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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정보
· 분류 : 국내도서 > 에세이 > 한국에세이
· ISBN : 9791187413196
· 쪽수 : 192쪽
· 출판일 : 2017-08-31
책 소개
목차
제1부 없음의 힘
능소화가 필 무렵이면·13 | 없음의 힘·17 | 마 논 트로포·22
유쾌한 칩거·26 | 손 잡고·31 | 노래하는 길·35
동치미 한 모금·39 | 페디큐어와 즉흥환상곡·43
제2부 시간의 길이
역(逆)진화·51 | 시간의 길이·56 | 미끼·58
존엄할 권리·62 | 운명·67 | 차―암 곱소!·76
소요(逍遙)·79 | 고맙다 내 몸아·84
제3부 고독의 조건
고독의 조건·89 | 통증지수·94 | 유명세를 치르다·98
꽃밭에서·105 | 이해한다는 것·110 | 봄날·115
중력·117 | “엄마, 밥!”·122 | 마지막 호사·124
제4부 다시 생각하기
다시 생각하기·131 | 장미 세 송이·139 | 자라지 않는 아이·145
풍경 셋·149 | 맛 그리기·153 | 염려·157 | 황금집·161
현자의 돌·165 | 가문의 영광·177
발문 | 분별 너머의 심안으로 · 맹난자 ·182
저자소개
책속에서
<시간의 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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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렛소리가 들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파란 하늘을 가르며 제트기 한 대가 날아가고 있었다. 순식간에 비행기는 사라지고 하늘에는 하얀 구름 같은 한 줄기 궤적만이 남았다. 그 길이를 눈으로 더듬어보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하, 저것이로구나. 저것이 시간의 길이로구나.
풀리지 않던 수학 문제의 답을 구한 듯 환희심이 일었다.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시간이란 놈의 실체가 바로 저것이었구나.
비행기가 그리고 간 것은 ‘지금’이라는 순간들이었다. ‘지금’이라고 말하는 순간 사라져버린, 그 무수히 많은 ‘지금’이 만드는 시간이라는 것. 형태도 없는 그것이 내 눈앞에 버젓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렇다면 나를 스쳐간 ‘지금’의 길이는 얼마 만큼인 것일까? 제트기 속도에 따라 비행운의 길이가 다르듯이 내가 흘려보낸 시간의 길이 또한 다른 이들과 같지는 않을 터.
난자(卵子)라는 단세포에서 비롯되어 세포분열을 거듭하며 무게를 늘리고 키를 키워 이만큼의 내 모습으로 만들어놓은 것이 내가 보낸 시간이라면, 내 몸뚱어리가 내 시간의 길이가 되는 셈일까. 살갗과 살덩이와 뼈대와 핏줄, 이목구비며 오장육부에 차곡차곡 저장되어 있을 시간들. 내 몸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릴 나의 지난 ‘지금’들.
비행운이 걷히자 파란 하늘이 천연덕스레 얼굴을 내밀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지금’의 흔적, 시간의 실체를 한순간의 꿈처럼 잠깐 보았다.