에 연출자로 참여했었던 그로서는, 객석에 앉아 있는 내내 몸뚱이를 배배 꼬고 엉덩이까지 비틀어대다가, 기껏해야 왼고개나 절레절레 저어가며 못마땅한 한숨을 연거푸 “푸우~ 푸~” 내어 쉴 게 뻔할 공연이라는 섣부른 단정에 발목이 잡힌 탓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뻔뻔스런 이기심과 부끄러운 자존심에 은근히 속되 먹은 허영심마저 알게 모르게 가미된 두려움 탓으로, 자신이 그 끔찍스러울 연극의 뿌리랄 수 있는 엉성한 희곡을 쓴 한심스런 삼류작가라는 관객들의 쓰라릴 - 제 입장에서 보면 적잖이 억울할 수도 있을 - 손가락질만큼은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긴 여운을 주도록 무대는 가능한 천천히 어두워져야 할 것이다. 전체 공연의 프롤로그(prologue)인 - 맛보기면서도 고갱이라고도 할 만한 -
전주(前奏)가 끝난 것이다. 전주가 실연(實演)되는 내내 숨죽이고 몰두했던 관객들도 긴장이 풀어졌는지, 숨을 “후우~”내뱉으면서 무대를 향해 쏠려있던 몸을 뒤로 빼며 의자에 기대어 편안한 자세를 취했다.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북소리로 긴장감을 점차 고조시켜가는 가운데, 음향과 조명을 섞어서 아예 하나의 독립적인 장면을 만들었더라면 어땠을까’
삿갓 쓴 사내 그러니까 김병연이 제법 멀끔해 보이는 두루마기 차림에 걸망? 바랑? 여하튼 기다란 자루를 등에 지고 무대에 들어섰는데, 사립문 앞에서 잠깐 동안 망설거려대는 것만 같은 태도와 행색을 훑어보고서, 그는 비록 변변찮은 폐포파립(弊袍破笠)일망정 누더기마냥 지저분하게 깁고 덧댄 비렁뱅이 차림새가 아닌 것이 고마웠고, 매끈한 죽장(竹杖) 끝에 호리병을 매달아두지 않아서 감사했으며, 무엇보다 청국장에 까르보나라(carbonara) 처말아먹는 퓨전 스타일(fusion style)이 아니어서 천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