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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전 한국소설
· ISBN : 9791186198810
· 쪽수 : 228쪽
· 출판일 : 2023-11-30
책 소개
목차
1회
1. 노화백의 착각
2. 무정한 오뇌(懊惱)
3. 창조의 정열
2회
4. 방황하는 순정
5. ‘금단(禁斷)’과 ‘동경(憧憬)’
6. 마음에 포즈
3회
7. 좁은 문
8. ‘최후의 만찬’
9. ‘동경’의 소묘
4회
10. 심야의 심리
11. 동일한 입장
12. 무서운 시선
5회
13. 의문의 방문객
14. ‘사모(思慕)’의 시
15. 기회와 기회
16. 마(魔)의 한강으로
6회
17. 한강의 이리
18. 이브의 죄
19. 성 수도원
해설: 종교와 예술을 통한 욕망의 승화 - 예술가 소설과 연애 소설 사이에서 『금단의 유역』 읽기(박수빈,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연구교수)
저자소개
책속에서
“아, 이 그림을 어떡하누!”
노화백의 마음은 칡넝쿨처럼 어지러웠다. 이 그림을 도저히 아내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그렇다고 아내를 그리려고 들었던 붓으로 그냥 딴 여자를 그리기에 노화백의 양심은 너무나 곧았다.
허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는 샘처럼 맑고 정기 있는 순경의 눈을 보자 홀연 새로운 창조의 정열이 부쩍 솟아올랐다. 이대로 그려 나간다면 확실히 새로운 무엇을 창조할 수 있을 것만 같았으나 그러나 그는 지하의 아내의 영(靈)을 짓밟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예술을 이해해 주던 아내이긴 하였지만 그렇다고 아내를 그리려던 붓으로 어떻게 딴 여자를…….
노화백은 자기의 흥분을 순경에게 보이지 않으려고 넋없이 팔레트에 조색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요한 화실에 팔레트 나이프 놀리는 소리는 노화백의 감정, 그것과 마찬가지로 너무나 거칠게 울렸다.
동경과 금단!
그럴 법한 제호였다. 순경이가 노화백에게는 ‘금단’의 구역이라면, 승조에게는 틀림없는 ‘동경’의 세계가 아닐 것이냐? 노화백이 순경을 청교도의 태도로 대하지 않을 수 없듯이 승조는 그를 몽상의 맘씨로 바라보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성격 차이일까?’ 노화백은 속살로 그렇게 궁리해 보다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성격의 소치가 아니라 나이의 관계다.’ 노화백은 이렇게 믿었다.
칠십 넘은 늙은이와 삼십 전의 젊은 혈기! 역시 예술도 나이를 초월할 수는 없는 모양이라고 알자 노화백은 속절없이 마음이 서글펐다. 무어 순경을 빼앗긴 듯한 질투심에서가 아니라 ‘정열을 잃어버린 예술가’란 의
미에서였다. 대체 정열을 잃어버린 예술가도 예술가일 수 있을까?
“아부지, 승조 씨 성격이 어때요?” “승조 군의 성격? 좀 내약허지. 대같이 곧은 사람이지만 선이 좀 약하지.”
“순경 언닌요?” “찬 사람이지! 차구 말구. 무서운 사람이니라.” (중략)
“그러나 넌 승조 군을 참맘으로 사랑하냐?”
노화백은 강박한 질문이었으나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영옥은 수줍은 듯이 고개를 주억거릴 뿐이다.
“그럼, 그만 아니냐? 너만 사랑한다면 그만 아니냐. 참으로 사랑한다면 질투 같은 더러운 감정을 일으켜서는 안 되느니라. 사랑이란 줄 것이지 받을 것은 아니어든! 그러니까 참으로 사랑만 한다면 그건 벌써 행복이지 그 이상 무엇을 바랄드냐! 그 이상 바라는 건 욕심이지 사랑은 아니어든—”
노화백은 이렇게 타이르는 것이었으나 그러나 그것은 영옥에게 들리기 위해서보다도 차라리 제 자신을 경계하는 말에 지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