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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소설/시/희곡 > 러시아소설
· ISBN : 9791186761274
· 쪽수 : 312쪽
· 출판일 : 2018-04-10
책 소개
목차
본문 1~30장 5~301
마지막 장 301
작가에 대하여 310
리뷰
책속에서
꿈속으로 되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환상적인 꿈을 꿔서가 아니라 그저 잠들고 싶었다. 무기력해진 나는 모두에게 전화를 걸어 아프다고 거짓말하고 모든 것을 취소해버리고 싶었다. 모든 것을 말이다. 일어나는 것도, 전등을 켜는 것도, 씻는 것도, 면도도 하지 않고, 양말을 신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이 모든 것을 말이다. 열쇠를 짤랑거리며 대문으로 나가기, 외출 전 현관등 끄기, 엘리베이터에 타서 1층 누르기, 거리로 나가기, 아침의 차가운 첫 공기 들이마시기, 딱딱하고 차가운 자동차에 타기 등을 하지 않고, 막스를 마중하러 공항에 가지도 않는 거다. 지금 이 도시로 날아오고 있는 막스 말이다. 하지만 막스를 돌려보내는 건 불가능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막스, 내 친구 막스를 지워버릴 수는 없었다. 그러니 이 모든 것을 할 수밖에 없다!
나는 그녀를 기다렸다. 내 몸 전체가 마비되는 바람에 신체의 끝부분과 몸속 깊은 곳 어디에선가 보내던 신호가 끊겼다. 머리와 심장만이 작동하고 있었다. 여덟 시 정각. 나는 급격히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여덟 시 칠 분, 나는 그녀에게 전화했다. 이상하게도, 나는 왠지 그녀가 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우리가 만날 약속을 하기 전에 나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나는 화나지 않았다. 그녀에게 화를 낼 수는 없었다.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을 가정해보거나 상상하는 것조차 불가능했다. 나는 슬퍼하지도 않았다. 슬프지 않았다. 그저 아주 높이 날던 비행기에서 엄청난 속도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나는 숨이 멎는 동시에 마비됐다.
아니면 긴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또 대화를 한 후 약간 취하여 지친 채 집에 들어간다. 집은 조용하고 깔끔하며 선선하다. 여름이다! 문이 열려 있는 베란다 옆에서 커튼이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다. 너는 아무도 집으로 데리고 오지 않은 자신을 칭찬한다. 세수와 샤워는 내일 하기로 하고 지금은 당장 자야겠다고 생각한다. 옷을 바닥에 그대로 벗어놓고 쾌적하고 뽀송뽀송한 침대로 몸을 던진다. 그런데 너의 뒷머리가 베개에 닿는 순간 방으로, 베란다 문으로, 통풍구로, 커튼을 찢으며 헬기들이 날아 들어온다. 그런데 눈을 떠도 나아지지 않는다. 전혀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눈을 감으면 헬기들이 다시 날아다니기 시작한다. 아침이 되면 고통과 그 고통 속의 고독이 당신을 기다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