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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역사 > 한국사 일반
· ISBN : 9791186761090
· 쪽수 : 640쪽
· 출판일 : 2016-11-30
책 소개
목차
저자의 말 역사의 보물, 국보와의 만남
들어가는 글 흥미로운 국보 이야기들
문화재 종류와 의미 | 국보는 어떻게 지정되나 | 가짜와의 전쟁, 문화재 감정 | 도난과 도굴의 끈질긴 역사 | 국보와 보물의 값은?
돋보기> 숭례문은 국보인데, 흥인지문은 왜 보물일까?
돋보기> 국보 제1호, 끊이지 않는 논쟁
1장 석기와 토기, 집 자리의 석기시대
인류의 등장과 진화
한반도에는 언제부터 사람이 살았나
유물과 유적으로 살펴보는 구석기・신석기 시대
가장 오래된 국보, 반구대 암각화
돋보기> 뼈에서 개인 삶과 시대상을 읽어내다
2장 거울과 칼, 고인돌의 청동기・철기시대
고조선과 고대사의 논쟁, 언제 정리되나
비밀 많은 청동기・철기시대 국보들
돋보기> 세계에서 고인돌이 가장 많은 곳은 한반도!
3장 고구려의 국보, 남북 분단의 상처
삼국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살았나
동북아를 누빈 고구려
고구려 국보를 찾아서
돋보기> 고구려 고분벽화, 삼국시대의 타임캡슐
남북 분단과 ‘이산 문화재’의 열망
돋보기> 북한은 국보와 문화재를 어떻게 관리할까?
4장 백제, 국보로 더 빛나다
600여 년을 수놓은 찬란함
서울 풍납토성, 초기 백제의 열쇠
무령왕릉과 공주시대 국보
금동 대향로와 부여시대 국보
익산, 서산에서 만난 국보
돋보기> 유물로 보는 서동과 선화 공주의 사랑 이야기
돋보기>백제인의 숨결, 세계문화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
5장 신라와 통일신라, 그 풍성한 문화예술
신라, 삼국을 통일하다
국보의 보물창고, 신라시대
돋보기> 금관, 아직 풀지 못한 수수께끼
돋보기> 삼국시대 불교 조각의 걸작, 국보 83호와 78호
웅숭깊은 통일신라시대 국보
6장 가야, 잊혀진 시대
잃어버린 역사와 문화를 찾아서
가야의 국보와 유물, 유적들
돋보기> 독특한 가야 토기,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을까
7장 청자에서 배흘림기둥까지, 고려시대 국보
고려시대가 열리다
돋보기> 고려시대 여성의 지위는 어땠을까?
돋보기> 명칭으로 이해하는 도자기 유물
고려사회의 갖가지 얼굴, 청자
돋보기> 토기, 도기, 자기(청자와 백자)의 차이
세계가 주목하는 기록문화유산
돋보기> 국보 《삼국유사》와 보물 《삼국사기》
1000년 세월을 견딘 초상화와 불화
시대의 거울, 국보 건축물들
걸작의 공예품, 수준 높은 불교 문화재
8장 아직 잘 모르나니, 조선시대 국보
조선,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다
곁에서 숨 쉬는 건축문화유산
조선시대를 읽다, 실록에서 일기까지 기록문화유산
돋보기> 《훈민정음》, 얼마나 아시나요
조선시대를 보다, 시대와 삶을 그린 회화
돋보기> 전통 무늬들이 간직한 상징은?
자유분방한 분청사기, 절제된 백자
돋보기 달항아리, 어떻게 달을 품을까
숭유억불 속에서 꽃피운 불교 문화재
찬란한 과학기술과 한국인을 닮은 탈
돋보기> 거북선 유물, 언제나 나올까
9장 세계는 ‘문화재 전쟁’ 중
빼앗은 자와 빼앗긴 자, 문화재 약탈과 환수 논쟁
돋보기> 한국에도 약탈 문화재가 있다! ‘오타니 컬렉션’
세계로 흩어진 한국 문화재
돋보기> 국보와 보물의 전당, 3대 사립박물관(미술관)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경쟁
부록 국보 목록
참고 문헌
저자소개
리뷰
책속에서
문화재계에서 지금도 특이한 사건으로 회자되는 국보 도난 사건은 국 보 119호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 사건이다. 1967년 10월 24일 아침, 서울 덕수궁미술관 2층 전시실에 있었던 ‘금동 연가7년명 여래입상’이 전날 밤 감쪽같이 사라졌다. 그런데 범인은 불상이 있던 진열장 안에 ‘오 늘 밤 12시까지 돌려주겠다’는 내용의 메모지를 남겨 놓았다. 실제로 범 인은 그날 밤 전화를 걸어 ‘한강철교 제3교각 16번, 17번 침목 받침대 사 이 모래밭에 있으니 찾아가라’고 했고, 이 고구려 불상 국보는 회수되었 다. 하지만 범인은 잡지 못했다.
1956년에는 국립경주박물관에 도둑이 들어 국보 87호인 ‘금관총 금 관’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다행히도 범인이 훔쳐간 금관 은 복제품이었다. 현재 도난당한 국보는 1점이지만, 보물은 10건이다. 주로 1980~1990년대에 일어난 도난 사건으로 안중근 의사의 친필 작 품인 ‘안중근 의사 유묵’(보물 569-4호)을 비롯해 익산 현동사 ‘연안 이씨 종중 고문서’(보물 651호), ‘괴산 몽촌리 문정사 초상화’(보물 566호) 등이 다. 또 ‘순천 송광사 소장 회화’(보물 1043호), ‘경주 기림사 비로자나불 복장유물 중 전적’(보물 959호), ‘예천 죽림리 권영기가家 목판’(보물 878 호), ‘강화 백련사 철조 아미타여래좌상’(보물 994호), ‘남원 실상사 백장 암 석등의 보주’(보물 40호), 상주 금혼리 충의사유물전시관의 ‘정기룡 장 군 유물 중 유서’(보물 669호) 등도 아직 그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고려시대에 일연 스님이 편찬한 《삼국유사》는 드물게 이 시대를 다 루고 있는 역사서로 유명하다. ‘단군 왕검이 평양성에 도읍을 정하고 그 이름을 조선이라 불렀다’는 《삼국유 사》의 핵심적 내용은 대중에게도 꽤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고조선의 성립 시기와 영 토의 범위, 도읍지인 평양성의 위치, 단군왕검의 성격 등 고조선 역사 전 반을 둘러싸고 서로 다른 주장들이 얽히고설켜 있다. 특히 한국 사회의 분위기가 민족주의에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는 민족의 기원과도 연결되 다 보니 그 논란이 더 치열해진다. 주로 강단 사학계를 향해 민족주의적 사관을 지닌 재야 사학계의 목소리가 높아지는 모양새다. 고조선을 둘러 싼 역사가 제대로 정립되지 못하다 보니 고대사 논쟁은 학계를 넘어 정 치적?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한다.
고조선 역사와 문화를 둘러싼 이 같은 논란은 관련된 문헌기록이 거 의 없는 데다, 극히 적은 기록마저도 학자들마다 해석을 달리하기 때문 이다. 또 다양한 이견들을 잠재울 만한 명확한 고고학적 유물이나 유적 이 발견되지 않는 것도 큰 이유다. 일부 유적과 유물이 있지만 이에 대한 해석을 둘러싸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한다. 결국 고조선을 둘러싼 고대사 의 정립은 학계가 앞으로 해야 할 가장 큰 숙제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