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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639375
· 쪽수 : 348쪽
· 출판일 : 2016-11-25
책 소개
목차
발전의 시류
발목을 적시는 암울한 소리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살아남는 자의 숨결
저자소개
책속에서
“한 선생, 대일본제국의 운명이 곧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습니다. 침략제일주의에서 패망의 갈림길에 이르렀어요.”
교장은 순간 비통한 얼굴로 변하였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한민서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전율이 흐르면서 긴장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교장의 입에서 감히 그런 말이 나오다니, 예삿일이 아니었다.누구보다도 뉴스가 빠른 교장이고 보면 돌아가는 전황을 남 먼저 알 것이었다.
“곧 전쟁에 집니다.”
“연일 승전보를 알리지 않습니까.”
“그것은 마지막 발악이자 허세인지 모르지요. 머지않아 대일본제국은 이 땅에서 물러날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가고 있어요.”
“……믿어지지가 않습니다.”
소몰이 식으로 면내 마을을 한 바퀴 돈 여동네는 다음 마을로 향하였다. 섬 전체를 돌 모양이었다. 새로 불어난 군중들 앞에서 청년 하나가 일장 성토를 하고나서 그녀를 앞세웠다. 여동네는 마치 사형장으로 끌려가는 죄인의 몰골이었다. 마을 당상나무께에 이르렀을 때, 뒤따르던 무리들이 둥둥둥, 등 뒤에 매단 북을 울렸다. 고사라도 지내겠다는 걸까? 그 순간, 여동네가 허물어지듯 주질러 앉았다. 더 이상 감당할 수 없는 수치심과 절망감이 그녀의 육신을 누질렀다. 뒤따르던 사람들도 멈칫하였다. 그때, 누군가 사람들을 헤치고 여동네를 안아 일으켰다. 그리고 그녀를 들쳐 업고 바람처럼 사라졌다.
“성에, 그만한 일로 사람을 그렇게 죽여사 쓸께? 목매달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하데.”
“사람들의 감정이란 군중심리에 휩쓸리기 마련 아니냐. 개개인을 대하면 이 좁은 섬구석지에서 어떻게 그렇게 허것냐. 사람을 만만하게 보고 그런 것이제.”
한민서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정말 이번 만남으로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리라. 사랑은 국경이 없다지만 분명 이룰 수 없는 장애가 가로 놓여 있음을.
“둘을 보고 있으면 내 가슴이 찢어지네.”
그녀의 어머니 역시 가슴이 아프기는 마찬가지였다. 외동딸을 맡기기에는 어느 한구석 나무랄 데 없는 신랑감이었다. 한민서가 예고 없이 들어설 때마다 사윗감으로 반겨 맞지 않았던가.
“앞으로 그런 고통을 심어 드리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한민서는 눈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항구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날도 항구의 바다빛은 저랬지. 그녀는 진솔하였다. 한민서가 마음에 없는 결혼을 하였다는 것을 알면서도 처음 향하였던 그 마음을 허물어뜨리지 않았다. 그리움과 비례하여 따라오는 고통스러움. 그녀는 그 고통스러움을 지금까지 가슴에 여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