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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한국소설 > 2000년대 이후 한국소설
· ISBN : 9791186748138
· 쪽수 : 276쪽
책 소개
목차
프롤로그: 안산
주평
남해
여수
제주
서울
에필로그: 다시 제주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나 역시 그 자리에 굳어버렸다.
녀석이 급히 차에 타다가 유골함을 땅에 떨군 것이다.
망연자실. 놈과 나는 차 문 아래로 세 동강이 나 있는, 아이 살점같이 뽀얀 유골함 조각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위로 낮게 쌓여 있는 봄눈 같은 재연의 분골을 목격했다.
내가 놈을 죽일 듯이 노려보자, 놈은 나와 발밑의 뼈를 번갈아 보며 말을 흐렸다.
“형씨, 난 말야……. 그게 있지…….”
“닥쳐 이 개새끼야!!”
놈을 향해 돌진하는데 바람이 일고 뼈의 일부가 흩날리기 시작했다. 놈이 진지에 떨어진 수류탄을 감당하고 죽으려는 소대장처럼 뼈 위로 몸을 날렸다.
거북이처럼 웅크린 채 뼈를 지키고 있는 놈을 보자 울분이 일었다. 한마디로 빡이 돈 나는 있는 힘껏 놈의 등판에 대고 주먹을 날렸다.
“야 이 새끼야. 혼자 재연일 들고 튀어! 이 양아치 새끼……. 뭐? 민주시민?”
넓디넓은 놈의 등판을 북 두드리듯 때려댔다. 꼼짝 못 하고 처맞던 놈이 내게 고개를 돌렸다.
“진정하셔! 뼈 날리잖아.”
자책감이 최고조에 올랐다. 무엇이든 떨쳐내려 나는 달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곧 후끈한 열기에 머리가 어지러워지며 한순간 발이 꼬여 슬라이딩하듯 앞으로 고꾸라졌다. 무릎이 깨졌는지 다리 쪽에서 얼얼한 고통이 올라왔다. 콘크리트 길바닥을 짚은 손바닥에선 비릿한 피 냄새가 났다. 터져 나오는 신음을 흘리며 바닥에 몸을 웅크리고 괴로워했다. 울고 싶은 심정이었으나 눈물 한 방울 나지 않았다. 그냥 이대로 확 바다에 빠져 죽어버렸으면 싶기도 했으나 그녀를 보내주지 못하고 죽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같이 빠져 죽어도 이 바다는 아닌 거다. 진짜. 으아아아.
앤디는 전형적인 일 벌이기 형이다. 그리고 무식하리만치 과감한 추진력으로 밀어붙이고 살았을 거다. 반면 나는 서울에서 평범하게 자랐고, 지나치리만치 신중해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한 출판사에서 가늘고 길게 버티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이만 같지 고향과 성격, 생활환경까지 완전히 다른 녀석과 나의 동행도 이제 곧 끝날 것이다. 분명한 점은 녀석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거다. 녀석을 포함해 이 세계는 내가 절대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이 여정이 끝나면 나는 어떻게든 바뀌어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