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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시 > 한국시
· ISBN : 9791185923307
· 쪽수 : 224쪽
· 출판일 : 2021-04-26
책 소개
목차
차례
자서
석류 이가림
길 위에서의 생각 류시화
시월 나희덕
무릎 정호승
소리의 무게 김광규
가을 오후 도종환
내가 나의 감옥이다 유안진
오십세 문정희
허물을 벗다 도복희
꽃씨 이준관
바느질 박경리
묽어지는 나 황인숙
그 사람 김소원
벽돌 한 장 고영민
그 소식 홍윤숙
꿘투 이장근
다시, 수평선 손택수
긔여 정윤천
빨리 크고 싶다 정진규
기쁨 나태주
짐에 관하여 김영남
방문객 정현종
펜 오진원
물고기 함민복
안부 고 은
웃는 돼지머리 주용일
참매미 박용래
떠나서야 들리는 말 공광규
노래 유자효
삼팔선에 관하여 권혁웅
시 쓰다가 이관묵
지팡이 박덕규
호상好喪 김희정
벽 신달자
음악파일 윤성택
북 나호열
아득한 성자 조오현
꽃 멀미 노금선
편지 김남조
산속에서는 안용산
가을 김종미
추석 전날 달밤에 송편 빚을 때 서정주
과꽃 이정희
사는 게 참 꽃 같아야 박제영
속도의 비대칭 신영연
사랑의 묘약 오세영
사랑에는 이유가 없습니다 박세아
밤, 썰물에 마주서다 강은미
해변의 원피스 이승희
어떤 난중일기 김원옥
엄마가 들어 있다 이수익
세상의 뿌리들에게 이 섬
석상石像의 노래 라이너 마리아 릴케
무 반칠환
새에게 밥을 빌다 이제인
제야除夜 김영랑
역 한성기
집 이정록
비눗방울이 앉았던 자리 이 향
그런 것이다 천양희
장미에게 묻다 문현미
그리움 강신용
매화나무 곁을 지나다 양문규
꽃이 길 얻다 김선영
그때를 아시나요 이영식
불타는 얼음 허형만
어떤 기부 고증식
마음의 오지 이문재
잠잠히 구재기
겹겹의 창 길상호
그늘은 나무의 생각이다 이기철
꽃그늘 이재무
밧줄 김두안
정치 문인수
수족관의 거북 최승호
대나무 김지윤
6월 김수복
(연재순)
맛있는 시, 멋있는 시
저자소개
책속에서
석류
이가림(1943~ )
언제부터
이 잉걸불 같은 그리움이
텅 빈 가슴속에 이글거리기 시작했을까
지난 여름 내내 앓던 몸살
더 이상 견딜 수 없구나
영혼의 가마솥에 들끓던 사랑의 힘
캄캄한 골방 안에
가둘 수 없구나
나 혼자 부둥켜안고
뒹굴고 또 뒹굴어도
자꾸만 익어가는 어둠을
이젠 알알이 쏟아놓아야 하리
무한히 새파란 심연의 하늘이 두려워
나는 땅을 향해 고개 숙인다
온몸을 휩싸고 도는
어지러운 충만 이기지 못해
나 스스로 껍질을 부순다
아아, 사랑하는 이여
지구가 쪼개지는 소리보다
더 아프게
내가 깨뜨리는 이 홍보석의 슬픔을
그대의 뜰에
받아주소서
시와 사랑을 찾아 떠난 한 사내가 있었다. 목숨처럼 시와 사랑에 붙들린 사내. 봄날 담장 곁에 나무 한 그루 심어두고 지성으로 제 사랑의 소원 빌던 사내 있었다. 그 산맥 같은 가슴 안에서는 언제나 시를 삼던 사내. 사내는 아침저녁 나무에 물을 주며 지성으로 빌고 빌어, 그때마다 먼 산의 뻐꾸기소리 달려와 안기곤 했다. 사내의 사랑이 전해져 나무에 꽃이 피면 그때 사내 가슴엔 붉은 시가 솟으리라 했다.
그 나무가 사내 키 훌쩍 넘어 담장 위로 목을 뺄 즈음, 사내는 담장 밖 오가는 긴 머리 처녀에게 마음 빼앗겼다. 어느 눈매 깊은 한 처녀를 가슴에 새겨두고 끓이며 애태웠다. 치렁치렁 그 긴 머리칼에 확, 확 가슴 뜨거웠다. 나무는 사내 마음 먼저 알고 더 몸이 달아 무진장, 무진장으로 꽃피워 열매 붉어서도, 처녀는 사내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마침내 그 열매의 선홍빛 가슴은 터져 붉은 핏물로 번져 갔거니. 오, 그대 석류여. 제 가슴 한 쪽을 허공으로 갈라내 핏물 뚝, 뚝 듣는 속살 펼쳐내는구나. 어느새 사내의 시는 쌓여 산을 이루고 그 위로 가을은 무너져 내린다.
고통 없는 사랑 어디 있으며, 고뇌 없는 사랑이 또 어디 있으리. 가을 따라 그대 사랑도 깊어 가는가. 이 세상 여기저기 담장 위로 목을 빼고 오가는 사랑 찾는 그대들이여. 한 사내가 저 농익은 석류 속에 아로새겨놓은 격정의 시와 사랑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