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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로맨스소설 > 한국 로맨스소설
· ISBN : 9791186170441
· 쪽수 : 356쪽
· 출판일 : 2015-07-20
책 소개
리뷰
책속에서
그녀가 검을 내지를 때마다 초록빛 핏방울, 붉은빛 핏방울이 사방에 퍼졌다. 손을 뻗을 때마다 새하얀 빛이 터져 나왔다. 가녀리고 새하얘 금방이라도 부러질 것 같은 팔과 다리로 몇 배나 커다란 괴물들을 사정없이 처치했고, 움직임에 따라 하늘거리는 옷과 눈으로 좇기도 버거울 정도로 재빠른 속도 때문에 한 마리의 나비가 노니는 듯한 착각이 일었다.
“정말…… 말이 안 나오는군.”
“아름다워. 싸우는 장면이 이토록 아름답게 보이는 것은 처음이야.”
앞에 있는 괴물을 처치한 사람들은 여인이 싸우는 모습을 넋 놓고 바라보며 감탄사를 내뱉었다.
여인은 순식간에 괴물들을 처치하곤 손에 묻은 피를 털어내며 말했다.
“후, 끝난 건가?”
붉은 전갈단을 이끌고 있는 단장은 서둘러 물과 부드러운 천을 가져다주며 말했다.
“네, 성녀님. 이 주위에는 더 이상 없는 것 같습니다.”
그녀는 천으로 온몸에 튄 괴물의 피를 대강 닦은 후 얼굴을 가리고 있는 면사를 살짝 들어 올려 물로 목을 축였다. 아주 조금 드러난 여인의 민얼굴이건만 남자들은 시선을 떼지 못한 채 마치 자신들도 물을 마시는 것처럼 침을 꼴깍꼴깍 삼켰다. 사막의 여인들과는 달리 새하얗고 매끄러운 피부와 섬세한 턱 선, 도톰하고 붉은 입술까지. 면사로 가리고 있을 때도 숨겨지지 않는 아름다움이니 오죽하랴.
목 뒤로 단정히 묶은 머리카락은 하르빌의 보물이라 불리는 금속처럼 수많은 색상을 담아내는 찬란한 은색으로 이 세계의 것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화려했다. 대놓고 드러내는 아름다움이면 익숙해지기라도 하지. 아주 이따금, 사람 마음을 애태우는 것처럼 조금씩 보여주는 아름다움이니 더욱 애간장이 탔다.
정작 그녀는 사람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관심도 없다는 듯 턱에 맺힌 물을 대강 닦으며 괴물 사체를 주워 담기 시작했다.
그것 역시 신기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손도 대지 않는데 절로 사라지는 사체들이라니. 어느덧 주위는 언제 그랬느냐는 듯 깨끗해졌고, 그나마 남아 있던 피 역시 모래바람과 함께 흩어져 다시 평화로운 붉은 사막으로 돌아왔다. 피 냄새를 맡고 몰려들 괴물 걱정은 할 필요도 없으니 다행이었다.
다 정리한 여인은 단원들 곁으로 다가와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럼 일단 여기서 쉬도록 하지요. 밥 먹고 바로 출발하면 될 것 같네요.”
그녀의 말에 사람들의 안색이 살짝 질렸다. 마을을 떠나 사막에 들어선 지 사흘째. 보통은 별이 보이는 밤에 이동하고 낮에는 한적한 곳을 찾아 체력을 보충하며 이동을 하건만, 이 여인은 도통 지치질 않는 모양인지 밤에 보아두었던 길을 정확하게 따라가며 쉼 없이 괴물들을 상대했다.
물론 하르빌 사막을 건넌 지 꽤 오래되어 사막 부족의 굶주림이 극에 달했을 테니 한시가 급한 건 맞았지만, 괴물 몇 마리쯤은 거뜬히 상대하는 붉은 전갈단원들도 지쳤을 정도니 안내자인 노인은 말해봐야 입만 아픈 일 아니던가.
그럼에도 여인의 말대로 잠깐 쉬고 이동하고, 잠깐 쉬고 이동할 수 있는 이유는 지칠 때까지 몰아붙이는 그녀가 또 최상의 휴식까지 같이 선사해주기 때문이었다.
“정말 맛있습니다.”
“사막에서 이토록 신선한 과일을 먹게 되다니, 꿈만 같네요.”
“정말 대단하군.”
단원들과 노인은 여인이 건네준 음식들을 맛보며 연신 감탄을 했다. 그녀는 그 와중에 악기를 꺼내 들어 연주까지 해주고 있었다. 경쾌하고 마음까지 들뜨는 선율에 사람들은 술 한잔 걸친 것처럼 한껏 즐거워했다.
검을 휘두를 때는 사막 부족 못지않게 강인하고 잔인하면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노래를 부를 땐 여느 여인보다 나긋나긋하며 섬세했다.
그녀가 준비해주는 음식과 음악을 즐기다 보면 힘과 의욕이 솟아나 언제 그랬느냐는 듯 다시 길을 나서게 되니 이전보다 몇 배는 빠른 속도로 사막을 건너는 것이 당연했다.
여인은 왁자지껄 떠들며 식사를 하는 남자들을 바라보다가 웃음을 머금었다.
‘단순하기는. 굳이 다른 스킬들은 쓸 필요도 없네.’
리리는 고작 음악 스킬과 요리 스킬에 넘어와 하하호호 웃는 것이 기가 막히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확실히 스킬은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한다. 새삼 다양하게 모아두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아이템창을 열어 한가득 쌓여 있는 괴물 사체를 보며 뿌듯해하다가 다시 지도를 열어 현재 위치를 확인했다. 사람들은 별이 보이지 않는 낮에도 이동하는 그녀를 신기하게 여겼다. 그건 모두 시스템창 덕분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대한 사막에서 현재 위치만 덜렁 작은 점 하나로 표시되는 것을 보고 이동하는 건 대책이 없는 일이었지만, 가야 할 방향이 정확하다면 문제 될 것이 없었다. 인도자가 따라가는 별의 위치를 확인하고 지도에 표시해둔 후 그 방향으로만 일직선으로 걸어가면 되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